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영상 있어?"…찍힌 피해자 또 낙인찍는 당신도 '가해자'

머니투데이 김세관 기자 2019.04.08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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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클린 2019]①위험수위 넘은 디지털성범죄…'몰카'를 놀이로 취급

편집자주 따뜻한 디지털세상을 만들기 위한 u클린 캠페인이 시작된 지 15년이 지났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공유경제 등 급진전되는 기술 진화가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것으로 기대되지만, 한편으론 기술 만능 주의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지능화 시대에 걸맞는 디지털 시민의식과 소양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올해 u클린 캠페인은 부작용 없는 디지털 사회와 이를 위해 함양해야 할 디지털 시민 의식과 윤리를 집중 점검해봤다.

삽화=임종철 디자이너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지난달 20일 경찰청이 충격적인 범죄 사실을 공개했다. 전국 10개 도시 30여개 숙박업소에 설치한 803개 ‘몰카’(몰래카메라)를 통해 객실 손님들의 사생활을 유료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생중계한 일당이 검거된 것. 지난해 11월24일부터 올해 3월3일까지 3개월여간 이들에게 ‘도촬’(도둑촬영) 당한 투숙객만 1600여명. 객실 내 TV셋톱박스, 콘센트, 헤어드라이어 거치대 등에 난 작은 구멍을 투숙객들은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더욱 충격적인 건 애청자가 많았다는 것. 해당 사이트에 가입한 회원 수가 4000명 넘었다는 점이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타인의 사생활을 촬영해 유통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를 즐기는 사회적 관음증이 음성산업을 키운 셈이다. 지능화 시대를 맞아 퇴출해야 할 우리 사회의 민낯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 동영상 있어?"…찍힌 피해자 또 낙인찍는 당신도 '가해자'


◇증가하는 몰카범죄…죄의식 없는 소비도 문제=스마트폰이 일상화되면서 몰카범죄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양상이다. 영상촬영을 위해 캠코더를 따로 구비해야 한 과거와 달리 지금은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사진과 동영상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촬영할 수 있기 때문.



찍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영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됐고 불법촬영물에 대한 인식 역시 ‘재미’와 ‘놀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온 ‘연예인 몰카 스캔들’이 대표적이다. 가수 정준영(30)과 지인들이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성관계 동영상과 몰카 영상을 공유한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이들이 나눈 대화를 보면 몰카 피해자가 당하는 수치심에 대한 공감과 범죄라는 죄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문제는 일부 연예인만의 일탈로만 치부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여기에는 우리 사회의 깊숙이 뿌리 박힌 그릇된 성의식과 문화가 투영돼 있다. 친구 혹은 지인들끼리 출처불명의 몰카 영상을 공유하는 것도 주변에서 낯선 풍경은 아니다.


경찰이 정준영 사건 관련 동영상 유통행위를 단속한다고 발표하자 영상을 구하기 위한 네티즌들로 인해 ‘정준영 동영상’이란 키워드가 포털 실시간검색어 상위를 차지하고 ‘피해자명단’이 정보지 형태로 돌아 2차피해 논란이 제기된 것은 우리 사회의 천박한 관음문화를 그대로 대변한다.

◇인식도, 연령도 낮아지는 몰카 관련 범죄=숙박업소 몰카나 정준영 스캔들 등 대형 사건을 통해 드러난 디지털 성범죄 행위가 빠르게 청소년층으로 확대된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올해 1월 수원지방법원은 2009년부터 2013년 여자 수영선수 탈의실에 만년필 형태의 몰카를 넣어두고 6차례에 걸쳐 선수들의 탈의장면을 촬영한 전 국가대표 수영선수 A씨(27)에게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몰카를 설치할 당시 A씨는 10대 청소년 시기였다.

지난해 12월에는 서울시내 한 외고에서 남학생이 여학생의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하는 일이 발생해 논란이 됐다. 9월에는 한 장난감회사가 몰카를 연상시키는 장난감을 출시해 부적절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아이들이 몰카를 단순한 놀이 정도로 치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디지털성범죄물을 ‘야동’으로 보는 시각부터 바꿔야”=전문가들은 몰카 등 불법촬영과 공유는 분명한 범죄라는 점을 인식시키고 이를 보는 행위도 성폭력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들의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제대로 알려 2차 피해를 적극 예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영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디지털성범죄대응팀장은 “우리 사회가 디지털성범죄물을 ‘야동’(야한 동영상)이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지상파방송사의 연예오락 프로그램에서 대수롭지 않게 ‘야동’이나 ‘몰카’ 등을 자극적인 대화 소재로 다루곤 하는데 우리 사회의 이같은 저급한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디지털성범죄의 고리를 끊기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팀장은 “디지털성범죄 정보를 생산·유통하는 건 한 사람을 사회적으로 살인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법적 제재 수위도 한층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디지털성범죄 촬영 및 유통을 한 사람은 각각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어야 할 수 있다. 그러나 초범의 경우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판결이 적지 않다. 초범이라도 선처를 받기 어려운 중범죄라는 점을 깨닫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 정부는 ‘라벤지 포르노’ 등 불법영상물이 올라온 경우 정부가 피해자 대신 삭제해주고 유포자들에게 비용을 청구하는 구상권 행사 근거를 마련하는 등 대응수위를 높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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