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금호타이어·대우조선·동부제철…이동걸의 작품들

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권화순 기자, 박광범 기자 2019.04.1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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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이동걸 스타일](종합) 산업은행의 부실기업 구조조정

편집자주 금호타이어, 대우조선해양, 동부제철 등에 이어 아시아나항공의 주인이 바뀐다. 이 기업들의 구조조정과 M&A는 모두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작품이다. 이 회장은 칼잡이가 아니라 딜메이커 역할을 하면서 채권단 관리 기업의 구조조정을 빠른 속도로 처리하고 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매물 '화장'해 인수자 마음 움직인다
[구조조정, 이동걸 스타일]①'전통적' 구주매각 안 하는 산은



“인수자의 부담을 줄여 마음을 움직인다” “자금 회수보다는 기업회생이 먼저다”

정부와 금융권 인사들은 이동걸 KDB산업은행(산은) 회장이 구조조정 스타일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회장 취임 1년 7개월 만에 금호타이어·대우조선해양·동부제철 등이 새 주인을 찾았다. 이는 ‘산은이 끌어안고 있는 건 해당 기업은 물론 우리 경제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이 회장의 지론이 관철된 결과다. 이 과정에서 산은은 ‘뉴 머니(신규 자금)’을 투입할 새 주인을 찾고 매수자가 우려할 수 있는 리스크를 일정 부분 부담하는 방법을 택했다. 시장이 ‘이동걸식 구조조정’을 주목하는 이유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은은 올해 추진한 대우조선해양·동부제철·아시아나항공의 매각에서 대주주 지분을 파는 전통적 M&A(인수·합병) 방식보다 제 3자 배정 유상증자, 공동 지주사 설립 등 이색적인 방식을 썼다.

1월 공개된 대우조선 매각은 지난해부터 현대중공업을 인수 후보자로 낙점한 채 거래 구조를 설계했다. 현대중공업이 회사를 나눠 지주사를 만들면 산은이 대우조선 지분을 현물 출자하고, 합작법인이 발행하는 신주를 산은이 받아 주주가 되는 형태다. 당초 대우조선 인수 가격은 2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평가됐지만, 실제 현대중공업이 부담할 현금은 4000억원 규모다. 대신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에 1조5000억원 가량을 집어 넣는다.

산은이 신설 지주사 지분을 보유하는 것도 현대중공업의 입맛을 사로 잡았다. 조선업황 개선 시기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위기가 생길 경우 2대 주주 산은의 지원을 기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수의향자와 공개입찰을 전제로 조건부 인수계약을 맺는 ‘스토킹 호스(Stalking Horse) 방식’도 화제였다. 사전 조율 없이 공개 입찰에 들어갈 경우 매각 방법 조율이 어려운 데다 매각 자체가 실패할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에서 ‘고육지책’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딜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동부제철 매각은 제 3자 배정 유상증자으로 경영권을 이전하는 방식을 택했다. 두 차례 매각 실패 전력 탓에 흥행 여부가 불투명했지만 1월 초 매각 공고 후 3개월 만에 KG그룹·캑터스프라이빗에쿼티(PE)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금호타이어 매각에서도 제 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을 선택햇다. 2017년 8월 중국 더블스타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당시보다 매각 가격이 2000억원 이상 낮아졌지만 이 회장은 “금호타이어 부실의 핵심은 중국 사업장이기 때문에, 중국 기업이 해결하는 게 맞다”며 밀어 붙였다.

아시아나항공은 기존 대주주(금호산업) 지분을 매각한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일가의 영향력을 제거하는 것이 핵심 과제여서다. 다만 이 회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구주 인수 자금 외 신주 발행으로 유상증자하는 자금은 회사의 경영정상화에 쓰인다”며 “매수자 입장에선 회사 밖으로 돈이 나가는 게 아니라서 매력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구조조정 기업들이 오랜 기간 부실상태에 있어 매수자를 찾기가 쉽지 않아 산은이 이같은 방식을 쓴다고 본다. 부담스러운 매물을 팔기 위한 나름의 ‘화장’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 회장이 직접 이런 딜(Deal) 구조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과거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과 금융연구원장 등을 역임하며 기업 구조조정 경험을 쌓은 만큼 덩치 큰 부실 기업을 매각하기 위해선 보통의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고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우려도 존재한다. 매각 기업에 모두 2대 주주로 발을 담근 만큼 그간 구조조정 기업에 투입된 자금의 회수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매각 이후에 해당 기업이 어려움을 겪으면 산은의 부담도 가중될 수 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공석과 사석을 가리지 않고 “기업이 새 주인을 찾아 경쟁력을 갖추면 지금보다 회수할 수 있는 자금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한다. 성패는 가까이는 수년, 멀리는 십수년 후 금호타이어·대우조선·동부제철·아시아나항공의 기업가치가 어떻게 바뀔지에 달렸다. ‘이동걸식 구조조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인 셈이다.

