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규성 생산성본부 회장 "대기업이 생산성 주도하던 시대 끝나"

머니투데이 대담=송기용 산업1부 부국장 , 정리=심재현 기자, 사진=김창현 기자 2019.03.1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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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투초대석]

/사진=김창현 기자/사진=김창현 기자


결국 '선순환' 문제라고 했다. 문재인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 출신으로 한국생산성본부를 이끄는 노규성 회장(62·사진)은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의 협업체계와 선순환 구조없이는 혁신성장도, 지속가능한 성장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대기업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대기업이 그동안 중소기업을 너무 갈취했기 때문에 산업 전반의 혁신역량이 고갈됐다는 것이다.

노 회장은 대기업에 대한 지원은 지원대로, 신사업 발굴을 위한 규제개혁은 규제개혁대로 게을리하지 않으면서도 중소·벤처·스타트업 기업을 4차 산업혁명 시대 생산성 혁신의 새로운 마중물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절실한 때라고 진단했다.



생산성본부가 올해 중점을 두고 추진하려는 분야도 바로 이런 사회적 가치 제고 사업이다. 산업계의 체계적인 생산성 향상을 지원하기 위해 1957년 설립된 지 60여년만에 단순한 생산성 향상 지원을 벗어나 경제·산업 전반의 패러다임 변화를 뒷받침하는 지원군으로 나선 셈이다.

노 회장은 지난해 2월 취임 직후부터 생산성 향상과 4차 산업혁명 전문가로 국내외 현장을 누볐다. 인터뷰가 이뤄진 지난달 20일에도 그는 경북 구미 지역의 강연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인터뷰는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생산성본부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노 회장과의 일문일답.



-우리나라 노동생산성이 2017년 기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24개국 가운데 17위라고 한다.
▶스마트하게 일할 수 없는 환경이 가장 문제다. 여전히 일의 질보다 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조직 내부 위계를 중시하는 근무 여건도 창의성을 억누른다. 수동적으로 일하는 시스템에선 노동시간당 생산성이 높아질 수 없다. 저부가가치 생산구조는 신성장의 최대 걸림돌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일의 범위와 방식, 속도를 완전히 탈바꿈시키는 새로운 생산성 혁신이 진행 중이다. 이런 시도가 기업의 실적 개선과 일자리 확대, 더 나아가 경제의 선순환 구조 정착으로 이어질 것이다. 몇몇 글로벌 대기업을 제외하면 스마트공장 같은 생산성 혁신이 그렇게 늦은 것도 아니다.

-실제 사례가 있나.
▶자동차용 용접 너트와 정비 공구를 만드는 프론텍이라는 중소기업이 있다. 수작업 오차 문제를 개선하려고 스마트공장 일환으로 생산관리시스템을 도입했는데, 비숙련자도 생산라인에 설 수 있게 되면서 매출이 4% 늘고 불량률이 80%나 줄었다. 경력단절여성도 40명 이상 신규 채용했다.


해외에선 지멘스가 기존 고용을 유지하면서 고부가가치 직무 전환 등으로 생산성을 8배 끌어올렸다. 우리만이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서 생산성 혁신을 통해 일자리와 소득을 끌어올리는 선순환 작업이 한창이다.

-과거에 수립한 대책은 왜 지금 효과를 못 보나.
▶돈줄을 쥔 대기업이 불안해 혁신투자를 안한다. 20년 전, 10년 전엔 패스트팔로워 입장에서 리스크가 적었지만 이젠 퍼스트무버로 위험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선 자연스레 혁신성장의 키가 중소·벤처기업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데 우리 중소기업은 그럴만한 여력이 없다. 우리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하청업체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둘 관계에서 여전히 가장 중요한 문제는 원가절감 전가다. 결국 대기업의 혁신역량이 고갈되고 갈수록 산업 전반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동안 중소기업을 너무 갈취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현 정부의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이나 최저임금 인상 기조가 생산성 향상이나 혁신을 가로막는다고 한다.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의 불안이 클 수 있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문제되는 부분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주 52시간 근로제나 최저임금 인상은 혁신성장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따로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맞물려서 동시에 진행되는 시대적인 변화의 흐름이자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얘기다.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하는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경쟁력을 높일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 하는 때다. 기업도 받아들일 점은 받아들여야 한다.

사진=김창현 기자사진=김창현 기자
-혁신성장을 논하면서 4차 산업혁명을 빼놓을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은 원한다고 하고 원하지 않는다고 안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미 주요 선진국뿐 아니라 중국에도 밀렸다는 기사가 나온다. 그런 시대의 중심축 가운데 하나는 앞서 말한대로 중소·벤처기업이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기존 산업 분야에선 점점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이 어려워질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의 협업체계가 절실한 이유다. 기술착취나 원가절감 전가가 아니라 제대로 된 가치보장이 이뤄져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생산성본부가 구체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이 있나.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과 만났을 때 사회적 가치를 얘기했다. 대기업에서 SK그룹이 선도적으로 전체 임직원 평가를 재무가치 50%, 사회적 가치 50%로 한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사회적 가치 지표를 생산성본부에서 개발하고 있다. 지표가 나오고 적용 기업이 늘어나면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많이 바뀔 것으로 본다.

-중소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 사업도 있나.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중소·영세 공장 지원도 준비하고 있다. 공장 재활력 사업은 거제·목포·군산·통영 등 위기지역 공장이 대상이다. 스마트공장 도입이 어려운 영세공장에 환경개선설비를 지원하고 경영컨설팅을 진행하는 사업이다. 폐공장을 문화공간이나 청년 창업공간으로 만드는 리모델링 사업도 구상 중이다.

-지난해 12월 혁신성장추진협의회를 결성했는데 혁신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가 규제개혁이다.
▶기존 규제가 걸림돌인 분야가 많다. 많은 기업과 인력이 규제를 피해 해외로 빠져 나간다. 정부가 최근 규제 샌드박스를 추진하고 있다. 혁신성장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규제 샌드박스 일환으로 도심 수소충전소와 유전체 분석서비스가 허용됐다. 청신호라고 본다.

물론 규제개혁만으로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카풀 갈등으로 다 확인하지 않았나. 새로운 사업 기회가 생겼을 때 기존 이해관계자가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주면 좋지 않을까 한다. 수익을 일정 비율로 나눈다든지. 기존경제와 신경제의 만남의 아이디어가 관건이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경험이 많은 것으로 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생산성 혁명의 바탕은 소프트웨어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이 모두 소프트웨어다. 소프트웨어를 어떻게 접목하느냐에 따라 경쟁력이 결정된다. 스마트공장도 소프트웨어를 통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사례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서 다행이다.

-취임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임기 내에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대중소기업간 사회적 가치를 확산시키고 규제개혁 등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지원하는 것 외에 생산성본부의 글로벌 진출에 속도를 내려 한다. 생산성본부는 국내에서 생산성 향상 컨설팅과 교육에서 절대강자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경제개발 모델에 대해 개발도상국의 관심이 많다. 중남미개발은행과 함께 칠레, 콜롬비아 정책 개발을 자문했다. 루마니아 정부와 현지 생산성본부 설립도 논의 중이다. 앞으로 선진국과도 협력하는 글로벌 생산성 사업을 전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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