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서울 퀴어 문화축제의 사람들

임현경 ize 기자 2019.05.23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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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번째 서울퀴어문화축제가 21일 개최했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가시화하고 인권을 증진시키기 위해 시작된 축제가 연례 행사가 되어 20년차를 맞은 지금, 퀴어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편견과 혐오에 둘러싸여있다. ‘퀴어문화축제’ 하면 화려한 퍼레이드와 맞은편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반대 집회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것이 축제의 전부는 아니다. 퀴어문화축제의 안과 밖에서 각자의 축제를 만들어가고 있는 이들을 만나봤다.



장애여성공감, “서로 궁금해 해야만 이야기가 시작된다”

장애여성공감은 장애여성인권 향상을 표방하는 운동단체로,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 등을 운영한다. 진은선 활동가는 “장애를 가진 여성들은 장애를 가진 남성과는 다른 경험과 요구를 갖는다”라고 말했다. 장애인을 위한 지원 방안 중에는 젠더를 고려하지 않은 부분들이 많은 탓에 장애 여성들은 또 다른 차별을 마주한다. 그는 “장애 여성들이 장애 남성보다 비장애 여성들과 통하는 부분이 많을 정도”라고 했다. 장애 여성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길거리를 다닐 때 등 실생활에서 많은 시선을 받는다. 그냥 쳐다보는 것이 아닌, 차별이 깃들어 있는 시선이다. 지체장애 여성들에게 ‘너는 얼굴은 예쁜데 몸이 그래서 어떻게 하냐’ 같은 말을 듣는 게 너무나 익숙한 일이 됐다. “장애인으로서, 여성으로서의 경험들을 분리해서 생각하면 깊은 논의가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개별적인 이중차별이 아니라, ‘장애를 가진 여성’이기에 겪는 복합차별인 거죠.” 진은선 활동가는 “어떠한 정체성이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상상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애와 여성, 또 장애와 여성과 퀴어가 복합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애여성공감은 장애 여성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찾았던 2016 퀴어문화축제에서 장애와 퀴어의 교차성을 발견했다. 당시 퀴어퍼레이드는 동선 자체에 턱이 있어서 휠체어나 유모차 등은 다른 통로로 이동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퀴어문화축제는 여타 축제와 어떻게 다른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를 논의하며, 기존의 보편적인 시설에 대해 다르게 접근해볼 수 있었어요.” 진은선 활동가는 이 과정에서 “아름다운 몸, 정상적인 몸에서 벗어난 소수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차별을 발견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화장실에 가는 게 쉽지 않아 외출할 땐 최대한 음료를 마시지 않는 것도, ‘애자 같다’, ‘게이 같아’ 등 혐오 발언의 객체가 되곤 했던 경험도 비슷했다. “‘정상’의 기준은 굉장히 협소해요. 우리가 소수자로서 연대하며 그 기준에 균열을 내지 않으면 어떠한 몸도 얘기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장애여성공감은 퀴어문화축제 이후에도 게이합창단 G보이스와 같은 소수자 단체와 협업하는 등 “고민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동료”를 만나고 있다. 상상될 수 있는 존재를 위한 장애여성공감의 지지와 연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나의 정체성에 고민해볼 수 있는 통로가 정말 많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경험을 나누는 일이 중요해요. 서로가 궁금해 해야 이야기가 시작되고, 관계들이 쌓여야 복합적 존재를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퀴어여성게임즈, “우리에겐 이기는 경험이 필요하다”


“여성, 성소수자들은 스포츠에 대한 갈망이 있어요. 학창시절부터 운동부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들어가도 남학생들을 응원하는 역할을 맡는 등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나는 운동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구나’를 체화하는데, 막상 실제로 해보면 그게 아니었던 거죠.” 퀴어여성네트워크(이하 퀴여네)는 성별에 따라 엄격히 분리돼왔던 영역인 스포츠를 모두가 체험할 수 있는 경험으로 만들고자 했다. 트랜스젠더와 같은 복합 성별도 눈치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2017년 ‘퀴어여성생활체육대회’ 개최 과정 중 지역구 두 곳이 연달아 장소 대관을 취소하면서 1년간 고전해야 했다. 공식적인 사유는 시설 보수 공사였지만, 대관 담당자가 전날 전화로 언급한 취소 사유는 ‘미풍양속’이었다. 잇을 활동가는 당시를 “고난을 겪으면서 더 잘하고 싶고 지속적으로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때”라고 회상했다. 의도치 않게 길어진 준비기간에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넣었고 ‘퀴어여성게임즈’라는 새 이름을 달았다. 마침내 2018년 6월, 첫 대회가 열렸다. 공간 문제로 풋살, 야구 등 실외 종목을 빼야 했던 것을 제외하면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전체 참여 인원이 300명 이상이었고, 대회 이후 여성 또는 퀴어 생활체육 동호회 가입자가 배로 늘었다. 지난 10일에는 지역구에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권고한 인권위의 결정을 받아들었다.