변휘 기자

"끌려다니는 구조조정 않는다"…원칙론·직설화법
[구조조정, 이동걸 스타일]②총수·노조·정치권에도 '할 말 한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 사진=김휘선 기자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 사진=김휘선 기자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금호타이어 매각 과정에서 상표권, 우선매수권을 고리로 중국 더블스타로의 매각을 발목 잡았다. 이 때문에 한 차례 매각은 좌초됐고, 산은은 '10년째 금호에 끌려다닌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취임 후 2주 만인 2017년 9월 25일 박 회장을 면담하고, 직후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 경영에서 손을 떼고 우선매수권도 포기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이 회장은 사석에서 "읍소 반, 협박 반이었다"고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선친과 함께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를 만났던 경험을 얘기하며 협조를 구했다. "은행원이셨던 선친께서 불러 호남지역에 갔는데, 박인천 회장께 인사를 시키셨다. 유서 깊은 호남의 기업가문이 이런 일로 어려움을 겪으면 되겠나. 금호타이어의 경영권을 포기하면 좋겠다" 당시 이 회장이 박 회장에게 건넨 말이다.

1년 7개월 후 다시 마주한 자리에서 두 사람은 금호그룹의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결정했다. 이번에는 박 회장이 아들인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과 함께였다. 한때 재계 7위의 재벌그룹이 중견기업으로 추락하는 결정이었지만, 이번에도 이 회장과 박 회장이 만나 담판을 지었다.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박 회장이 마음을 움직이는 중요한 계기가 됐을 것으로 평가된다.

금융권에선 '이동걸식 구조조정'의 핵심 경쟁력으로 원칙주의와 직설화법을 꼽는다. 산은과의 '10년 악연' 주인공인 박 회장과의 두 차례 담판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 회장은 취임 당시 "구조조정의 원칙은 해당 기업의 자구 노력이므로 끌려다니는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고 공표했고, 이후 수많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같은 원칙을 바탕으로 기업 총수는 물론, 노동조합, 정치권과도 타협하지 않았다. 이는 구조조정 기업의 이해관계자에게 '상대하기 어렵다'는 시그널로 작용했다.

금호타이어와 한국GM 구조조정에서 보여 준 노조와의 비타협적 업무 처리는 애초의 구상을 관철하는 원동력이었다. 이 회장은 언론은 물론 노조 지도부와의 면담에서도 연거푸 "구조조정을 위해선 경영진은 물론 노조,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와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협상의 주도권을 잃지 않았다.

특유의 원칙론과 직설 화법은 정치권을 상대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는 한국GM 연구·개발(R&D) 법인 분리 결정을 두고 '2대 주주인 산은이 무능력하다'고 비판받았고, 여당 의원들까지 "GM 본사를 대변하느냐"고 질타당했지만, 이 회장은 줄곧 "R&D 법인 분리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17% 지분의 2대 주주로서는 한계가 있다"는 견해를 고수했다.

고집을 넘어 정치권을 활용하는 수완도 발휘했다. 금호타이어 노조와의 협상은 당시 윤장현 광주시장 등, 지역 정치인들과 협의체를 만들어 노조를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냈고, 한국GM 경영정상화 협상 당시에는 인천 부평에 지역구를 둔 홍영표 여당 원내대표와 공조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철학과 소신에 더해 각계각층과의 소통 능력과 균형 감각을 갖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이 회장의 구조조정 성공에는 정치적 환경도 뒷받침됐다는 평가다. 전직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역설적이지만 호남의 지지를 받는 정권이기 때문에 지역 대표기업인 금호그룹의 구조조정도 가능했을 것"이라며 "이런 환경을 잘 활용한 것도 주효했다"고 강조했다.

변휘 기자

최종구-이동걸 '찰떡' 공조
[구조조정, 이동걸 스타일]③금융위 '끌고' 산은 '밀고'…아시아나 매각 협력

최종구 금융위원장(왼쪽)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사진=머니투데이DB 최종구 금융위원장(왼쪽)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사진=머니투데이DB
‘이동걸식 구조조정’의 성과는 정부와의 공조가 뒷받침됐다. 이동걸 산업은행(산은) 회장이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의 ‘칼자루’를 쥐고,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특히 아시아나항공 매각 결정 과정에서 양측은 찰떡궁합이었다.

지난달 22일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감사의견 ‘한정’이 나온 뒤 이달 15일 금호아시나그룹(금호그룹)이 아시아나항공 매각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금호그룹은 아시아나항공 감사의견을 ‘적정’으로 돌리고, 박삼구 전 회장이 자진 사퇴하며 위기를 봉합하려 했지만, 금융당국과 산은의 기대에는 못 미쳤다.

이 회장은 박 전 회장이 사퇴한 당일 면담에서 “대주주의 시장신뢰 회복 노력”과 함께 “시장의 우려를 해소할 수준의 방안”을 주문했다.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는 차원의 희생을 요구한 셈이지만 시장이 기대하는 대규모 사재 출연과 증자 등의 여력이 부족했던 박 전 회장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카드였다.

