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카르텔│예능 프로그램 속, 어떤 자백의 순간들

서지연 ize 기자 2019.03.25 09:03
글자크기
승리를 둘러싼 사건들의 실체가 밝혀질수록 미디어에서 성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제 와서 자백에 가까운 어떤 순간들을 돌이켜보는 작업은, 개인의 잘못을 추궁하고자함이 아니라 제작자부터 시청자에 이르는 모두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올바른 성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승리 카르텔│예능 프로그램 속, 어떤 자백의 순간들


“강남 마담들이 뽑은 연예인 베스트에 들어요”

2008년 방송된 MBC ‘공감토크쇼 놀러와’ 221회에서 김구라가 자랑스럽게 내뱉은 말이다. 이날 방송은 ‘2008 연예계 총 결산’ 특집으로 꾸며졌으며, ‘예능 대부’ 이경규와 당시 독설가 캐릭터로 방송가를 종횡무진했던 김구라가 메인 게스트로 출연했다. MC와 패널들은 김구라의 독설가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했고, 이경규는 그를 변호하듯 ‘술자리 최고 매너남’으로 김구라를 뽑았다. 그러다 불쑥 김구라는 자신이 “강남 마담들이 뽑은 연예인 베스트5 중 2위”라고 말했다. ‘이런 이야기가 방송에 나가야 돼요’, ‘우리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라는 부연설명에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고, 이경규는 “사실 내가 마담 랭킹 1위야”라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에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과장을 보태 이야기한 것일 수는 있다. 하지만 ‘마담이 있는 술집’에 출입했다는 사실 자체는 결코 농담거리로 쓰일 만한 일이 아니다. 이경규는 ‘강남 아무 술집에나 들어가 봐. 나한테는 다 외상 줘’라고 호언장담했고, 김구라는 사뭇 진지하게 ‘3차 산업 종사자들의 신뢰는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가 다 으쓱하네요’, ‘연예인의 위상을 높여주시네요’라는 MC들의 맞장구는 비꼬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이 사실을 당시 방송가에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해당 회차의 다시보기 게시물에는 ‘업소 종사자들이 뽑은 매너 예능인 1, 2위는 누구?!’라는 설명이 버젓이 쓰여 있을 정도다.



JYP 엔터테인먼트 전 직원의 업소 출입을 금지한다는 회사 방침을 공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박진영은 Mnet ‘스트레이 키즈’ 5화에서 자기관리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인맥 쌓기를 꼽았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인맥을 쌓는 두 가지 방법으로 ‘여자들이 나오는 술집과 골프 코스’가 있고, 자신은 두 가지 다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발언에 대해 ‘인성을 강조하는 JYP 엔터테인먼트’를 칭찬하기 전에 두 가지 궁금증이 남는다. ‘여자들이 나오는 술집’ 출입 여부가 단지 자기관리라고 이야기하고 넘어갈 문제인가. 그리고 다른 기획사 직원들은 여전히 이런 술집에 출입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을까.

승리 카르텔│예능 프로그램 속, 어떤 자백의 순간들
“널 위해 정말 소중히 내가 만든 거야. 조금씩 마셔”

2004년 매거진 ‘슈어’에 노홍철의 이름으로 실린 글의 일부다. 제목은 ‘범하기 위한 칵테일’로 노홍철이 고등학생이던 시절 ‘스킨십이 간절’해서 ‘여자를 보내는 방법’을 알아보았으며, 그중 수면제와 돼지 발정제를 구하기 힘들어 값은 싸고 알코올 도수는 높은 술을 여성에게 먹였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여성이 정신을 잃는 바람에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결말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과정은 충격적일 만큼 ‘데이트 강간’에 가깝다. 이 글이 논란이 되자 당시 노홍철의 소속사는 ‘노홍철의 이야기를 기자가 각색해서 쓴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해명이 사실이라 해도 스킨십을 목적으로 여성이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먹인 행위를 마치 가벼운 읽을거리처럼 다룬 매거진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남성 구독자를 타깃으로 하는 잡지의 경우 ‘그녀를 훅 가게 만들 작업주’를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는 기사가 오랫동안 심심치 않게 실렸고, 노홍철의 이름으로 실린 이 칼럼도 그러한 맥락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을 단지 누군가의 성욕이나 유흥의 대상으로만 보는 이런 시선은 성범죄의 원인이 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술을 먹여 정신을 잃게 하는 것을 농담처럼 소비하는 남성들의 분위기는 이런 행동들이 마치 죄가 아닌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를 만든다. 2018년 KBS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351회에 출연한 이성종은 함께 출연한 여성 게스트와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남성분이 어떤 여성분이 마음에 들 때 그렇게 타줘요. 금방금방 가라고”라고 말했고 이에 남성 MC들은 ‘마음에 들어서 그랬나 보다’, ‘이런 이야기는 나중에 사석에서 나누자’라고 대수롭지 않게 웃어 넘겼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2017년 대선 당시 자서전 ‘나 돌아가고 싶다’에 수록된 ‘돼지 흥분제 이야기’가 뒤늦게 화제가 되며 논란에 휩싸였다. 그 내용은 홍 전 대표가 대학생이던 시절 하숙집 룸메이트의 짝사랑을 이뤄주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돼지 흥분제를 구해줬다는 것이었다. 홍 전 대표측은 ‘직접 개입한 것은아니고 다만 들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구성하려 했을 뿐이며 당시에도 이미 잘못한 일이라고 반성을 했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사회 분위기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45년 전 일’이라는 변명도 덧붙였다. 1954년생 남자가 그저 ‘농담’이라고 생각했던, 웃어넘길 수 없는 이야기가 1993년생 남자에게 역시 ‘농담’으로 여겨진다. 대체 무엇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는가.

