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FFLER] 고종이 부릅니다 '아낌없이 주는 조선' (feat.러시아·일본 "퍼가요~♡")

머니투데이 이예진 크리에이터, 홍재의 기자, 신선용 인턴디자이너, 박광범 기자, 하혜주 크리에이터, 김현아 기자 2019.03.02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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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백성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쳐야 했던 이유를 찾아 아관파천 길을 걸어봄 ②

편집자주 100년 전 3월1일.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수만명이 외친 "대한독립만세!" 거리로 뛰쳐나온 백성들은 목숨을 걸고 이렇게 외쳤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3·1운동이 일어난 이듬해 4월 중국 상해에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졌어. 우리의 주권을 끝까지 지키겠다며 임시로 정부를 만든 거지. 왜 우리나라도 아닌 남의 나라 땅에 가서 임시정부를 세워야 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그때 그 시절 조선으로 돌아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아보려 해. 조선이 폭망ㅠ하는 과정에 무슨 사건들이 있었는지 말이야…(또르르)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하는 3·1운동.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하는 3·1운동.


[MUFFLER] 고종이 부릅니다 '아낌없이 주는 조선' (feat.러시아·일본 "퍼가요~♡")
일본군이 조선에 들어와 설치고 다닐 수 있도록 빌미를 내준 건 사실 고종이었어. 1894년 전봉준을 중심으로 전라도, 충청도 지역에서 동학교도들과 농민들이 힘을 합쳐 동학농민운동을 벌였거든? 하도 탐관오리들이 갑질을 시전하며 돈이며 쌀이며 있는대로 뺏어가고 괴롭히니까 더 이상은 이렇게 당하고만 살 수 없다, 해서 들고 일어난 거지.

'고종의 길'의 원래 모습./사진제공=국립중앙도서관'고종의 길'의 원래 모습./사진제공=국립중앙도서관
동학농민군이 전주를 접수하면서 점점 레벨업을 하다보니 고종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겠지? 우리나라 군대 갖고는 진압이 안 되니까 할 수 없이 청나라에 도와달라고 SOS를 쳤어. 예전에 임오군란(1882년 신식 군인과 달리 차별 받던 구식 군인들이 일으킨 정변) 때도, 갑신정변(1884년 개화파들이 일으킨 정변) 때도 청나라에 '해협미'를 외쳤던 전적이 있었거든.



고종은 이번에도 청나라가 다 해결해줄 거라 믿었어. 하지만 그건 고종의 매우 큰 착각이었지. 어쩌면 조선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됐을지 몰라. 당시 대신들도 이번엔 청나라한테 그러지 말자고 말렸대. 이유는 바로 '톈진조약' 때문이었지.

1894년 전봉준을 중심으로 일어난 동학농민운동.1894년 전봉준을 중심으로 일어난 동학농민운동.
청나라와 일본이 맺은 톈진조약에는 '청나라가 조선에 군대를 보내? 그럼 일본도 보내!'란 내용의 조항이 있었어. 만약 조선이 '청나라야, 조선에 군대 좀 보내서 저 동학농민군 쓸어줘!'라 요청해 실제로 청나라가 조선에 군대를 파병하면 일본도 (뜬금포이긴 하지만) 조선에 똑같이 군대를 보낼 수 있는 거야. 청나라에 초대장을 보내는 순간 자동으로 일본에도 초대장이 날아가는 셈이지.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청나라는 조선에 군대를 보냈어. 일본으로선 뜻밖의 개꿀. 톈진조약을 들어서 군대를 이끌고 조선에 들어왔어.

[MUFFLER] 고종이 부릅니다 '아낌없이 주는 조선' (feat.러시아·일본 "퍼가요~♡")
망할 톈진조약 덕분에 조선에 기어들어온 일본군은 관군과 동학농민군이 전주에서 화약(우리 서로 화해하고 앞으론 친하게 지내자. 약속!)을 맺어 상황이 종료되고서도 일본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어. 조선을 잡아먹을 찬스가 생겼는데 놓칠 수 없었겠지. 총칼로 경복궁을 점령하고선 조선을 협박했어. 청나라랑 연 끊고 개혁을 하라면서 말이야. 이 사건이 '경복궁 습격사건'이야.

톈진조약으로 청나라군와 일본군이 조선에 들어오게 됨. 톈진조약으로 청나라군와 일본군이 조선에 들어오게 됨.
경복궁 습격사건 이틀 후 일본군은 인천 앞바다에서 청나라 함대를 기습 공격해. 이 일로 청나라와 일본이 전쟁을 시작하는데 싸우려면 지들 땅에서 싸우지 왜 조선에서 싸우냐고요. 청나라와 일본이 치고 박고 싸웠는데 조선이 더 많이 얻어터진 이 '청일전쟁'에서 하필이면 일본이 이겼어. 아시아의 영원한 원톱은 청나라(중국)일 줄 알았는데 어느새 일본이 이렇게 커버렸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대가로 랴오둥반도, 산둥반도, 타이완을 먹게 돼. 근데 이게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 세계적으로 짱 먹던 나라들이 보기엔 어이가 없었던 거야. '야, 일본 쟤네 뭐 하냐?' 싶었던 이 세 나라는 일본한테 랴오둥반도를 청나라에 돌려주라고 압박해. 이를 '3국간섭'이라고 해.

