'아트부산 2019'에서 만난 '일루전 아티스트' 윤다인 작가. 그는 얼굴 페인팅으로 입체적 회화를 구사하고 엽기와 파괴 같은 장치로 회화의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 /부산=김고금평 기자
‘일루전 아티스트’ 윤다인(26)이 전시장 내 자신의 부스로 가는 길목은 포토의 대향연이자, 교감의 과정이었다.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아, 그분 맞죠?”하는 관람객의 인사가 끊이지 않았다.
윤다인 작가. /사진제공=윤다인
얼굴 안에서 트랜스포머 과정이 그대로 구현되고 있다고 할까. 때론 눈을 5개로 배열해 착시(일루전) 현상을 유발하고, 손톱에 얼굴을 그리고 머리카락을 붙여 재미있거나 엽기적이거나 공포스러운 미학의 정점을 달리기도 한다.
“대학 때부터 이런 작업을 했는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이슈 돼 해외 언론에까지 소개됐어요. 처음에 한 작업은 모델의 목과 어깨에 얼굴을 그려 착시효과를 낸 거였는데, 하다 보니 저한테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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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전시인 ‘아트부산 2019’에선 처음으로 조형물을 들고 나왔다. 바디페인팅을 판화 위주로 만들어 입체각이 더욱 또렷하다. 바디페인팅 작업은 최소 3시간에서 길게는 10시간이 넘게 걸린다. 이 고된 작업을 하는 이유로 그는 ‘재미’를 첫손에 꼽았다.
윤다인 작가가 '아트부산'에서 처음으로 제작한 조형물을 전시했다. 빈 공간의 서랍을 입체적으로 조각해 얼굴과 매치한 일루전(착시) 작품이다. /부산=김고금평 기자
‘순간의 미학’을 위해 파격적 구상(때론 엽기적)을 주요 재료로 쓰는 배경이 궁금했다. 그는 “내 그림을 보는 분들이 상식의 선을 넘는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며 “초등학교 때 만화책이나 영화도 공포물만 봤다”고 웃었다.
“어릴 때부터 맞벌이하는 부모님 덕(?)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할 일은 게임 아니면 딴생각뿐이었죠. 감정적으로도 민감했고요. 잡생각이 많다 보면 커피 한잔 먹을 때도 컵을 다르게 보는 시각이 생겨요. 그런 훈련 때문인지 예술이라는 창작 활동에는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화제가 된 윤다인 작가의 손톱 일루전 작품. 손톱에 얼굴 그림을 그리고 머리카락을 잘라 붙였다. /사진제공=윤다인
“혹독한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을 때 판타지를 찾고 싶을 수도 있을 테고, (엽기적이거나 착시적인) 판타지를 통해 힘든 현실을 돌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얼굴이라는 캔버스에 빈 서랍을 배경으로 쓴 것도 채워야 하는 현실에서 공간의 의미를 새겨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윤 작가는 자신의 모든 작품이 ‘일루전’에 기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시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강렬하고 파괴적인 ‘보이는’ 페인팅 뒤로 ‘숨은’ 실재(본질)가 숨바꼭질처럼 보이는 듯 마는 듯했다.
얼굴은 하나인데, 수많은 가면을 쓰고 사는 우리 인생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해야 할까. 젊은 작가에게 크게 한 수 배운 ‘각성의 순간’이었다.
윤다인 작가의 일루전 작품들. /부산=김고금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