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희: 슬퍼요. 처음에 우주를 만났을 때도 그랬어요. 그냥, 느낌이 슬퍼요. 좋아하는 친구가 생일에 죽은 것도 모자라서 그 친구를 자신이 죽였다는 누명을 쓰기까지 하고……. 저라면 못 견뎠을 거예요.
다른 작품을 끝냈을 때와 ‘스카이캐슬’이 끝났을 때의 기분이 좀 다를 것 같더라고요.
찬희: 네, 달랐어요. 여태까지 했던 드라마 중에서 가장 긴 호흡으로 진행된 드라마거든요. 2회부터 마지막회까지 계속 출연했으니까요. 이렇게 길게 출연한 적은 처음이에요.(웃음)
찬희: 달라요. 작품을 오래 하면 마음속에 점점 깊이 박힌다는 걸 이번에 확실하게 알았어요. 어릴 때는 함께 출연한 분들과 헤어지는 게 아쉬운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이태란 선생님과 최원영 선생님이 정말 엄마고 아빠예요. 작품을 함께한다는 건 일상을 나누게 된다는 의미더라고요. 촬영장 분위기가 화목해서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해요. 우주가 자퇴하고 나서 포스트잇을 떼는 장면 기억하세요? 그 장면에서 감독님이 “우주야, 한번에 쓸어 담을 수 있지? 믿을게!” 이러셔서 엄청 웃었어요. 염정아 선배님도 면회 장면에서 죄수복 입은 모습을 보고는 “너무 잘 어울리네.” 그러시더라고요. 내복 같았대요.(웃음)
우주라는 이름 자체에 캐릭터의 성격이 담겨있지 않나요?
찬희: 우주(universe)는 이름 그대로 많은 것을 마음속에 담고 있어요. 아픈 기억을 숨겨두고 계속 건강한 척, 밝은 척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었고, 그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비슷한 일을 다시 겪게 된 거죠. 그러면서 다시 무너지고, 또다시 일어나야 했고요. 사실 감독님이 우주라는 이름에 대해서 특별한 언급을 하신 적은 없어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게 놔두고, 쭉 지켜봐주셨어요. 중간에 대사 템포가 너무 늘어지는 부분을 잡아주시는 정도였거든요. 작가님도 우주 캐릭터를 아껴주시는 게 너무 느껴졌고요. 영광이었고, 행복했어요. 죄송스럽기도 해요. 제가 더 잘 살렸어야 했는데.
찬희: 그것도 우주의 캐릭터 때문이었어요. 지금 이야기하는 것처럼 무겁고 낮은 톤으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좀 띄워서 밝은 느낌으로 이야기했어요. 안 그래도 아픈 사연이 있는 친구잖아요. 제가 너무 무겁게 가면 우울해질 것 같았거든요.
‘스카이캐슬’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검은색이나 흰색처럼 무채색 계열에 가까운 드라마였어요. 하지만 우주는 그 안에서도 조금 다른 색깔을 갖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거든요.
찬희: 제가 생각한 우주는 회색이었어요. 하지만 드라마 분위기와는 별개로 ‘스카이캐슬’의 모든 캐릭터들을 착하면 백색, 나쁘면 먹색 이렇게 두 가지로만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모이면 어디서든 생길 법한 이야기고, 누구든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캐릭터들이었잖아요. 착한 사람이 꼭 좋은 일만 하는 건 아니고, 실수를 할 수도 있어요. 백색, 먹색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게 사람인 것 같아요.
우주의 대사 중에서는 뭐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찬희: “혜나, 아빠가 죽인 거예요.”라는 대사요. 아버지에게 당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말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굉장히……. 말을 뱉으면서도 힘들었어요. 방관자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걸 짚어주는 대사라는 생각이 드니까 저도 모르게 마음에 깊이 새겨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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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인물 대사 중에도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요.
찬희: 김주영 선생님이 예서 어머니에게 하는 대사인데요. “어머니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거요. 드라마의 메시지가 제대로 전해진 대사라고 생각해요. 제가 아버지에게 한 대사와 이 대사는 같은 이야기 같아요. 방관자에게도 잘못은 있고,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는 걸 알려주니까요.
‘스카이캐슬’이 한국의 사교육에 관한 이야기다보니 여성 배우들 중심으로 흘러갔어요. 우주도 혜나와 예서의 라이벌 관계를 부각시키는 역할로 활용되는 부분도 있었구요. 초반에는 중심에 서지 못하는 게 아쉽지는 않았어요?
찬희: 전혀 아쉽지 않았어요. 작품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뿌듯한 일이었거든요. 제가 이 작품을 하면서 생각한 게 있는데요. 현실에 우주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도 우주처럼 행동했을 것 같아요. 두 사람 사이에 끼어서 저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대신에 후반부에 가면 우주가 굉장히 중요한 키를 쥐게 되죠.
찬희: 오히려 그때 대본을 보고서는 걱정이 많았어요. 이렇게 중요한 인물을 맡았는데 내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처음에 차세리(박유나)누나가 돌아왔을 때 다 같이 모이는 장면이 있었잖아요. 그때가 딱 15부, 16부 대본이 나와서 모두 함께 읽고 있었을 땐데, 선배님들이 “우주야, 고생이 많겠다.”, “응원하겠다.”고 해주셨어요.
예서와 혜나를 대할 때 어떤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신경을 썼나요?
