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 내 세 나라… '조지아'의 눈물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2019.05.2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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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의 그 나라, 조지아 그리고 인기 휴양지 ②] 2008년 러시아 무력 개입으로 남오세티야·압하지야 분리 독립 선언… 국토 20% 잃어

편집자주 세계화 시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각 나라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국제뉴스를 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등을 국제정치와 각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을 통해 재미있게 풀어나갑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조지아 트빌리시 시청사 /사진=위키커먼스조지아 트빌리시 시청사 /사진=위키커먼스


한 국가 내 세 나라… '조지아'의 눈물
러시아는 과거 소비에트 유니언(소련)으로 전 세계 막강한 영향력을 뽐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는 '호시절'을 그리워하며 끊임 없이 열강을 꿈꾼다.



하지만 러시아 경제는 한국 보다 훨씬 작고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적 규제까지 받고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열망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25일 푸틴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난 것은 이 열망의 한 사례로, '작은 투자'로 러시아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만나 한국과 미국 그리고 중국에 "러시아가 북한을 도울 수 있으니 러시아를 중요 역할로 고려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능력있는 한국, 한반도 넘어 세계 봐야" [2019 키플랫폼]딘 벤자민 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인터뷰 참고)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역시 러시아의 영향력 확장 열망에서 비롯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벨라루스,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루마니아, 몰도바 등 7개 국가 사이에 위치하고 흑해와 인접해 있다. 이처럼 지정학적 급소에 위치해 있어 역사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패권 장악을 위한 치열한 다툼의 무대에서 중심에 서있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잃으면 강한 러시아의 꿈이 물거품이 된다고 보아 우크라이나를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서방과의 전략적 완충 지대로 남겨 놓고자했다. 이런 맥락에서 푸틴 대통령은 2014년 3월 18일 우크라이나의 자치공화국이었던 크림 공화국과 합병 조약을 맺었다.

'강한 러시아'로 복귀에의 열망은 사실 이전에도 드러났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2008년 조지아에서 벌어진 남오세티야 전쟁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유사한 사례인데, 러시아는 조지아가 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후에도 조지아에 영향력을 떨치고 싶어했다.
조지아 영토 내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분홍색 부분이 남오세티야, 초록색 부분이 압하지야다. /사진=위키커먼스 조지아 영토 내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 분홍색 부분이 남오세티야, 초록색 부분이 압하지야다. /사진=위키커먼스
이에 따라 러시아는 조지아 영토 내부 분리독립 조짐을 보이던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를 지원했고, 2008년 8월8일 러시아군과 조지아군은 무력 충돌했다. 이 전쟁으로 조지아 영토의 20%에 달하는 지역이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아 공화국으로 실질 독립했고, 러시아가 이 부분을 실효 지배하게 됐다. 조지아는 즉각 러시아와의 관계를 단절했다.


당시 조지아 외교부는 성명을 내고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요구에도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점령지에서 군사력을 되레 증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고위대표도 조지아 주권과 영토 유지에 강력한 지지를 표명하면서 "러시아군의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 주둔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끄덕 없었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를 독립국으로 인정한 나라는 러시아를 비롯해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나우루, 시리아 등 5개국뿐이다.

이 같은 조지아-러시아 관계를 통해 조지아의 현재를 상당 부분 이해할 수 있다. 조지아에서는 구 소련 시절 러시아어가 사용됐고, 소련 해체 이후에는 러시아어 사용이 줄어들다가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 이후 반러정책이 실시됐다.

하지만 여전히 조지아는 러시아에 많은 부분 의존하고 있다. MIT에 따르면 조지아의 주요 수출국가는 △러시아(3억3000만 달러 교역) △불가리아(3억2600만 달러) △아제르바이잔(2억6100만 달러) △터키(2억2900만 달러) △중국(2억9000만 달러) 등이다. 조지아가 물품을 수입하는 국가는 △터키(1억4000만 달러) △러시아(787만 달러) △중국(757만 달러) △아제르바이잔 (5억 7400만 달러) △우크라이나(451억 달러) 등이다. 즉 러시아는 주요 교역 국가로, 조지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조지아가 늘 불안감에 떨고 있는 이유다.

