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희 “백색, 먹색으로 구별 짓기 어려운 게 사람 같아요.”

박희아 ize 기자 2019.02.1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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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일본에 가서 SF9 프로모션을 하고 돌아왔어요.” 보이그룹 SF9의 멤버 찬희는 아역 배우였다. 그러나 가수 활동을 하면서 배우의 일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는 많지 않았고, JTBC ‘스카이캐슬’에서 황우주를 연기하기로 결정됐을 때조차 지금처럼 많은 관심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만큼 이야기할 것들은 더 많았다. ‘스카이캐슬’의 우주와 SF9의 찬희, 그리고 그냥 스무 살 강찬희에 대하여.
찬희 “백색, 먹색으로 구별 짓기 어려운 게 사람 같아요.”


드라마가 끝났어요. 요즘에는 우주를 생각하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찬희
: 슬퍼요. 처음에 우주를 만났을 때도 그랬어요. 그냥, 느낌이 슬퍼요. 좋아하는 친구가 생일에 죽은 것도 모자라서 그 친구를 자신이 죽였다는 누명을 쓰기까지 하고……. 저라면 못 견뎠을 거예요.

다른 작품을 끝냈을 때와 ‘스카이캐슬’이 끝났을 때의 기분이 좀 다를 것 같더라고요.
찬희
: 네, 달랐어요. 여태까지 했던 드라마 중에서 가장 긴 호흡으로 진행된 드라마거든요. 2회부터 마지막회까지 계속 출연했으니까요. 이렇게 길게 출연한 적은 처음이에요.(웃음)



아역 배우 때와는 기분이 다르던가요.
찬희
: 달라요. 작품을 오래 하면 마음속에 점점 깊이 박힌다는 걸 이번에 확실하게 알았어요. 어릴 때는 함께 출연한 분들과 헤어지는 게 아쉬운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이태란 선생님과 최원영 선생님이 정말 엄마고 아빠예요. 작품을 함께한다는 건 일상을 나누게 된다는 의미더라고요. 촬영장 분위기가 화목해서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해요. 우주가 자퇴하고 나서 포스트잇을 떼는 장면 기억하세요? 그 장면에서 감독님이 “우주야, 한번에 쓸어 담을 수 있지? 믿을게!” 이러셔서 엄청 웃었어요. 염정아 선배님도 면회 장면에서 죄수복 입은 모습을 보고는 “너무 잘 어울리네.” 그러시더라고요. 내복 같았대요.(웃음)

우주라는 이름 자체에 캐릭터의 성격이 담겨있지 않나요?
찬희
: 우주(universe)는 이름 그대로 많은 것을 마음속에 담고 있어요. 아픈 기억을 숨겨두고 계속 건강한 척, 밝은 척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었고, 그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비슷한 일을 다시 겪게 된 거죠. 그러면서 다시 무너지고, 또다시 일어나야 했고요. 사실 감독님이 우주라는 이름에 대해서 특별한 언급을 하신 적은 없어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게 놔두고, 쭉 지켜봐주셨어요. 중간에 대사 템포가 너무 늘어지는 부분을 잡아주시는 정도였거든요. 작가님도 우주 캐릭터를 아껴주시는 게 너무 느껴졌고요. 영광이었고, 행복했어요. 죄송스럽기도 해요. 제가 더 잘 살렸어야 했는데.



SF9으로 활동할 때와 이번 드라마에서 목소리 톤이 다르더라고요.
찬희
: 그것도 우주의 캐릭터 때문이었어요. 지금 이야기하는 것처럼 무겁고 낮은 톤으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좀 띄워서 밝은 느낌으로 이야기했어요. 안 그래도 아픈 사연이 있는 친구잖아요. 제가 너무 무겁게 가면 우울해질 것 같았거든요.

‘스카이캐슬’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검은색이나 흰색처럼 무채색 계열에 가까운 드라마였어요. 하지만 우주는 그 안에서도 조금 다른 색깔을 갖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거든요.
찬희
: 제가 생각한 우주는 회색이었어요. 하지만 드라마 분위기와는 별개로 ‘스카이캐슬’의 모든 캐릭터들을 착하면 백색, 나쁘면 먹색 이렇게 두 가지로만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모이면 어디서든 생길 법한 이야기고, 누구든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캐릭터들이었잖아요. 착한 사람이 꼭 좋은 일만 하는 건 아니고, 실수를 할 수도 있어요. 백색, 먹색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게 사람인 것 같아요.

