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진제 개편하면 한전 年3000억 더 적자

머니투데이 세종=유영호 기자 2019.05.19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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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기 6299억 적자, 올 적자폭 2.4조 넘길 듯… 전문가 "도매가연동제 등 요금체계 정상화 시급"

누진제 개편하면 한전 年3000억 더 적자


정부가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1·2단계 구간을 확대하기로 한 것은 필수 전기사용량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전기를 사용한 냉·난방권을 국민 건강, 생명과 직결된 기본 복지로 봐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



문제는 독점 전기공급업체 한국전력 (20,400원 ▲630 +3.19%)의 재무 여건이다. 한전은 지난 1분기 6299억원의 영업손실(연결기준)을 냈는데 올해 연간 적자 규모가 2조4000억원으로 전망된다. 누진제가 개편되면 해마다 3000억원의 손실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누진제 개편과 도매가연동제 도입 등 전기요금체계 ‘정상화’ 조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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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진제 1단계에 에어컨 사용량 반영

정부가 누진제 1단계 구간을 200kWh에서 300kWh로 크게 확대하는 것은 가구별 필수 전기사용량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에어컨, 전기장판 등 냉·난방 가전기기 사용이 보편화 됐는데도 정작 요금에는 이런 변화가 반영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반영했다.

정부는 2016년 12월 누진제를 6단계·11.7배율에서 현재 3단계·3배율로 개편하면서 가구당 필수 전기사용량을 197kWh로 추산했다. 2014년 기준 가구당 보유 대수가 0.8대 이상 가전기기의 평균 전기사용량을 근거로 했다.


하지만 에너지경제연구원의 ‘2017년도 에너지 총조사’에 따르면 2016년 가구당 에어컨 보유 대수는 0.93대로 누진제 개편 시점에 0.8대를 넘겼다. 정부가 과거 자료를 기준으로 삼아 전기사용량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실제 감사원은 지난달 발표한 ‘전기요금제도 운영실태’ 감사 결과에서 “에어컨 전기사용량을 감안하지 않고 1단계 구간을 정한 것은 부적정하다”며 “에어컨과 전기장판 등 계절성 가전기기 사용량을 고려해 누진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라”고 했다. 감사원이 직접 계산한 가구당 필수 전기사용량은 여름 330.5kWh, 겨울 170.1kWh다.

◇한전 年3000억 추가 부담… 요금체계 정상화 ‘불똥’?

누진제가 개편되면 각 가구는 전기요금 부담을 덜게 되지만 한전은 해마다 3000억원의 손실을 추가로 부담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전은 올해 1분기 영업손실 6299억원을 기록했다. 2017년 4분기 적자(-1294억원) 전환 이후 지난해 3분기를 제외하고 지난 1분기까지 모두 적자를 냈다. 한전은 올해 2조4000억원의 영업손실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누진제 개편에 따른 추가 손실은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한전은 이미 취약계층 복지할인으로 해마다 약 4800억원을 부담하고 있다. 한전 재무구조 악화는 전력인프라 부실화 가능성을 높이고 이는 국민 안전을 위협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국민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누진제 개편하면 한전 年3000억 더 적자
전문가들은 누진제 개편과 함께 필수사용공제 폐지, 전기요금 도매가격연동제 도입 등 전기요금체계 정상화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전은 발전사가 만든 전기를 사서 가정과 공장 등 소비자에 판매한다. 소매가인 전기요금이 고정돼 있는 만큼 국제연료비 상승으로 도매가인 전력구입비가 상승하면 수익이 악화되는 구조다. 현재의 왜곡된 요금체계 개편 없이는 재무구조 정상화가 어렵다는 의미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지난해 원가 이하로 판 전기가 4조7000억원 정도고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보전액 등 정책비용이 6조원이나 됐다”며 “필요한 부분은 정상화하고 어려운 가구는 지금보다 지원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필수사용공제는 월 전기사용량이 200kW 이하(월 전기료 최고 1만9000원)인 가구에 최대 4000원 할인 혜택을 주는 제도다. 도입 취지와 달리 고소득 1인 가구가 전기료 할인을 받는 사례가 빈번해 혜택을 받는 943만 가구 가운데 실제 취약계층은 1.7%(16만 가구)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됐다.

도매가격연동제는 한전이 발전사로부터 전기를 사는 구매단가와 한전이 소비자에게 전기를 파는 단가(요금)를 연동해 조정하는 제도다. 석탄·액화천연가스(LNG) 등 연료값 및 정책비용 변동이 전기요금에 주기적으로 반영된다.

김 욱 부산대 전기공학 교수는 “도매가격연동제도 국제연료가격의 변화와 정책비용 변화를 소비자 요금에 어느정도 연동해 합리적인 (전기) 소비를 유도하는 차원에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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