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 4남 박찬구는 왜 아시아나를 포기했나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2019.04.1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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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난 당시도 "무리한 M&A 안돼" 형과 대립.."아시아나 인수 검토·계획 없다"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사진=머니투데이DB박찬구 금호석화 회장/사진=머니투데이DB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검토하지도 계획하지도 않고 있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공식 입장이다. 아시아나항공이 매물로 나오면서 유력 재벌들이 M&A(인수합병) 대상으로 언급되고 있지만 '금호 패밀리'라는 의미에서 주목받았던 금호석화다. 박 회장이 인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아시아나 인수전은 오로지 '쩐(錢)의 전쟁' 양상을 보일 전망이다.



박 회장은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친동생이다. 가업인 금호그룹이 아시아나를 중심으로 성장해 왔음을 감안할 때 박 회장이 형의 사업을 인수해 가업을 지킬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하지만 내실을 중시하는 박 회장의 경영 스타일과 걸어온 길을 감안하면 아시아나 인수전에 나설 가능성은 처음부터 적었다는게 금호석화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무리한 확장 안돼" 형과도 정면충돌=박 회장은 2009년 이른바 형제의 난 당시에도 형인 박삼구 전 회장과 경영 스타일 면에서 정면 충돌했다. 박 회장은 당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공격적으로 인수하는 형을 가로막으며 강하게 만류했다. 결국 박삼구 전 회장이 수조원 규모 대형 M&A를 강행하자 그룹 모체인 금호산업 지분을 팔아 금호석유화학 경영권을 강화하는 등 본격적인 분리에 착수했다.



아시아나는 박삼구 전 회장의 무리한 그룹 경영정상화 시도의 여파로 부실의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SK그룹과 한화그룹, 신세계그룹도 내심 인수를 원하면서도 떠 안았을때 감당해야 할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고 있다. 형제의 난이 본격적으로 불거진것도 금호가 결국 대우건설을 소화하지 못하고 되팔면서부터다. 무리한 아시아나 인수는 박 회장이 그렇게 막으려 했던 형의 전철이 될 수 있다.

◇'아시아나=박삼구' 애착 가질 구조 아냐=박 회장이 무리수를 둘 만큼 아시아나와 깊은 애정이 있는 구조도 아니다. 아시아나는 1988년 출범 당시 국내 일부 노선만을 취항, 현재의 LCC(저가항공사)보다도 작은 규모로 운영됐다. 이런 아시아나가 명실상부 세계 최고 수준의 항공사로 성장한 건 1990년 박삼구 전 회장이 사장으로 취임한 직후다. 이후 아시아나는 국제노선에 뛰어들고 신규 항공기를 구입하며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반면 박 회장은 독자노선을 가기 전에도 화학부문 회장을 맡으며 아시아나와는 큰 인연을 맺지 않았다. 형제의 난 이후에도 아시아나의 경영은 박삼구 전 회장의 측근인 전문경영인 박찬법 전 회장이 맡았었다. 게다가 선친의 유산 격인 금호타이어 등은 이미 매각이 끝난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박 회장이 형의 손을 떠난 아시아나를 인수해 금호라는 브랜드 아래 묶어놓기 위해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금호산업 이사회를 열어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결정지은 가운데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금호아시아나 본사 건물의 모습.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금호아시아나그룹이 금호산업 이사회를 열어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결정지은 가운데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금호아시아나 본사 건물의 모습.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조단위 쩐의전쟁 "돈이 없다"=금호석화의 실적은 그야말로 독야청청이다. 지난해 경쟁 석유화학업체들이 모두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아든 가운데 금호석화만이 전년 대비 향상된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금호석화는 지난해 연결기준 5542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2017년 2626억원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금액이다. 영업이익률은 무려 9.9%였다.


최근 수년간 흑자 경영을 지속하고 있지만 아시아나를 품기에는 여력이 부족하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금호석화가 남다른 실적을 거두고 있지만 조단위 투자가 필요한 아시아나 인수를 단행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금' 원하는 박삼구, 몸값 어디까지 튈까=아시아나 지분 33.47%를 쥔 박삼구 전 회장 입장에서도 2대 주주(11.98%)인 박 회장에게 아시아나를 넘기기는 어려운 선택이라는게 시장의 중론이다. 고령의 박삼구 전 회장이지만 2015년 금호산업 인수를 통해 그룹을 다시 일으켰던 전력이 있다. 명예회복과 재기를 노릴 가능성이 크며 이를 위해서는 아시아나를 통해 최대한 많은 현금을 손에 쥐어야 한다. 이미 2대 주주인 박 회장이 인수한다면 지분 전량매각이 어려울 수 있다. 동생을 상대로 경영권 프리미엄을 노골적으로 붙이기도 명분이 서지 않는다.

박삼구 전 회장은 딜에 능하다. 금호산업 인수 당시 뜬금없이 호반건설이 낮은 가격에 단독 입찰했다가 유찰됐다. 해프닝 정도로 받아들여졌지만 호반건설이 써낸 6000억원은 고조됐던 매각가격 열기를 잠재우는 역할을 했다. 이후 박삼구 전 회장이 효성과 코오롱, LG 등 백기사들을 더해 무리없이 수천억원의 자금을 마련하자 박삼구 전 회장의 큰 그림이 작동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실사와 본입찰 등 지난한 과정을 남겨두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매각 단가가 조 단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 재계 관계자는 "몸값을 키우려는 주채권은행 산업은행과 박삼구 전 회장의 요구가 일치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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