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도 속았다…'짝퉁 슈프림' 어떻게 합법이 됐나

머니투데이 강기준 기자 2019.03.19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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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프림 로고도 美미술가 차용…상표 등록 미루다 짝퉁업체가 전세계 67개국서 선점

/사진=슈프림 SNS./사진=슈프림 SNS.


짝퉁업체 '슈프림 이탈리아'의 매장 모습. /사진=슈프림 이탈리아 SNS.짝퉁업체 '슈프림 이탈리아'의 매장 모습. /사진=슈프림 이탈리아 SNS.
지난해 12월, 삼성전자 중국법인은 베이징에서 갤럭시A8s 출시 행사를 열며 깜짝 발표를 했다. 전세계에서 제일 핫한 브랜드 '슈프림'과 협업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자리엔 슈프림 경영진 2명도 참석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진짜 슈프림이 아니라 '슈프림 이탈리아'라는 짝퉁 업체였던 것. 슈프림 측은 SNS에 삼성과 공식적으로 협력한 적이 없며 불쾌감을 표출했고, 삼성은 급히 협업을 취소했다.



18일(현지시간) CNN은 미국 뉴욕의 스트릿브랜드 '슈프림'이 전세계에서 짝퉁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슈프림 이탈리아'같은 합법적 짝퉁업체들이다. '슈프림 이탈리아'는 짝퉁이지만 유럽과 중국, 아프리카 등 전세계 67개국에서 상표권을 먼저 등록해 합법적인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 이 업체는 추가로 90여개국에도 상표권 등록 절차를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 중국법인과 슈프림의 협업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중국에서 슈프림 상표권을 가진 쪽 역시 '슈프림 이탈리아'였기 때문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슈프림은 1994년 영국계 미국 사업가 제임스 제비아가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설립한 후 전세계에서 가장 핫한 브랜드로 떠올랐다. 루이비통 같은 명품업체들을 비롯해, 나이키, 라코스테, 팀버랜드 등 다수의 브랜드들과 협업을 했다. 빨간 직사각형 안에 흰색으로 새겨진 '슈프림'(Supreme) 마크는 가치가 10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뉴욕포스트지가 슈프림 광고를 게재하자 새벽 일찌감치 신문이 동나기도 했고, 2017년에 출시된 슈프림 로고가 새겨진 뉴욕 지하철 카드는 현재 온라인에서 500달러에 거래되는 등 하나의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슈프림이 그동안 적극적으로 상표 등록을 하지 않았던 데는 이유가 있다. 슈프림의 로고도 사실 독창적으로 탄생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 로고는 미국 개념주의 미술가인 바버라 크루거가 1980년대부터 주로 사용한 빨간색 박스안의 하얀색 폰트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원작자인 크루거도 2017년 해당 폰트가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면서 슈프림에 대해 딱히 소송을 제기하진 않고 있다.

/사진=바버라 크루거 홈페이지./사진=바버라 크루거 홈페이지.
슈프림의 창립자 제비아 역시 2009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슈프림은 브랜드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저 좋은 이름"이라며 "그래서 상표 등록을 하기가 어렵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슈프림은 정작 미국에서도 2012년까지 상표권 등록을 하지 않았다. CNN은 슈프림도 20여년 전 프랑스의 한 브랜드의 디자인을 허락없이 차용했다가 정지명령 서한을 받고 해당 제품을 회수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슈프림 측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사이 '슈프림 이탈리아'가 먼저 전세계 곳곳에서 상표권 등록을 마치고 버젓이 정품 행세를 하고 있게 된 것이다. 슈프림은 뒤늦게 짝퉁업체들로 인한 피해가 커지자 상표권 방어에 나섰지만, '슈프림 이탈리아'와는 이탈리아에서 7년 넘게 법정 싸움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 법원은 2017년 두 차례나 슈프림의 손을 들어줬지만, 슈프림 이탈리아는 계속 항소하고 있다. 이 업체는 '슈프림'이라는 단어가 아주 좋고 특별함을 표현하는 일반적인 단어이기 때문에 특정 업체만 독점하도록 특혜를 줘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법정 싸움이 스페인으로 옮겨졌다. 슈프림 이탈리아는 스페인에 4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온라인쇼핑몰도 운영하며 유럽 40개국으로 배송까지 한다. 지난해 4월에는 유럽연합(EU) 지식재산권 사무소(EUIPO)가 슈프림 측의 상표권 문제 제기에 반대되는 판단을 내리기도 했고, 슈프림 이탈리아측은 세르비아, 벨라루스, 사이프러스, 포르투갈을 비롯해 중동에도 매장을 낼 계획이라 법정 싸움은 끝이 없을 전망이다. 지난 6일에는 중국 상하이에 슈프림 가짜 매장이 오픈해 중국인들이 개점 전부터 줄을 서는 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슈프림 측은 "이건 위협이라기보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슈프림 이탈리아는) 슈프림이 아니라 고객들에 대한 사기 행각"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슈프림은 미국 뉴욕(2개), LA,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일본 6곳 등 전세계 11개 매장과 자사 온라인 사이트에서만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고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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