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농기계 광고에 무슨 문제가 있냐고요?

이아롬(‘헬로파머’ 기자) ize 기자 2019.03.2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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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호의 농기계 광고©올해 대호의 농기계 광고


작년 여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이 광화문에서 연 여성농민대회의 한 편에 참여한 농촌진흥청은 부스에 ‘여성친화형’을 내건 장비와 농기계, 안전수칙을 전시했다. 그러나 여성친화형인지에 대한 설명도 없거니와 장비라고 나와있는 건 분홍색 꽃무늬가 그려진 모자와 장갑이었다. 여성농민에게 필요한 농업장비가 분홍색과 꽃무늬로 디자인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농촌진흥청은 농민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에 초점을 맞춘 듯했다. 하지만 이 자리는 여성농민이 여성농민 전담부서 설치와 농정개혁을 요구하는 자리였다. 주제와 맞는 것은 하나도 없었으며, 상황과 장소를 봐도 이들은 여성에게도, 농민으로 일하는 여성들에게도 대단한 무례를 범했다.

이런 인식은 광고를 통해 더욱 저급하게 변했다. “오빠~ 실린더와 연결링크가 대물이어야 뒤로도 작업을 잘해요”를 카피로 내세운 건 놀랍게도 농기계 광고다. ‘대물’처럼 성적인 은어로 쓰이는 말을 카피에 넣었다. 작년 봄 충북의 한 돼지농장으로 취재를 갔다 발견한 ‘대호 주식회사’의 홍보물에는 농기계마다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포즈의 여성모델을 함께 배치했다. 이 광고에 충격을 받았던 건 비단 나 뿐만은 아니었다. 그 농기계 광고의 문제점을 지적한 나의 기사가 몇몇 주요 일간지의 인터넷판에서도 인용됐으니 말이다. 전여농은 물론이고 정의당, 녹색당 등의 정당에서도 광고를 집행한 대호 주식회사와 그러한 광고를 무비판적으로 실어온 농민신문까지 규탄하는 논평을 냈다.



기사가 이슈가 되자 또다른 사건이 터졌다. 해당 광고에 등장한 모델 측이 내게 연락을 해 자신은 그런 노골적인 포즈의 사진을 찍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렸다. 문제의 광고는 다른 모델의 신체에 피해 모델의 얼굴을 합성한 것이었다. “대호와 계약한 지 5년 정도 됐다. 처음에는 홍보물을 새로 만들 때마다 보내줬는데 그때는 문제될 내용이 없었다. 홍보물이 공유되지 않은 작년부터 이런 방식으로 광고해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모델은 기사를 통해 피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댓글로 2차 피해를 입으며 큰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피해 사실을 더 키우지 않고 개인적으로 소송을 진행하며 사건을 조용히 덮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후 대호 주식회사는 농민신문과 두 곳의 일간지에 사과문을 올리는 것으로 갈음했다. 사과문에는 사과문에는 ‘농기계의 기능을 부각시키기 위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 한 것은 불찰이었다고 인정했고,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해 감수와 자문을 받고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내부적인 자성을 하겠다’ 쓰여있었다. 빠른 인정과 사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 사건은 종결된 듯 보였고, 어느새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잊혔다.



하지만 이후 대호의 처사는 반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소속된 ‘헬로파머’에는 대호의 내용증명이 도착했다. ‘모델의 요청’으로 기사를 삭제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또 포털사이트 네이버 포스트에 공유한 기사에 대해서도 삭제를 요청했고, 네이버는 기사를 삭제했다. 대호 주식회사의 홈페이지에는 다른 여성모델을 고용해 미디어가 지적한 부분만 쏙 뺀 채 같은 콘셉트의 광고를 배치했다. 상황이 이런 식으로 전개되자 피해자도 마음을 바꿨다. 피해자 측은 “기사의 삭제를 요구한 적 없다.”며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일이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고, 회사에 타격을 받았음에도 같은 방식의 광고를 또 만든다니 회사를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이라도 피해 사실을 알려도 좋다.”고 말했다. 이 일에 연루된 여성들 모두가 분노하고, 상처를 받았다.

반면에 지난해 사건 이후에 홈페이지와 언론에 사과문을 올린 대호 측은 태도가 바뀌었다. “문제가 전혀 되지 않는다. 여성혐오는 기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며 광고에 대해 다 자문 받았고, 모델도 동의했다.” 광고 콘셉트나 지난번 사과에서 약속한 부분을 이행했는지를 물었으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문제의 광고를 개제해 온 농민신문은 작년에 사건이 터졌을 때에는 인터뷰를 통해 “광고 심의규정을 강화하고 대호의 광고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힌 적 있다. 하지만 대호의 광고를 받기 전까지 어떤 심의과정을 거쳤냐는 나의 질문에는 당당하게 반문했다. “그게 어떤 문제가 있나? 광고에서 문제될 요소들은 다 제거했고, 문구는 그곳(대호)에서 샅샅이 재검증을 하고 법적 검증을 받고 의뢰한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이 개선된 광고는 여전히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인지 한번 짚어보자.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윤김지영 교수는 개선된 광고에 여성에 대한 성적대상화가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지적했다. “‘커지고 강력해진 실린더’라며 농기구를 남성의 성기로 두고, ‘예쁘게 쌓아올린 두둑’이라며 자연을 여성의 몸, 성기로 빗댔다. 광고는 여전히 자연과 여성을 힘에 대한 과시의 대상, 경작의 대상, 이용의 대상으로 놓고있다. 농기구 성능이 아닌, 엉덩이를 뒤로 빼는 방식의 포즈를 구사한 여성모델이 맥락없이 배치된 점도 여성의 신체를 성적으로 대상화 한다.”는 것이다. 대호 주식회사의 자성 없는 광고가 다시 등장한 이후 전여농에서도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나를 포함해 요즘 청년 여성농민들은 자신의 나이나 외모를 강조하며 ‘처녀농부’, ‘얼짱농부’로 칭하는 것이 대단한 무례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리틀 포레스트’ 속 청순하고 말끔한 여성 주인공에 빗대는 타인들의 시선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농촌 페미니즘의 시초인 전여농의 여성농민운동의 역사는 올해로 30년이 되고, ‘농촌페미니즘’을 전면에 둔 문화단체와 소모임도 농촌 각지에 생겨나고 있는 현실이다. 농촌의 여성들은 자신을 향한 차별에 빠르고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지만 세상일에 게으른 남성들은 아직도 농촌사회가 자신들을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하고 끝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 저 광고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다들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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