우주의 대사 중에서는 뭐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찬희
: “혜나, 아빠가 죽인 거예요.”라는 대사요. 아버지에게 당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말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굉장히……. 말을 뱉으면서도 힘들었어요. 방관자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걸 짚어주는 대사라는 생각이 드니까 저도 모르게 마음에 깊이 새겨지더라고요.


다른 인물 대사 중에도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요.
찬희
: 김주영 선생님이 예서 어머니에게 하는 대사인데요. “어머니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거요. 드라마의 메시지가 제대로 전해진 대사라고 생각해요. 제가 아버지에게 한 대사와 이 대사는 같은 이야기 같아요. 방관자에게도 잘못은 있고,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는 걸 알려주니까요.

‘스카이캐슬’이 한국의 사교육에 관한 이야기다보니 여성 배우들 중심으로 흘러갔어요. 우주도 혜나와 예서의 라이벌 관계를 부각시키는 역할로 활용되는 부분도 있었구요. 초반에는 중심에 서지 못하는 게 아쉽지는 않았어요?
찬희
: 전혀 아쉽지 않았어요. 작품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뿌듯한 일이었거든요. 제가 이 작품을 하면서 생각한 게 있는데요. 현실에 우주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도 우주처럼 행동했을 것 같아요. 두 사람 사이에 끼어서 저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대신에 후반부에 가면 우주가 굉장히 중요한 키를 쥐게 되죠.
찬희
: 오히려 그때 대본을 보고서는 걱정이 많았어요. 이렇게 중요한 인물을 맡았는데 내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처음에 차세리(박유나)누나가 돌아왔을 때 다 같이 모이는 장면이 있었잖아요. 그때가 딱 15부, 16부 대본이 나와서 모두 함께 읽고 있었을 땐데, 선배님들이 “우주야, 고생이 많겠다.”, “응원하겠다.”고 해주셨어요.

예서와 혜나를 대할 때 어떤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신경을 썼나요?
찬희
: 예서에게는 미안한 감정이 컸던 게 맞고요. 그렇게 좋아하는 티를 내는데 제가 모를 순 없으니까요. 우주도 알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반대로 혜나에게는 먼저 다가가려는 감정이 컸어요. 혜나가 먼저일 수밖에 없었어요.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 마음이 향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같아요. ‘같이 상처를 치유하자’ 이런 건 아니었고요. 적어도 부모님을 잃은 아픔이 어떻게 아프고,어떻게 해야 조금은 가라앉는지 아니까 보듬어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학교를 그만 두고 여행을 떠난 우주의 마지막 선택은 사실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잖아요. 우주의 집이 여유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란 생각도 들고.
찬희
: 실제로 저에게 닥친 일이더라도 평범한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물론 자퇴에 대해서만큼은 많이 생각했겠지만. 감옥에 들어갔다 나온 게 현실에서 쉽게 겪을 만한 일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여행은, 제가, 그러니까 찬희라는 사람은 평범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니까 좀 어려웠을 것 같아요.(웃음)

찬희 “백색, 먹색으로 구별 짓기 어려운 게 사람 같아요.”
우주가 아닌 찬희라는 사람은 어떤 색으로 표현할 수 있나요.
찬희
: 제가 빨간색을 좋아해서요.(웃음) 그렇다고 정열적이고 강렬한 느낌, 불타오르는 성격을 가진 사람은 아닌데요. 그냥 항상 빨간색이 좋았어요. 저와 반대되는 느낌이라서 좋아하는 걸 수도 있어요. 동경의 느낌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성격으로만 보자면 먹색에 가까운 사람이 아닐까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거든요.

멤버들과 있을 때는 전혀 조용하지 않던데요.
찬희
: 혼자 있을 때와는 정반대예요. 정말 친한 친구들이나 멤버 형들과 있으면 마냥 밝아져요. 계속 장난치고 싶거든요. 그러고 보면 우주와는 한 50% 정도 비슷한 것 같아요. 딱 중간.

