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만 철창 나오는 나는, 사육곰입니다(영상)

머니투데이 하세린 기자, 이상봉 기자 2019.04.06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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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뷰]웅담 때문에 10년 갇혀 사는 곰들의 대변인, 임태영 녹색연합 활동가

편집자주 #사육곰 #미련곰탱이 #반이달이곰이 해시태그(#) 키워드로 풀어내는 신개념 영상 인터뷰입니다.

철창 안에 갇힌 사육곰. 이들은 나날이 열악해지는 사육환경과 정부의 지지부진한 정책적 판단 탓에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사진제공=녹색연합 철창 안에 갇힌 사육곰. 이들은 나날이 열악해지는 사육환경과 정부의 지지부진한 정책적 판단 탓에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사진제공=녹색연합


우리나라에는 세종류의 반달가슴곰이 있다.
지리산에 방사돼 극진한 대접을 받는 '토종곰', 동물원 등에 사는 '전시관람용 곰', 그리고 철창 안에 갇힌 '사육곰'이다.



사육곰들은 좁은 철창 안에 갇혀 지내다 10년이 지난 뒤에야 웅담을 내어주기 위해 밖으로 나올 수 있다. 평생을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먹이만 먹고 살다 죽어야만 철창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곰들이 우리나라에 526마리(1월 기준)가 있다.

2000년대 중반 사육곰 수는 1500마리가 넘기도 했다. 이후 정부가 2012년 개체수 조사를 한 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총 967마리에 대한 중성화 수술을 완료하면서 더 이상 개체수가 늘어나는 일은 없다. 그러나 현재 철창 속에 갇혀 있는 526마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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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철창에 갇힌 사육곰들은 같은 곳을 빙빙 돌거나 선 자리에서 계속 머리를 크게 돌리는 등 반복되는 이상 행동을 보인다. 웅담 수요가 줄면서 사정이 어려워진 농가에서는 하루에 한번 주던 먹이를 이틀에 한번, 삼일에 한번 주기도 한다. 때문에 사육곰은 야생곰 몸무게의 절반 수준밖에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10년 이상된 곰들을) 다 도축한다는 가정 하에 사실 5년만 지나면 사육곰 산업은 끝낼 수 있어요. 그런데 과연 그게 맞는 방법이냐. 모든 곰들은 그냥 그렇게 죽게 내버려두는 게 맞느냐에 대해서 저희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거고요. 최소한 10년이 되지 않은 곰들만이라도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서 좀 더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합니다."


녹색연합에서 사육곰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는 임태영 활동가를 만나 사육곰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녹색연합은 2003년부터 사육곰 산업 종식을 위한 캠페인을 벌여왔다. 지난해 12월엔 시민모금으로 아기 곰 3마리를 구출해 임시보호소인 동물원으로 옮기기도 했다. 사육곰 산업 37년 만의 첫 구출작업이었다.

지난달 20일 서울 성북구 녹색연합 사무실에서 만난 임태영 활동가는 사육곰들을 위한 생츄어리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지난달 20일 서울 성북구 녹색연합 사무실에서 만난 임태영 활동가는 사육곰들을 위한 생츄어리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1980년대 시작된 사육곰 산업, 끝나지 않는 악몽=맹수를 사육하겠다는 사육곰 산업은 1981년 정부가 농가소득 증대 방안으로 곰 수입을 장려하면서 시작됐다. 곰의 피와 가죽, 웅담 등을 재수출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였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멸종위기종인 곰 보호 여론이 높아지면서 정부는 1985년 곰 수입을 금지했고, 1993년 CITES(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 가입으로 곰 수입과 수출이 전면 금지됐다.

판로가 끊긴 사육 농가들은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고, 정부는 1999년 24년 이상된 곰의 웅담채취를 합법화했다. 이 기준은 2005년 10년 이상으로 다시 완화됐다. 국제멸종위기종인 곰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지면서도 웅담을 채취할 수 있는 모순된 정책을 동시에 시행한 것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웅담 채취를 합법화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뿐이다.

그러나 국내산 웅담에 대한 수요는 급격히 줄었다. 국내서 동물보호 여론이 커지고 웅담을 소비하는 일부 사람들도 동남아의 값싼 웅담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국내 사육곰들의 사육환경은 나날이 열악해지고 있다.

"농가 입장에서는 수지가 맞지 않는 거에요. 사료비나 인건비 등 비용은 계속 들어가는데 수익은 안나니까 가장 간단한 건 비용을 줄이는 거죠. 그래서 곰들에게 원래는 매일 주던 먹이도 이틀에 한번, 삼일에 한번 (주고). 양도 2분의 1에서 3분의 1로 줄이고요. 사육곰들은 그냥 외형적으로 봤을 때도 가죽만 남아 있는, 굉장히 말라보이는 상태입니다."

베트남 탐다오 생츄어리(보호시설)에서 구출된 곰들이 편히 휴식하는 모습. /사진=AAF 유투브 영상 캡처베트남 탐다오 생츄어리(보호시설)에서 구출된 곰들이 편히 휴식하는 모습. /사진=AAF 유투브 영상 캡처
◇"잘못된 정책, 정부도 책임져야"… 생츄어리 건설 공론화=사육곰 문제 공론화에 앞장섰던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는 최선의 안으로 생츄어리(보호시설) 건설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생츄어리를 마련해 사육곰을 단계적으로 매입, 자연사할 때까지 보호관리하자는 것이다. 외국처럼 우리나라도 생츄어리를 만들어 동물보호의 선진사례를 만들어가자는 취지도 있다.

"사실 동남아에서는 밀렵이나 불법 사육이 계속 진행되고 있어요. 그런 곰들을 구출해서 보호할 수 있는 생츄어리가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에 있습니다. 베트남의 탐다오 생추어리라는 곳은 국립공원에 위치하고 있는데, 베트남 정부에서 국립공원 부지를 제공하고 AAF(Asia Animals Fund·아시아애니멀스펀드) 라는 동물보호단체 재단에서 시민들과 기업들 후원을 받아서 시설을 건설하고 계속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현재 약 180마리의 곰들이 구출돼 도움을 받고 있고요."

'왜 세금으로 사육농가를 돕느냐'는 주장에 대해선 적극 반박했다. 임 활동가는 "저희가 생츄어리 건설을 하는데 있어서 정부에 돈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면서 "부지만 대주면 시민 모금과 기업 후원을 받아서 시설도 우리가 건설하고 운영비도 우리가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곰을 수입하라고 장려하다가 다시 곰의 수입도, 수출도 금지시키고 결국에는 국제멸종위기종인 곰의 웅담채취를 허용해준 일련의 과정에서 정부의 책임이 굉장히 크다"며 "정부가 당연히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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