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호의 농기계 광고
이런 인식은 광고를 통해 더욱 저급하게 변했다. “오빠~ 실린더와 연결링크가 대물이어야 뒤로도 작업을 잘해요”를 카피로 내세운 건 놀랍게도 농기계 광고다. ‘대물’처럼 성적인 은어로 쓰이는 말을 카피에 넣었다. 작년 봄 충북의 한 돼지농장으로 취재를 갔다 발견한 ‘대호 주식회사’의 홍보물에는 농기계마다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포즈의 여성모델을 함께 배치했다. 이 광고에 충격을 받았던 건 비단 나 뿐만은 아니었다. 그 농기계 광고의 문제점을 지적한 나의 기사가 몇몇 주요 일간지의 인터넷판에서도 인용됐으니 말이다. 전여농은 물론이고 정의당, 녹색당 등의 정당에서도 광고를 집행한 대호 주식회사와 그러한 광고를 무비판적으로 실어온 농민신문까지 규탄하는 논평을 냈다.
이후 대호 주식회사는 농민신문과 두 곳의 일간지에 사과문을 올리는 것으로 갈음했다. 사과문에는 사과문에는 ‘농기계의 기능을 부각시키기 위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 한 것은 불찰이었다고 인정했고,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해 감수와 자문을 받고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내부적인 자성을 하겠다’ 쓰여있었다. 빠른 인정과 사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 사건은 종결된 듯 보였고, 어느새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잊혔다.
반면에 지난해 사건 이후에 홈페이지와 언론에 사과문을 올린 대호 측은 태도가 바뀌었다. “문제가 전혀 되지 않는다. 여성혐오는 기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며 광고에 대해 다 자문 받았고, 모델도 동의했다.” 광고 콘셉트나 지난번 사과에서 약속한 부분을 이행했는지를 물었으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문제의 광고를 개제해 온 농민신문은 작년에 사건이 터졌을 때에는 인터뷰를 통해 “광고 심의규정을 강화하고 대호의 광고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힌 적 있다. 하지만 대호의 광고를 받기 전까지 어떤 심의과정을 거쳤냐는 나의 질문에는 당당하게 반문했다. “그게 어떤 문제가 있나? 광고에서 문제될 요소들은 다 제거했고, 문구는 그곳(대호)에서 샅샅이 재검증을 하고 법적 검증을 받고 의뢰한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이 개선된 광고는 여전히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인지 한번 짚어보자.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윤김지영 교수는 개선된 광고에 여성에 대한 성적대상화가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지적했다. “‘커지고 강력해진 실린더’라며 농기구를 남성의 성기로 두고, ‘예쁘게 쌓아올린 두둑’이라며 자연을 여성의 몸, 성기로 빗댔다. 광고는 여전히 자연과 여성을 힘에 대한 과시의 대상, 경작의 대상, 이용의 대상으로 놓고있다. 농기구 성능이 아닌, 엉덩이를 뒤로 빼는 방식의 포즈를 구사한 여성모델이 맥락없이 배치된 점도 여성의 신체를 성적으로 대상화 한다.”는 것이다. 대호 주식회사의 자성 없는 광고가 다시 등장한 이후 전여농에서도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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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포함해 요즘 청년 여성농민들은 자신의 나이나 외모를 강조하며 ‘처녀농부’, ‘얼짱농부’로 칭하는 것이 대단한 무례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리틀 포레스트’ 속 청순하고 말끔한 여성 주인공에 빗대는 타인들의 시선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농촌 페미니즘의 시초인 전여농의 여성농민운동의 역사는 올해로 30년이 되고, ‘농촌페미니즘’을 전면에 둔 문화단체와 소모임도 농촌 각지에 생겨나고 있는 현실이다. 농촌의 여성들은 자신을 향한 차별에 빠르고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지만 세상일에 게으른 남성들은 아직도 농촌사회가 자신들을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하고 끝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 저 광고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다들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