요즘 ‘스카이캐슬’에서 학생 역할을 맡은 배우들과 함께 예능 프로그램이나 라디오에 출연했잖아요. SF9 멤버들과 함께 있을 때와는 좀 다를 것 같았어요.
찬희
: 많이 다르지는 않아요. ‘스카이캐슬’에서도 제가 동희(김동희)랑 동갑인데, 빠른 생일이라서 사실상 막내거든요. 그때도 형, 누나들이 다들 챙겨주고, 재미있게 해줘서 편한 마음이었어요. 하지만 멤버 형들과 있을 때 좀 더 편한 건 사실이죠. 거의 5년이 다 된 가족 같은 사이다 보니까요.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요.

리얼리티 영상에서 휘영과 ‘스카이캐슬’ 대본 연습하는 것을 봤어요.
찬희
: 그건 이미 그 장면을 촬영한 다음에 연습하는 척을 한 거예요. 실제로 그렇게 연습하면 안 되죠! 큰일 납니다!(웃음) 로운이 형이랑 같이 대사 보면서 그 상황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했고요, 다른 형들은 촬영 나갈 때 응원을 많이 해줬어요. 다원이 형이 당 떨어진다면서 초콜릿을 챙겨줬거든요. 그런데 단 거 안 좋아해서 아직도 다 안 먹었어요. 비밀이었는데, 이제 알게 되겠다.(웃음) 형들의 마음이 중요하고 고마운 거니까요.

평소 모습을 보면 형들 놀리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던데요. 로운에게 “로운아!”라고 부르는 걸 봤어요.
찬희
: 로운이 형이 정말 너무 괴롭혀요. 저를 제일 많이 괴롭히는 게 로운이 형하고 다원이 형이거든요? 정말 그만 좀 했으면 좋겠어요.

너무 진심이 느껴지는데요?(웃음)
찬희
: 정말 진심이에요!

SF9 멤버들은 찬희가 연기를 진지하게 하는 모습을 보면 낯간지러워 할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찬희
: 그럼요. 형들에게는 이미 제가 무뚝뚝하고 무덤덤한 동생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거예요. 하지만 대중에게는 생각이 깊고, 표현력이 풍부한 사람으로 비춰졌으면 좋겠어요. 동시에 유머 감각도 어느 정도 있는 사람으로 보이면 좋겠고. 저 로맨틱 코미디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한번 해보고 싶어요.

멤버들 중에도 연기했던 멤버들이 있잖아요. 이 멤버가 했던 역할은 내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찬희
: 형들이 잘해요! 감히 뺏어올 수 없어요!(웃음) 특히 로운이 형이 맡았던 캐릭터들은 딱 로운이 형 자체라서요. 저는 ‘스카이캐슬’에서 우주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린 게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지금 제가 맡은 역할이 좋아요.

그동안 맡았던 캐릭터들이 사연이 많다고 해서 본인이 “박복하다”라고 표현을 했더라고요. 하지만 서정적인 느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캐릭터들도 맡을 수 있는 거잖아요.
찬희
: 눈에 그런 느낌이 들어있나 봐요. 제 눈이 좀 처졌잖아요.(웃음) 주변에서 그러시던데, 눈동자가 좀 공허한 느낌이래요. 조현탁 감독님도 “우주야, 너는 눈빛과 목소리가 좋으니까 그 부분을 잘 살려서 연기하면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 거야.”라고 해주셔서 무척 감동받았어요.

이번 기회로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졌을 것 같아요.
찬희
: 미래가 흰색 같았으면 좋겠어요. 뭔가 채워나갈 수 있고, 정해지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좋아요. 내가 한 가지, 한 가지 선택을 할수록 다음이 바뀌는 거잖아요. 선택이 쌓이고, 쌓이면 그게 경험이 되니까 그걸 통해 제가 계속 뭔가를 배워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실제로 스케줄도 더 늘어난 것 같더라고요.
찬희
: 요즘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제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꺼내는 게 속이 시원하고 후련하면서도 즐거운 경험이더라고요. 조금 시간에 쫓긴다는 단점이 있지만요.

시간에 쫓기는 와중에도 제일 생각나는 게 있다면요?
찬희
: 순대국밥이요. 잠도 좀 자고 싶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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