찬희: 예서에게는 미안한 감정이 컸던 게 맞고요. 그렇게 좋아하는 티를 내는데 제가 모를 순 없으니까요. 우주도 알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반대로 혜나에게는 먼저 다가가려는 감정이 컸어요. 혜나가 먼저일 수밖에 없었어요.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 마음이 향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같아요. ‘같이 상처를 치유하자’ 이런 건 아니었고요. 적어도 부모님을 잃은 아픔이 어떻게 아프고,어떻게 해야 조금은 가라앉는지 아니까 보듬어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학교를 그만 두고 여행을 떠난 우주의 마지막 선택은 사실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잖아요. 우주의 집이 여유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란 생각도 들고.
찬희: 실제로 저에게 닥친 일이더라도 평범한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물론 자퇴에 대해서만큼은 많이 생각했겠지만. 감옥에 들어갔다 나온 게 현실에서 쉽게 겪을 만한 일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여행은, 제가, 그러니까 찬희라는 사람은 평범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니까 좀 어려웠을 것 같아요.(웃음)
찬희: 제가 빨간색을 좋아해서요.(웃음) 그렇다고 정열적이고 강렬한 느낌, 불타오르는 성격을 가진 사람은 아닌데요. 그냥 항상 빨간색이 좋았어요. 저와 반대되는 느낌이라서 좋아하는 걸 수도 있어요. 동경의 느낌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성격으로만 보자면 먹색에 가까운 사람이 아닐까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거든요.
멤버들과 있을 때는 전혀 조용하지 않던데요.
찬희: 혼자 있을 때와는 정반대예요. 정말 친한 친구들이나 멤버 형들과 있으면 마냥 밝아져요. 계속 장난치고 싶거든요. 그러고 보면 우주와는 한 50% 정도 비슷한 것 같아요. 딱 중간.
요즘 ‘스카이캐슬’에서 학생 역할을 맡은 배우들과 함께 예능 프로그램이나 라디오에 출연했잖아요. SF9 멤버들과 함께 있을 때와는 좀 다를 것 같았어요.
찬희: 많이 다르지는 않아요. ‘스카이캐슬’에서도 제가 동희(김동희)랑 동갑인데, 빠른 생일이라서 사실상 막내거든요. 그때도 형, 누나들이 다들 챙겨주고, 재미있게 해줘서 편한 마음이었어요. 하지만 멤버 형들과 있을 때 좀 더 편한 건 사실이죠. 거의 5년이 다 된 가족 같은 사이다 보니까요.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요.
리얼리티 영상에서 휘영과 ‘스카이캐슬’ 대본 연습하는 것을 봤어요.
찬희: 그건 이미 그 장면을 촬영한 다음에 연습하는 척을 한 거예요. 실제로 그렇게 연습하면 안 되죠! 큰일 납니다!(웃음) 로운이 형이랑 같이 대사 보면서 그 상황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했고요, 다른 형들은 촬영 나갈 때 응원을 많이 해줬어요. 다원이 형이 당 떨어진다면서 초콜릿을 챙겨줬거든요. 그런데 단 거 안 좋아해서 아직도 다 안 먹었어요. 비밀이었는데, 이제 알게 되겠다.(웃음) 형들의 마음이 중요하고 고마운 거니까요.
평소 모습을 보면 형들 놀리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던데요. 로운에게 “로운아!”라고 부르는 걸 봤어요.
찬희: 로운이 형이 정말 너무 괴롭혀요. 저를 제일 많이 괴롭히는 게 로운이 형하고 다원이 형이거든요? 정말 그만 좀 했으면 좋겠어요.
너무 진심이 느껴지는데요?(웃음)
찬희: 정말 진심이에요!
SF9 멤버들은 찬희가 연기를 진지하게 하는 모습을 보면 낯간지러워 할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찬희: 그럼요. 형들에게는 이미 제가 무뚝뚝하고 무덤덤한 동생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거예요. 하지만 대중에게는 생각이 깊고, 표현력이 풍부한 사람으로 비춰졌으면 좋겠어요. 동시에 유머 감각도 어느 정도 있는 사람으로 보이면 좋겠고. 저 로맨틱 코미디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한번 해보고 싶어요.
멤버들 중에도 연기했던 멤버들이 있잖아요. 이 멤버가 했던 역할은 내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찬희: 형들이 잘해요! 감히 뺏어올 수 없어요!(웃음) 특히 로운이 형이 맡았던 캐릭터들은 딱 로운이 형 자체라서요. 저는 ‘스카이캐슬’에서 우주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린 게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지금 제가 맡은 역할이 좋아요.
그동안 맡았던 캐릭터들이 사연이 많다고 해서 본인이 “박복하다”라고 표현을 했더라고요. 하지만 서정적인 느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캐릭터들도 맡을 수 있는 거잖아요.
찬희: 눈에 그런 느낌이 들어있나 봐요. 제 눈이 좀 처졌잖아요.(웃음) 주변에서 그러시던데, 눈동자가 좀 공허한 느낌이래요. 조현탁 감독님도 “우주야, 너는 눈빛과 목소리가 좋으니까 그 부분을 잘 살려서 연기하면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 거야.”라고 해주셔서 무척 감동받았어요.
이번 기회로 하고 싶은 일이 더 많아졌을 것 같아요.
찬희: 미래가 흰색 같았으면 좋겠어요. 뭔가 채워나갈 수 있고, 정해지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좋아요. 내가 한 가지, 한 가지 선택을 할수록 다음이 바뀌는 거잖아요. 선택이 쌓이고, 쌓이면 그게 경험이 되니까 그걸 통해 제가 계속 뭔가를 배워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실제로 스케줄도 더 늘어난 것 같더라고요.
찬희: 요즘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제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꺼내는 게 속이 시원하고 후련하면서도 즐거운 경험이더라고요. 조금 시간에 쫓긴다는 단점이 있지만요.
시간에 쫓기는 와중에도 제일 생각나는 게 있다면요?
찬희: 순대국밥이요. 잠도 좀 자고 싶고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