실제 조지아는 이미 2006년 러시아의 조지아산 와인 수입 금지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바 있었다. 러시아는 조지아산 와인 중 44%에서 살충제가 발견됐다며 2006년 3월말 조지아산 와인 수입을 금했다. 러시아는 조지아 와인 수출의 80~90%를 차지하던 시장이었기에, 조지아에 큰 타격이 됐다.
2003년의 장미 혁명 때의 미하일 사카슈빌리 전 조지아 대통령(임기 2004년1월25일 ~ 2013년11월17일). 미하일 사카슈빌리 전 대통령은 장미혁명으로 퇴진한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의 뒤를 이어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사진=위키커먼스2003년의 장미 혁명 때의 미하일 사카슈빌리 전 조지아 대통령(임기 2004년1월25일 ~ 2013년11월17일). 미하일 사카슈빌리 전 대통령은 장미혁명으로 퇴진한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의 뒤를 이어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사진=위키커먼스
얼마 지나지 않은 2006년 5월 러시아는 조지아산 생수도 수입을 금했다. 러시아는 "물에 좋지 않은 성분이 들어있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조지아는 "러시아의 그늘을 벗어나 친유럽 국가가 되기 위해 2003년 장미혁명을 거쳤고, 친EU(유럽연합), 친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정책을 폈는데, 이것이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려 러시아가 무역 보복에 나섰다"고 항변했다.

점차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온전한 독립국이 되고자, 조지아는 서구권 국가와 교역을 확대해 경제적 안정을 꾀하고자 한다. 조지아는 최근 세계 17개국과 FTA(자유무역협정)을 맺고 매섭게 시장을 확대 중이다. 다양한 국가로부터 투자 받고 교역을 늘리기 위해 조지아 정부는 규제도 최대한 느슨하게 맞춰준다. 조지아는 사업 친화지수 전세계 6위, 유럽 2위이고 헤리티지재단이 발표한 경제자유지수는 전세계 16위, 유럽에선 8위다.

조지아는 방위권을 확보하고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주권을 지키기 위해 나토와 EU 가입에도 매달리고 있다. 미국 역시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지지한다. 나토 역시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과 크림반도 병합 이후 지난해부터 폴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에 병력 4000여명을 새로 배치하는 등 '동진정책'을 사용해 러시아의 영향력 확장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조지아의 나토 가입이 쉽지만은 않다. 일부 유럽국가들이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는 데 반대하면서 조지아의 가입은 늦춰지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과거 러시아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구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과 구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을 나토에 가입시킨 게 결국 러시아의 서쪽 무력 팽창에 명분을 줬다고 본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 역시 러시아를 저지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러시아에 또 다른 팽창의 명분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조지아 트빌리시 /사진=위키커먼스조지아 트빌리시 /사진=위키커먼스
다양한 외부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조지아는 안정적으로 성장하며, 저력을 보이고 있다. 조지아는 구소련 독립 이후 10%대에 가까운 고성장을 경험했고, 유럽 재정위기 상황에서도 경제성장세를 이어갔으며 2017년에는 4%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인구가 적지만 지리적 특성 덕에 EU, 흑해경제협력기구(BSEC), 중동걸프협력회의(GCC), 독립국가연합(CIS) 등으로 진출할 수 있는 거점으로서 잠재력도 매우 높게 점쳐진다.

물론 조지아 외부와 내부에서도 회의적 목소리가 나오긴 한다. 미국에서 운영되는 집단 지성 사이트 쿼라(Quora)에 "조지아가 가진 문제는 무엇이 있을까?"란 글이 게시됐다. 본인을 조지아인이라고 밝힌 답변자는 "조지아 사회는 현재 극도로 분화돼있다. 조지아 정부는 (EU 가입을 추구하는 등) 서구 사회의 일부가 되려고 노력 중이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가치와 견해들이 이를 방해하고 있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인구의 약 90%가 믿는) 기독교 정교회의 영향력이 매우 큰 조지아에서는, 성직자들이 공공연히 서구 가치에 대한 무지와 증오심을 퍼뜨린다"고 덧붙였다. 그는 "소수자에 대한 편협한 생각을 조장하고, 국가의 포부에 반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게 조지아에 외국인 혐오증이나 동성애 공포증, 여성 차별 사상 등이 퍼져있는 이유다"라면서 "매우 가부장적인 국가 조지아에서는 강간이나 가정폭력이 발생할 경우 여성 피해자를 비난하는 일도 많다"고 밝혔다. 그는 또 "수도 트빌리시에 모든 게 집중돼있는 점이나, 빈부격차가 심한 점 등도 문제"라고 짚었다.

답변자가 지적한 한계에 더해 높은 빈곤율도 조지아의 한계로 여겨진다. 2014년 세계은행에 따르면 빈곤율은 4년 연속 감소했지만, 여전히 조지아 인구의 3분의 1은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조지아의 빈곤층 인구는 32%로, 그중 28%는 어린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세계 빈곤율은 10%로, 조지아는 세계 평균 보다 훨씬 높은 빈곤율을 보이고 있다.

결국 조지아는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구 소련 국가'가 아닌, '유럽 국가 중 한 곳'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러시아의 강대국을 향한 강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조지아는 꽤나 번영하고 있다. 조지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이재은의 그 나라, 미국 그리고 슈가베이비 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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