승리 카르텔│예능 프로그램 속, 어떤 자백의 순간들
“한번만 본 사람은 없어. 안 본 사람과 꾸준히 보는 사람이 있을 뿐”
MBC ‘나 혼자 산다’ 159회에서 ‘무지개 회원’들은 김반장의 집을 구경했다. 그의 서재에서 노트북을 발견한 전현무는 “인터넷으로 뭐해요?”라고 물었고, 김영철은 “야동?”이라고 말해 빈축을 샀다. 이에 김반장은 “이외수 선생님이 ‘한번만 본 사람은 없다. 안 본 사람과 꾸준히 본 사람이 있을 뿐’라고 말씀 하셨어요”(라)고 받아쳤다. 방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동에 대한 ‘농담’이다. 이 장면에서 제작진은 ‘야동으로 하나 된 40대 혼자남들’, ‘하여튼 남자들이란’이라는 자막을 달았으며 이날 방송을 내용을 다룬 인터넷 뉴스의 제목은 ‘야동도 털어놓는 솔직당당 매력’이었다. 이와 비슷한 장면을 SBS ‘집사부일체’ 48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날 방송에는 ‘야동순재’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이순재가 멘토로 출연했고, 고정 출연자들은 그에게서 ‘야동을 보는 연기’를 배웠다. 남성 출연자들이 한명씩 돌아가면서 연기를 했고, 그때마다 큰 웃음과 박수가 터졌다.

‘야동을 보는 것이 무슨 죄’냐며 억울해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에서 국내에서 정식으로 제작되거나 수입을 허가받은 것 이외의 포르노를 보는 것은 불법이다. 또한 불법 다운로드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유통되는 그 ‘야동’ 중에는 여성의 사생활을 불법촬영하고 유통한 영상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예를 들어 노홍철은 2005년 인터뷰에서 ‘고등학생 시절 아버지가 선물한 캠코더로 성인물을 불법 녹화해 친구들에게 팔았고, 그중에 ‘빨간 마후라’도 포함되어 있어 곤욕을 치뤘다’고 밝힌 바 있다(‘조이뉴스 24’). 그가 언급한 사건은 엄연히 피해자가 있는 불법촬영물이고 인터뷰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노홍철은 이를 불법 유통까지 한 셈이 된다. 하지만 해당 매체에서는 이를 ‘파란만장한 과거’로 소개할 뿐이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마치 남자들이라면 당연히 보는 것처럼 묘사하는 ‘야동’이라는 표현은 해외에서 제작한 포르노 영상물뿐만 아니라 불법 촬영 영상까지 한 카테고리로 묶고, 이를 희석시킨다. 이를테면 2012년 SBS ‘강심장’ 124회에 출연한 지드래곤은 빅뱅이 뮤직비디오 촬영 차 뉴욕에 방문했을 당시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승리가 숙소에서 매니저 누나의 노트북을 빌려 야동을 다운받았다’고 폭로했다. 그 ‘야동’을 본다던 승리와 그의 친구들이 여성을 어떻게 다루었나. 방송에서 남자들끼리 ‘야동’을, ‘황금폰’을 이야기하며 웃고 떠드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 한, 이 사회는 그들의 혐의와 완전히 무관할 수 없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