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참지않는 '고객님들' 임블리를 끌어내리다

머니투데이 조해람 인턴기자 2019.05.21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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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적 고객에서 적극적 주체로…전문가 "피해구제 절차 정비해야"

임지현 부건에프엔씨 상무/사진=임블리 사과 영상(유튜브)임지현 부건에프엔씨 상무/사진=임블리 사과 영상(유튜브)


'곰팡이 호박죽'으로 물의를 빚은 임지현 부건에프엔씨 상무(임블리)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박준성 부건에프엔씨 대표는 지난 20일 서울 금천구 본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저희가 미숙했던 점, 실망을 안겨드린 점, 걱정을 끼쳐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임 상무의 사퇴 소식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부건에프엔씨는 식품 부문 사업을 중단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겠다고도 밝혔다.

임 상무가 물러나게 된 데는 소비자들의 '분노'가 컸다. 논란은 지난달 초 한 소비자가 임블리가 호박즙 제품에서 곰팡이가 나왔는데 환불을 해주지 않았다고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문제가 불거지자 임블리는 전량 환불을 약속했지만, SNS 댓글창을 폐쇄하는 등 임블리 측의 부적절한 CS대응이 구설에 올랐다.



이어 '임블리 안티 계정'까지 등장해 △사진과 다른 제품 배송 △타사제품 도용 △과대광고 △제품불량 등 문제가 계속 지적됐다. 소비자들의 여론은 들끓었고 임블리는 계속해서 SNS에 사과문을 올렸다. 결국 이달 20일 임블리는 경영직에서 공식 사퇴했다.

◇'월팸'에 '아이폰'까지…목소리 내는 소비자 늘어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일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최근 맘카페 등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월트 디즈니 패밀리 잉글리시(월팸)' 리뉴얼 논란도 비슷하다. 월팸의 가격은 약 630만원에 이르지만, 소비자들은 '40년 전통의 유아용 영어전집으로 리뉴얼이 필요없다'는 홍보를 믿고 제품을 구매했다. 그러나 지난달 말 일본에서 리뉴얼 제품이 나왔다.



/사진='월드패밀리잉글리쉬 피해자 모임' 네이버 카페/사진='월드패밀리잉글리쉬 피해자 모임' 네이버 카페
여기에 월 2만2000원의 회비로 이용해 온 '평생보증 AS'가 무효화됨은 물론 최대 314만원 추가로 내야 교환이 가능하다는 조건이 알려지며 소비자들의 분노는 더 커졌다. 현재 소비자들은 온라인 카페를 만들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해당 카페에는 20일 현재 1500여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했다.

지난해에는 애플 아이폰 소비자들이 '고의적 기기 성능저하'를 이유로 애플 본사와 애플코리아에 집단소송을 걸기도 했다. 소송을 담당한 법무법인한누리는 "고객들에게 손해를 야기한 성능저하 업데이트는 민법상 채무불이행 내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 또한 성능저하 업데이트의 부작용을 알면서도 소비자들에게 알리지 않아 소비자기본법 위반에도 해당한다"며 원고 1인당 20만원을 청구하는 집단소송을 진행 중이다.

◇소비자행동 원인은 "기업·시스템에 실망 누적"…정보화 영향도


소비자들이 수동적인 고객을 넘어 소비행위의 적극적인 주체로 나서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의 의식 신장과 기존 제도에 대한 신뢰 하락을 지적한다. 신용묵 한국소비자협회 상임대표는 "예전에는 소비자 운동이 단순한 불매운동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소비자 권익을 지켜줘야 할 기업이나 시스템에 대한 개선 요구가 SNS 등으로 적극적으로 터져나오고 있다"며 "앞으로 그런 요구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성지 대전보건대 교수가 지난해 8월2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소비자협회 BMW 집단소송단 기자회견'에서 결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BMW 디젤 승용차에서 화재가 계속 발생하자 BMW는 지난해 10월 전세계에서 해당 차량 160만여대를 리콜하기로 결정했다./사진=홍봉진 기자박성지 대전보건대 교수가 지난해 8월2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소비자협회 BMW 집단소송단 기자회견'에서 결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BMW 디젤 승용차에서 화재가 계속 발생하자 BMW는 지난해 10월 전세계에서 해당 차량 160만여대를 리콜하기로 결정했다./사진=홍봉진 기자
신 대표는 이어 "피해를 입은 소비자에게 가장 큰 위로는 투명하게 진실이 밝혀지는 것인데, 진실이 가려지거나 축소되는 현상이 쌓이다 보니 신뢰도가 하락했다"며 "피해 구제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소비자를 참여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업 등에 그런 과정을 진행할 전문가가 너무 부족하다. 관련 제도를 보강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온라인 공간의 확대도 소비자운동에 큰 영향을 줬다. 한국소비자원은 2013년 연구보고서에서 "정보인프라 구축은 소비자 권익의식의 향상과 소비자 운동의 운동성을 보다 활성화시킬 수있는 결집력의 강화를 가져왔다"며 "정부가 소비자운동에 대한 정책 수용도를 높여나갈 필요가 있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막을 수 있는 소비자행동 가이드라인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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