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의 게임’, 도대체 왜 그랬을까

윤지만(칼럼니스트) ize 기자 2019.05.24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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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 도대체 왜 그랬을까


* 이 글은 ‘왕좌의 게임’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베니오프와 D.B. 와이스는 의존할 원작이 없을 때는 한심할 정도로 무능한 작가들이라는 것을 스스로 입증했습니다” Change.org에 올라온 ‘왕좌의 게임’ 재제작 요청 청원의 첫 문장이다. 이번 ‘왕좌의 게임’ 마지막 시즌이 지난 훌륭했던 시즌들과 비교해 형편없다는 이유로 방송사인 HBO에 마지막 시즌을 새롭게 제작해달라고 청원하는 것이다. 이 청원은 이 글을 쓰는 지금 120만명이 넘게 서명했다. 지난 8년간 쌓인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만, 용두사미도 이런 용두사미가 없다. IMDB에서 시즌 8 에피소드의 평점은 1화 7.9로 시작해서, 4화에는 5.8로 떨어졌고, 마지막 6화는 4.5점으로 ‘왕좌의 게임’ 시즌 전부를 통틀어 가장 낮은 평점을 기록했다. 로튼 토마토에서도 시즌 8의 비평가 점수는 67%로 낮은 편이다. 이전의 시즌들에서 90% 밑으로 내려간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걸 생각하면 시즌 8에 대한 평가가 어떤 수준인지 짐작해볼 만 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4화에서 대너리스의 앞에 커피 컵이 놓여있었던 일도 있었고, 마지막 6화에서 샘웰 탈리의 발 옆에 플라스틱 병이 놓여 있었던 일도 있었지만, 그런 건 스토리만 좋았다면 웃고 넘어갔을 사소한 일이었다. 하지만 베니오프와 와이스는 스토리에서 개연성을 없애버렸다. 5화에서 대너리스는 도대체 왜 킹스 랜딩을 불태워버린 것일까? 복스는 적어도 드라마 상에서는 대너리스가 킹스랜딩을 불태워버리고, 시민들을 학살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한다. 대너리스가 악역이 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왜 대너리스가 그렇게 되었는지에 관한 설득력 있는 대답을 드라마는 하지 못한다. 킹스 랜딩이 불타고 있을 때, 아리아가 고통받는 모습은 왜 그렇게 자세하게 보여준 것일까. 세눈의 까마귀라서 윈터펠의 영주가 될 수 없다던 브란은 왜 6왕국의 왕 자리는 덥썩 물은 것인가.

가디언은 이번 시즌의 전개가 급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전개가 급하게 진행되다 보니, 괜찮은 시놉시스를 망쳐버리고, 그동안 공들여 만들어온 캐릭터들을 망가뜨려 버렸다. 포브스 또한 급한 전개가 스토리를 망쳤다는 점을 지적한다. 대너리스의 캐릭터 붕괴뿐만이 아니다. 웨스테로스의 유력 인사들은 새로운 왕을 5분 만에 뽑아버린다. 샘웰 탈리가 제안한 민주제를 가볍게 비웃고, 현 시스템을 유지하기로 한 결정은 ‘왕좌의 게임'다운 선택이었지만, 그 5분의 기간 동안 회색 벌레는 왜 갑작스레 자신의 여왕을 배신한 티리온이 새로운 정부를 만들려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었던 걸까? 나이트킹과의 싸움에 한 시즌을 투자하고, 대너리스의 변화와 서세이와 대너리스의 전투에 또 다른 한 시즌을 투자했다면 차라리 더 나은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순히 스토리텔링을 하는 방식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평도 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왕좌의 게임’에서 스토리텔링 스타일이 사회학적인 것에서 심리학적인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마지막 시즌이 혹평을 받는 것이라고 말한다. 조지 R.R. 마틴이 쓴 원작에서 캐릭터들은 사회의 구조적인 맥락 속에서 규범과 동기에 의해 반응해왔다. 그렇기에 수많은 캐릭터가 죽었음에도 이야기가 긴장을 놓치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다. 아마 스토리텔링이 시즌 8에서도 구조적인 맥락 속에서 이루어졌다면, 대너리스가 동일하게 매드 퀸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과정은 권력을 가진 자의 타락으로 묘사됐을 것이다. 하지만 베니오프와 와이스는 매드 킹을 만들었던 타르가리옌의 유전자를 그 이유로 들었다. 구조적인 맥락 속에서 살아 숨 쉬던 캐릭터들이 시즌 8에서는 단순히 팬들의 희망 사항을 들어주는 수준에서 소비되고 말았다. 높아진 팬들의 기대감이 주는 압박감에 베니오프와 와이스가 무너진 것일까. ‘왕좌의 게임’을 지탱하고 있던 것은 캐릭터보다는 왕좌를 둘러싼 권력 다툼 그 자체였다. 마지막 시즌에서 ‘왕좌의 게임’은 스펙타클한 전쟁 장면과 팬들이 사랑하는 캐릭터에만 집중하느라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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