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것은

김지양(플러스사이즈 모델/‘66100’ 대표) ize 기자 2019.02.1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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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시절부터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즐거웠다. 나의 외모에 자신감이 넘쳐서라기보다, 사진기 앞에서는 솔직해지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울고 있을 때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사진을 찍어 남기려는 부모님 때문에 성질이 난 적도 있었지만, 대체로 사진기 앞에서 나는 그저 신난 어린이였다. 그럼에도 나는 키가 크지 않아서 모델이 되겠다는 생각은 언감생심 하지 못했는데, 우연한 기회로 스물다섯에 미국에서 플러스 사이즈 모델로 데뷔를 했다. 그런데 데뷔를 하고 나서야 모델은 누군가가 나를 모델로 선택해주지 않으면 모델일 수 없는, 극단적으로 수동적인 직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캐스팅되기 위해 내가 원치 않더라도 대중이나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사이즈/(·)이미지가 되어야 한다는 중압감은 그저 직업적 리스크로 묵묵히 견디기에는 무거운 것이었다.

예상대로 한국에서 패션모델로 활동할 기회는 거의 전무했다. 메이저 시장인 해외 패션쇼에 모델로 서기 위해서는 디자이너 브랜드가 원하는 신체 사이즈와 체형을 가져야 했다. 미국과 유럽의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처럼 키는 크고, 얼굴은 갸름하면서 허리는 잘록하되 가슴과 엉덩이가 큰 체형이 아닌 내 몸이 더 많은 기회를 갖지 못한 이유인 것 같아 괴로웠다. 그러나 메시지를 전하고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요구되는 이야기를 연기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아는 게 많지 않았던 풋내기 시절이었다. 그래도 단 하나 잊지 않으려 했던 것은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에디터, 스타일리스트 역할과 모델을 겸하며 베네통 포토콘테스트와 아메리칸어패럴 플러스사이즈모델 콘테스트에 응모해 최종 선정되어 베네통코리아 본사에 사진을 전시했고, 아메리칸어패럴 콘테스트에서는 전 세계 998명 중 8위로 탑 엔트리에 들기도 했다. 피사체를 넘어서서 주체적이며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시작한 것이 ‘사진포비아를 위한 심포지엄’이었다. 셀카는 백만 장인데 사진기 앞에만 사면 얼어붙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벌써 12회를 맞이했다. 그런데 정작 수강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진이나 카메라를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 속의 자기 자신이 싫은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나는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셀카는 찍지만 사진기는 무서운 사람과, 셀카도 찍지 않고 사진에도 찍히고 싶지 않은 사람. 그리고 모든 셀카와 사진을 좋아하고 스스로가 어떤 모습이든 긍정하는 사람과 자신의 모습을 본인 혹은 세상의 기준에 맞는 특정한 이미지나 상황이나 상태가 아니면 절대 사진으로 남기지 않는 사람.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사진은 초상권자와 저작권자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남성들이 갖은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포토샵과 어플리케이션을 사용, 이른바 ‘사회적으로 용인될 만한 얼굴’로 ‘보정’을 거치고 나서야 SNS에 자신의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을 과연 비난할 수 있을까 싶다. 이런 사회에서 다리가 굵은, 쌍꺼풀이 없는, 잡티나 여드름이 있는, 뚱뚱하고 예쁘지 않은 나를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공포스럽지 않기 어렵다.

여성이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며 나는 ‘용기’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슬프게도 ‘공포’와 ‘결심’이 뒤따라 떠올랐다. 의도와는 다르게, 의도와는 상관없이 여성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며, 초상권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평가를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66100을 만들며 인터뷰를 요청하고 사진 촬영을 부탁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용감하게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백하며 인터뷰했던 여성들, 무대 위에서 춤추는 여성 아이돌, 패션화보와 런웨이 위의 여성 모델들, 인스타그램 셀카 속의 여성들,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여성 창작자들이 오늘도 사이버불링을 당할 위험을 불사해 가며, 사회와 남성권력이 정한 외모 기준으로 평가되기를 거부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속도로 당당히 카메라 앞에 서고 있다는 것이 독자들에게도 나에게도 정말 커다란 힘이 되었다. 위협에 지지않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이자 연대임을 느낀다.



지난해 사회문제로 대두된 디지털 성폭력 방지 예산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공포의 강도를 국가가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닐 수 없다. 여성으로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이렇게 커다란 용기를 가지지 않아도 되는 날이 어서 오기를, 세상의 위험들을 두려워 할 시간에 다양한 세상을 만날 평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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