최근 복원돼 개방한 고종의 길.최근 복원돼 개방한 고종의 길.
일본이 아무리 컸어도 러시아, 프랑스, 독일 앞에선 빵셔틀일 뿐. 랴오둥반도, 산둥반도는 돌려주고 타이완 하나만 가져가게 돼.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고종은 '러시아>>>>>>일본'이라 생각하게 됐고 일본의 진상짓이 날로 심해지자 뒤에서 러시아랑 손을 잡으려 시도했지. 이걸 눈치 챈 일본이 빡쳐서 명성황후를 살해하자 식겁한 고종이 아예 러시아의 품으로 도망간 게 아관파천인 거야.

[MUFFLER] 고종이 부릅니다 '아낌없이 주는 조선' (feat.러시아·일본 "퍼가요~♡")
아관파천 때 경복궁 영추문을 빠져나간 가마 두 대는 어떤 길로 러시아 공사관까지 간 걸까? 작년 10월 아관파천 때 고종이 간 길이라 추정되는 '고종의 길'이 정식 개방됐어. 덕수궁 돌담길에서 (구)러시아 공사관까지 이어지는 길이야. 당시 이 근처엔 러시아 말고도 영국, 미국 공사관이 있어서 각국 경비들이 경계를 섰겠지? 그래서 일본군이 함부로 설치지 못했겠지? 그래서 이 길이 아관파천 길이 아닐까 추정한 거지.

아관파천 이후 고종이 머물렀던 (구)러시아 공사관 /사진제공=문화재청아관파천 이후 고종이 머물렀던 (구)러시아 공사관 /사진제공=문화재청
'고종의 길'은 옛 지도를 바탕으로 복원한 길이야. 하지만 아관파천 때 고종이 이 길로 갔다는 자료는 없대. 해방 이후 지도에 'King's road'라고 적혀있긴 했는데 글자가 흐릿해서 백퍼 확실한지는 알아보기가 힘든가봐. 그래도 지도에 나오는 표현으로 이 길을 '고종의 길'이라 한 거지.

동학농민운동 때 들어온 일본군과 청나라군이 한판 붙으면서 일어난 청일전쟁.동학농민운동 때 들어온 일본군과 청나라군이 한판 붙으면서 일어난 청일전쟁.
'고종의 길'이 진짜 고종의 길인지 아닌지 알 순 없지만 어쨌든 고종은 무사히 러시아 공사관에 들어갔어. 일본은 러시아 공사관 앞으로 대포를 끌고 와서 고종이 경복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대포를 쏘니 마니 난리를 쳤지. 일본보다 훨씬 스펙 좋은 러시아가 뒤에 있는데 일본이 아무리 진상을 피워봤자. 그렇게 고종은 아관파천 이후 약 1년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렀어.

[MUFFLER] 고종이 부릅니다 '아낌없이 주는 조선' (feat.러시아·일본 "퍼가요~♡")
왕이 러시아 공사관에 있는데 신하들도 러시아 라인을 타는 게 당연하겠지? 친일 내각은 무너지고 친러 내각이 들어섰어. 그러는 사이 러시아는 '조선'이란 꿀을 빨았지. 산림 채벌권과 부산에 있는 절영도(지금의 영도)를 달라고 요구했어.

당시 조선은 호구였... /사진=인터넷 커뮤니티당시 조선은 호구였...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러시아가 도움도 주고 목숨도 지켜주는데 그 정도는 선물로 챙겨줄 만도 하겠지만 문제는 '최혜국 대우'가 남아있다는 거. 개항하고서 서양 나라들과 맺은 조약엔 최혜국 대우 조항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었어. A 나라에 선물을 주면 다른 나라에도 똑같이 선물을 쥐어줘야 한다는 내용의 조항이지. 한마디로 '어느 한 나라만 챙겨주지 말고 두루두루 다 줘라 줘'라고 할 수 있지.

청나라고 일본이고 그냥 좀 나가줄래? /사진= MBC '무한도전' 방송화면청나라고 일본이고 그냥 좀 나가줄래? /사진= MBC '무한도전' 방송화면
최혜국 대우 때문에 조선은 미국엔 금광, 일본엔 철도 부설권을 떼어 줬어. 안 그래도 없이 사는 마당에 돈 될 만한 건 죄다 주변 강대국들한테 뺏기고 앉아 있는 조선 신세ㅠ

비록 궁궐을 비우고 도망친 신세이긴 했지만 고종은 다시 나라를 세우기 위한 준비를 했어. 강제로 진행하던 단발령(백성들아, 이제 머리 기르지 말고 다 잘라)을 각자 편한 대로 결정하라며 성난 민심을 수습해 나갔지. 하지만 이 모든 게 러시아의 감시 아래 이뤄졌다는 사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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