퀴어여성게임즈의 목표는 ‘게이 게임스’(1982년부터 4년마다 열리는 국제 종합 경기 대회)처럼 고정적인 행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자체의 협의와 기업체의 후원이 필요하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대회는 존재만으로 운동을 열심히 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 올림픽처럼 메달리스트들에게 연금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지만 참가자들은 의무팀이 뿌리는 파스 냄새가 체육관에 진동할 정도로 부상투혼을 발휘했다. 퀴어여성게임즈 이후 자신감을 얻어 일반 사회인 리그에 출전한 팀들도 더러 생겼다. 겨뤄 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이들에게 퀴어여성게임즈는 자신들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장이자 목표다. 박한희 변호사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것들도 많지만 실현에 제약이 따를 뿐”이라고 말했다. 퀴어여성들 사이에서 최고 인기 종목인 야구는 장소 제약 문제로 포기했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 장면을 모아 하이라이트 영상을 제작했으나 참가자들이 받을 따가운 시선과 사회적 제약 때문에 공개하지 못했다. 유쾌한 해설을 곁들인 중계방송을 진행해 많은 사람들을 운동에 ‘입덕’시키겠다는 야망도 아직은 기획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멈출 생각은 없다. 잇을 활동가는 2019 퀴어여성게임즈의 슬로건 ‘우리의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를 강조했다. “이기는 경험을 통해 나중에 지더라도 별 게 아닌 걸로 느꼈으면 좋겠어요. 퀴어여성게임즈가 판단되고 규정되는 걸 넘어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경험을 주는, 기회의 장이 되길 바라요.”

소문자에프, “소수자가 주체가 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다”


페미니즘 시각예술 매거진으로 시작한 소문자에프는 최근 유튜브로 무대를 옮겨 공동대표인 미사장, 요세이, 만두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그중 ‘미사장’ 채널은 퀴어 담론 내에서도 소외돼온 여성 퀴어의 일상을 주제로 한 “퀴어가 만들지만 퀴어 얘기만 하지는 않는” 콘텐츠다. 그러나 시청자들에게 ‘퀴어 맛집’이라 불리는 ‘미사장’의 구독자수는 3만 명 남짓이다. ‘유흥업소 썰’, ‘화류계 경험담’ 등 자극적인 콘텐츠를 앞세운 퀴어 유튜버들이 10만 명, 3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확보한 것에 비하면 저조하다. 소문자에프는 이와 관련해 요즘 ‘어떻게 대중에게 다가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만두는 “콘텐츠를 만들 때 ‘젠더 퀴어’라 하는 것보다는 ‘레즈비언’이라고 하는 게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다”면서도 “단지 여성으로 보이는 파트너가 있기 때문에 ‘레즈비언’으로 명명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라고 했다. 2년 동안 퀴어 개념에 대해 매번 다시 설명을 해야 했고, 조금만 복잡하거나 어려운 내용을 다루면 구독자 유입이 끊겼다.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당장은 팬 섹슈얼(범성애), 젠더 퀴어(이분법적 성별 기준으로 정의할 수 없는 성 정체성) 등의 개념을 쉽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소문자에프가 맞닥뜨린 또 다른 과제는 여성을 둘러싼 제약이다. 요세이는 “여성 콘텐츠 제작자들에겐 몇 겹의 고충이 더 생긴다”라며 “페미니스트와 거리가 멀어보였던 남성들이 관련 발언을 하면 칭송받는 데 반해, 저희와 같은 사람들은 여러 검열을 거쳐야 한다”라고 했다. ‘안 된다’는 의견은 많았지만 정작 뭘 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피드백이 없었다. 그럼에도 콘텐츠 제작을 지속하는 이유는 “다가올 수 있는 사람이 적어지는 것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보는 게 장기적으로 퀴어의 저변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사장은 “좋아하는 걸 찾기 어려운 환경에서 뭘 조심해야 하는지 검열에만 집중하게 된 것 같다”라며 “콘텐츠를 통해 취향이 폭이 확장될 수 있는 장이 마련되면 좋겠다”라고 했다. 이들은 모 기업의 슬로건처럼 ‘문화를 만드는’ 주체가 되고 싶다고 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오히려 정말 쉽게 바뀌기도 하니까요. 보는 사람에 따라 축제에서 퀴어 인권을 외치는 것보다 영화 ‘아가씨’가 더 크게 와 닿을 수도 있고요. 콘텐츠를 통해 여성, 퀴어가 주체가 되는 문화, 예술,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 가고 싶어요.” 유튜브라는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으로 뉴미디어와 올드미디어,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가 모호해진 지금, 소문자에프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드랙킹 아장맨, “드랙은 편향된 성 정치에 저항하는 도구다”