산은이 이달 5일 만기였던 재무구조개선 약정(MOU)을 일단 1개월 연장한 것 역시 금호그룹 측이 기대 이하의 자구안을 제출할 것을 예상한 조치였다. 예상대로 금호그룹이 9일 제출한 첫 자구안에서 ‘3년 내 경영정상화’를 조건으로 5000억원의 자금 지원을 요구하자, 이번에는 최 위원장이 나섰다. 그는 10일 영업현장 방문 자리에서 기자들에게 “박 전 회장은 과거에도 한 번 퇴진했다가 복귀했는데, 이번에도 또 그런 식이면 시장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산은은 이튿날 자구안을 ‘퇴짜’ 놓으며 금호그룹을 압박했다.

최 위원장은 자구안 반려를 기다렸다는 듯 11일에도 박 전 회장을 겨냥했다. 그는 또 다른 현장 방문에서 기자들에게 “박 전 회장이 퇴진하겠다면서 또 3년을 달라는 건 어떤 의미인지 살펴봐야 한다”며 “박 전 회장이 물러나도 아들이 경영하겠다면 무엇이 다르냐”고 말했다. 시장에서 흘러나왔던 ‘아시아나항공 매각설’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채권단과 금호그룹은 주말에도 협상을 지속했으며 결국 지난 15일 금호그룹이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포함한 자구안을 제출하면서 사실상 백기 투항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이 회장이 원칙에 입각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이 과정에서 당국이 협력하면서 금호그룹에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전 정권 때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지원을 놓고 정부와 산은 간 파열음이 컸던 것과는 대조된다. ‘부실 덩어리’였던 대우조선에 대한 지원이 경제부처 고위 당국자들의 비공식 모임인 이른바 서별관 회의에서 이뤄진 정황은 2016년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홍기택 전 산은 회장은 당시 결정에 대해 언론 인터뷰에서 “산은은 들러리만 했다”고 말하며 산은과 정부의 기조가 달랐음을 시사했다.

변휘, 권화순 기자

아시아나·대우조선…다음은 대우건설,현대상선

[구조조정, 이동걸 스타일]④'매각실패' 대우건설, '유일 국적선사' 현대상선 과제

대우조선해양, 아시아나항공 등 굵직한 구조조정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고, 이제 산업은행에 남겨진 과제 중 최대 관심사는 대우건설과 현대상선 등이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동걸 산은 회장이 취임 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실패를 맛본 사례 중 하나가 대우건설이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손해를 봐도 팔겠다”며 매각 의지를 드러냈지만, 여전히 산은은 대우건설 지분 50.75%를 갖고 있다.

산은은 지난해 초 대우건설 매각 초읽기 단계까지 갔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호반건설이 우선대상협상자로 선정된 상태였지만 실적 발표를 앞두고 대우건설 모로코 사피발전소의 3000억원 규모 손실이 뒤늦게 드러나 거래가 무산됐다. 당시 이 회장은 산은은 물론 대우건설 실무자들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는 후문이다.

이는 지난해 5월 포스코건설 글로벌인프라본부장(부사장) 출신인 김형 대표이사를 대우건설 사장에 선임하는 것과 같은 인적 교체로 이어졌다. 이 회장은 지속해서 대우건설의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에도 “시장에 원매자가 있다면 언제든지 협상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대상선은 산은의 또 다른 아픈 손가락이다. 지난해 3분기까지 14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누적 적자가 2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한진해운이 해체된 뒤 남은 유일한 국적 해운사로서 반드시 정상화가 필요하다. 산은은 옛 한진해운 출신 인사들을 현대상선에 투입하는 ‘충격요법’을 선택했다.

또 지난달 말 배재훈 전 범한판토스 사장을 새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그는 LG반도체 미주지역법인장과 LG전자 스마트폰 등을 담당하던 MC해외마케팅 부사장을 지냈다. IT(정보기술) 분야 전문성이 높은 인물을 끌어들여 IT와 물류를 결합해 현대상선의 역량을 끌어 올리겠다는 게 산은의 의도로 보인다.

산은은 앞으로 구조조정 자회사 ‘KDB AMC’를 출범시켜 보다 효율성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할 방침이다. 산은 관계자는 “산은은 부실기업에 대한 재무개선만 담당하고 사업부문 구조조정은 KDB AMC가 맡는 게 기본 방침”이라며 “이를 위해 산은 출신뿐만 아니라 각 업종에 전문성이 높은 인재들을 영입해 관리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는 데 중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대우조선해양·아시아나항공 등 지금까지의 매각 유도는 잘 해왔다고 본다. 매각이 답이었다는 건 시장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다"면서도 "앞으로의 매각에서도 지나친 정치적 고려를 배제하고 매각의 원칙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변휘, 박광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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