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엔 넥타이 메고 밤엔 기타 메고…'김대리의 이중생활'

머니투데이 신아름 기자 2019.03.22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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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직장인 밴드 '플라토닉 러브 호텔' 인터뷰

직장인 밴드 '플라토닉 러브 호텔' 멤버들. 사진 왼쪽부터 정인석(회계사), 김성현(금융투자협회 대리), 류정석(최근 퇴사 후 개인사업자 등록)/사진제공=플라토닉 러브 호텔직장인 밴드 '플라토닉 러브 호텔' 멤버들. 사진 왼쪽부터 정인석(회계사), 김성현(금융투자협회 대리), 류정석(최근 퇴사 후 개인사업자 등록)/사진제공=플라토닉 러브 호텔


“‘밴드’가 홍대 인디신에서나 가능하다는 생각은 고정관념일 뿐입니다. 돈을 버는 직장인이라 오히려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할 수 있는 거죠.”



중학교 시절 처음 잡은 클래식 기타가 출발점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록에 빠져 대학시절 동아리 밴드에서 열정을 불태웠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도 컸고, 한때 꿈꿨던 음악가의 삶은 그렇게 멀어졌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 ‘아재’ 김성현 금융투자협회 홍보실 대리(40)가 직장인 밴드 ‘플라토닉 러브 호텔’ 멤버로 다시 기타를 잡은 것은 2016년의 일이다. “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밴드를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 밴드 리더인 류정석(베이스, 38) 씨가 툭 던진 말에 아주 오래 전 사라진 줄 알았던 음악에 대한 열정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대학시절 같은 밴드에서 활동하던 회계사 정인석(드럼, 37) 씨도 의기투합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 결혼해 애도 낳고 각자 바쁜 삶을 살고 있던 아재 셋은 그렇게 자석의 N극과 S극이 이끌리듯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용돈을 모으고 비상금을 정리해 필요한 장비를 새롭게 마련한 채.

플라토닉 러브 호텔은 범상치 않은 이름답게 평범한 직장인 밴드를 거부한다. 단순히 가수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커버 밴드’에 그치지 않고 ‘직장인의 애환’을 콘셉트로 정해 직접 곡을 쓰고 공연하며, 사비를 털어 음원도 발매한다.

김 대리는 “최근 가요계의 흐름은 K팝으로 대표되는 역동적이고 화려한 음악과 감수성 짙은 사랑 노래로 양분되는데 일반 직장인들이 이런 가사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싶었다”며 “회식의 숙취와 이별의 아픔에도 눈을 뜨면 회사에 나가야 하는 직장인의 숙명에 대해 누군가 얘기를 해주면 공감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탄생한 곡이 <존 버>다. 암호화폐 투자가 한창이던 2017년, 가격 폭락에도 손절 없이 코인을 보유하는 개념으로 ‘존버’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이 표현은 ‘더럽고 치사해도 회사 때려 치우지 말고 꿋꿋이 버티는’ 직장인의 상황을 빗댄 말이기도 하다. 월급을 마약 삼아, 대출을 운명 삼아 버티는 수많은 직장인을 1979년생 존 버(John Burr)라는 인물로 의인화해서 만든 이 곡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잔잔한 공감을 얻고 있다.

김 대리는 “곧 나올 노래는 예정에 없던 회식에 불려가 직장 상사 눈치 보며 열심히 폭탄주 타고 노래방에서 탬버린 흔드는 김대리의 일상을 그린 곡”이라며 “이어 야근과 회식에 지쳐 집으로 돌아온 이들을 위로하는 ‘어른을 위한 자장가’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어도 직장생활과 병행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멤버들은 둘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조율하고 있을까.

정 회계사는 “밤 늦게까지 노래를 만들거나 합주를 하고 출근하면 피곤하지만 행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밴드를 핑계로 회사에 소홀하고 싶지 않은 게 멤버들의 생각”이라고 답했다.

회사에서 인정받아야 직장생활을 오래 할 수 있고, 직장생활을 오래 해야 밴드도 여유 있게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밴드를 통해 삶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는 말이다.

김 대리는 “밴드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직장인의 행복’으로 한때 다른 꿈을 꿨지만 지금은 넥타이에 갇혀 사는 분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작업도 구상 중”이라며 “그렇게 직장생활의 애환을 달래면서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싶다”고 말했다.
직장인 밴드 '플라토닉 러브 호텔' 멤버들의 공연 모습. 윗줄 좌측부터 김성현, 류정석, 정인석/사진제공=플라토닉 러브 호텔직장인 밴드 '플라토닉 러브 호텔' 멤버들의 공연 모습. 윗줄 좌측부터 김성현, 류정석, 정인석/사진제공=플라토닉 러브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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