영화 ‘헤드윅’, 넷플릭스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 퀴어퍼레이드의 무대 등 매체 속 드랙(drag)은 주로 풍성한 가발에 한껏 과장된 화장을 한 ‘드랙퀸’이다. 일각에서는 드랙을 단순한 ‘여장 남자’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드랙은 성별과 상관없이 누구나 수행할 수 있으며 드랙 아티스트 중에는 ‘드랙킹’도 존재한다. 이번 서울퀴어문화축제의 핑크닷 파티와 에프터파티에서 공연을 펼칠 드랙킹 아장맨이 대표적이다. 그는 드랙을 “불특정 다수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형태로 생물학적 성별에 기반하여 사회가 개인에게 기대하는 퍼포먼스에 대한 반대를 표출하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도착증적 행위나 개인 활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강압적이었던 아버지의 옷을 입고 관중 앞에서 드랙 퍼포먼스를 펼치며 두려움과 마주하고 어린 날의 자신을 위로했다. 그는 드랙을 하는 동안 “‘여성’으로 패싱되며 사는 평범한 일상보다 안전함을 느꼈다”고 했다. 안전이 보장된 무대 위에서의 드랙은 그에게 “여성의 신체를 과잉 성애화 하는 시선을 벗어나 완전히 내 의도대로 읽히는 경험”이었다.

그러나 아장맨과 같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드랙킹은 한손에 꼽을 정도다. 아장맨은 ”여전히 드랙 문화 하면 시스젠더 게이 남성 드랙퀸을 먼저 떠올리는 추세”라며 “드랙이 편향된 성정치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수행자와 표현법이 보다 다양성을 띌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드랙킹이 보기 드문 이유 중 하나로 “여성 퍼포머의 신체에 여성혐오를 기반으로 한 규제를 가하며 표현의 자유를 빼앗는 상황”을 꼽았다. 드랙킹을 섭외하는 행사 자체가 드물었지만, 섭외가 들어와도 제약이 있었다. 공연 중 남성의 유두 노출은 아무런 심의 제한이 없었지만, 여성 유두 노출은 금기시 됐다. 성애화된 시선을 옹호하고 그 대상이 되는 신체를 문제 삼는 분위기였다. 결국 그는 보고 싶고, 있고 싶은 무대, 즉 “자신의 신체가 안전한 경험을 할 수 있으며 가해자가 처벌 받는 행사”를 직접 만들었다. 그는 작년에 이어 오는 26일 드랙킹 콘테스트 ‘올헤일’을 개최한다. “급진적인 변화의 일부가 되는 겁니다.” 아장맨은 이 행사를 통해 “사회적으로 부여된 남성성과 여성성이 얼마나 유약한 것인지, 비 시스젠더 남성이 정신적, 신체적 자유를 얻었을 때 얼마나 강력한 에너지를 내뿜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모두가 오롯한 자신의 몸으로 춤추고 노래하는 그날까지, 아장맨의 쇼는 계속될 것이다.

민사고 퀴어동아리 VoQ,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스스로 자라야 하나”


VoQ(Voices of the Queer)는 민족사관고등학교 내 퀴어 동아리로, 지난해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는 등 학교 밖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알리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청소년들이 성 담론에 수동적이기를 강요받는 것 또한 차별이라고 말한다. 청소년들은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해 논할 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다. VoQ 동아리장 A는 “청소년들이 성에 대해 무지하기를 강요하고 성 담론을 아예 차단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학교에서의 성교육은 너무 추상적이었고, A는 친구들이 인터넷이나 또래문화를 통해 왜곡된 성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을 목격했다. 특히 성소수자의 경우 성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에서 공감해주고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교육과정에서 성소수자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는 데다, 퀴어 커뮤니티가 가시화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스스로 자라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A가 성소수자의 존재를 인지하게 된 건 고등학교 입학 이후 첫 정치철학 수업에서였다. “선생님이 ‘30살이 됐는데 아무도 너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않았으면 인생을 잘못 산 것’이라 말씀하신 걸 듣고 충격 받았어요. 그전까지만 해도 저를 포함 제 가족, 친구, 지인 중 성소수자가 있을 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거든요.” 성소수자로 정체화한 A에게 VoQ는 ‘안전한 장소’였다. 그는 “청소년 성소수자로서 나와 같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VoQ는 이제 안전한 공간을 교실 바깥으로 확장하려 한다. 이들은 북일고등학교 성소수자 인권 동아리 프리즘, 용인외대부설고등학교 페미니즘 동아리 스펙트럼과 함께 다음달 1일 열리는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부스를 운영한다. 청소년 성소수자 연합체로서의 활동도 계획 중이다. 이들은 ‘애들이 뭘 알겠느냐’는 어른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더욱 목소리를 높인다. A는 “청소년기의 자아성찰은 사회화 과정에서 무분별하게 습득한 것들에 의구심을 갖고 진짜 ‘나’를 찾아간다는 개인적 측면에서도, 기성 세대의 관습을 비판하고 현존하는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다는 사회적 측면에서도 정말 필요한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청소년들의 자아성찰 기회를 뺏는 것은 부당하거니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해요. 이미 많은 청소년들이 이 문제에 대해 인지하고 있고 관심을 갖고 있으니까요.” 요즘 청소년들의 현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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