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가 성소수자인 게 어때서?"(영상)

머니투데이 김소영 인턴기자 2019.02.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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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점] 성소수자 자녀를 둔 엄마 도치·라라·지인씨 "엄마는 네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편집자주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혹은 숨어있는 '소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왼쪽부터 지인(51·활동명), 라라(50·활동명), 도치(54·활동명)씨. /사진=김소영 인턴기자왼쪽부터 지인(51·활동명), 라라(50·활동명), 도치(54·활동명)씨. /사진=김소영 인턴기자


"엄마, 사실 저 게이예요."

아들의 커밍아웃에 엄마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언젠가부터 아들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싶긴 했지만 뜻밖의 고백이었다. 그날부터 엄마는 '네가 어려서 잘못 안 거야'라며 설득해보기도 하고 아들이 어렸을 때 얼마나 '남자답고 씩씩한' 아이였는지 알려주려 애썼다. 급기야 '내가 아이에게 운동을 시키지 않아서 그렇다'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아들에게 동성애를 혐오하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가느다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었던 엄마는 성소수자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소수자 2명 중 1명꼴로 자살시도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러다 아들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났다. '앞으로 아이가 세상의 편견 속에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 엄마는 '성소수자로서의 삶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그제야 아들이 겪었을 고통과 번뇌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이 세상 모든 성소수자 청년들을 자식으로 품은 엄마들이 있다. 서른 살 게이 아들을 둔 도치(54·활동명), 스물 세살 젠더퀴어(남성과 여성 둘로만 분류하는 기존의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을 벗어난 종류의 성 정체성)의 엄마 라라(50·활동명), 6년 전 아들이 게이임을 안 지인(51·활동명)씨다.

"'퀴어라운드(Queeround)'. 우리 주변(around)에는 항상 성소수자(Queer)가 있다. 즉 성소수자, 그리고 그 부모는 언제나 주변에 있으니 더 이상의 혐오 표현은 안 된다”고 말하는 세 명의 엄마들을 만나 성소수자의 부모로 살아가는 행복과 사회의 편견에 관한 얘기를 나눠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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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커밍아웃에 엄마의 가슴은 무너졌다… "아이가 자살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6년 전 아들이 게이임을 안 지인(51·활동명)씨. /사진=강선미 기자6년 전 아들이 게이임을 안 지인(51·활동명)씨. /사진=강선미 기자
6년 전, 고등학생이었던 지인씨의 아들은 자꾸만 어두워졌다. 그는 "아이가 갑자기 '엄마, 난 미국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인 것 같아'라는 말을 꺼냈다"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물어도 아들은 '엄마는 마음이 약해서 감당 못한다'며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아이가 친구와 주고받은 문자를 몰래 봤어요. '오늘 학원 선생님한테 내가 게이인 걸 말했어'라는 말이 쓰여 있었어요. 너무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어려서 그럴 거야'란 믿음이 있었어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그는 '아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성정체성은 선택의 문제며 부모가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성인이 돼도 동성애자라고 하면 인정해 줄게'라고 설득해 보기도 하고 '왜 이렇게 불행하게 살려 하느냐'며 상처 주는 말을 많이 했어요. 그랬더니 아이가 '엄마는 좋은 엄마인 줄 알았는데 실망스럽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정말 무지한 엄마였던 거죠."

서른 살 게이 아들을 둔 도치(54·활동명)씨. /사진=김소영 인턴기자서른 살 게이 아들을 둔 도치(54·활동명)씨. /사진=김소영 인턴기자
도치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어느 날 '아들이 자살할 것 같다'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이유를 아무리 물어도 아들은 '혼자 평생을 안고 가야 할 문제'라면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 날 아이가 겨우 마음을 먹었는지 '엄마, 나는 게이야'라고 했다"며 "아이한테는 '괜찮아, 너만 행복하면 된다'고 했지만 내가 노력하면 아이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도치씨는 '어떻게 하면 아들의 성 정체성을 바꿔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 답을 찾으러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은 그들과 다를 거야'란 생각을 하며 모임에 나갔어요. 그런데 성소수자 아이들을 직접 만나 보니 다들 너무 착한 거예요. 모두 평범한 아이들이었고요. 문득 선입견을 품었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왔어요."

스물 세살 젠더퀴어(남성과 여성 둘로만 분류하는 기존의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을 벗어난 종류의 성 정체성)의 엄마 라라(50·활동명)씨. /사진=김소영 인턴기자스물 세살 젠더퀴어(남성과 여성 둘로만 분류하는 기존의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을 벗어난 종류의 성 정체성)의 엄마 라라(50·활동명)씨. /사진=김소영 인턴기자
라라씨의 자녀는 젠더퀴어다. 아이는 처음엔 자신을 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라 생각했지만 이후 남성과 여성 중 어느 한 쪽으로 성 정체성을 정의할 수 없단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그는 "아이가 '6학년 때부터 자신이 친구들과는 다른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괴물 같아' '엄마, 못난 자식이라 미안해' 이런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언젠가 크리스마스 날 온 가족이 모여 새해 소망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아이가 내뱉은 말은 '예뻐지고 싶어요. 그래서 행복해지고 싶어요'였다. 당시엔 몰랐지만 알고 보니 아이 나름의 커밍아웃이었다. 옛일을 회상하던 라라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나중에 아이의 자해와 자살 시도가 겹치면서 트랜스젠더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요.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고 충격적인 기억이죠."

"내 아이는 성소수자예요"… 2차 커밍아웃 후 엄마의 숨통이 트였다
세 사람은 모두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회원이다. 매달 한 번씩 정기모임을 가진다. 고민을 털어놓고, 공감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일종의 자조모임(비슷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경험과 감정을 나누며 자신의 삶을 보다 효과적으로 조절하기 위한 자발적 모임)인 셈이다. 모임을 통해 용기를 얻은 이들은 주변에 부모의 커밍아웃, 즉 '2차 커밍아웃'을 하기로 했다.

도치씨는 "처음엔 아이가 커밍아웃을 반대해서 가까운 몇 명에게만 말했다"며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었지만 '완전히 드러내지는 말고 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인씨는 처음엔 주변에 얘기하기를 꺼렸다. 그는 "아들이 남편에게 '아빤 내가 창피해서 작은아빠한테도 말 못 하지?'라고 해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혹여나 아들이 상처를 받을까 걱정된 그는 그날부터 적극적으로 '2차 커밍아웃'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 그의 아들이 게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지인씨의 가방에 'I am an Ally(나는 앨라이입니다)'라는 문구가 적인 배지가 달려 있다. '앨라이'란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비성소수자를 의미한다. /사진=강선미 기자지인씨의 가방에 'I am an Ally(나는 앨라이입니다)'라는 문구가 적인 배지가 달려 있다. '앨라이'란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비성소수자를 의미한다. /사진=강선미 기자
라라씨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아이가 트랜스젠더란 사실을 힘들게 털어놨다. 어머니가 행여 충격을 받을까 염려했다고 했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성전환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대'라고 했더니 엄마가 '너는 그걸 이제 알았니?'라고 하시더라고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다르다는 걸 눈치채고 계셨던 거예요. '수술해줄 거면 빨리 해줘라'라고 하셔서 마음이 놓였죠."

이들은 2차 커밍아웃 후 받은 느낌을 '숨통이 트였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커밍아웃을 하면서 숨통이 트이는' 성소수자들의 심정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예전엔 왜 자꾸 커밍아웃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래봤자 상처만 더 받을 텐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죠. 그런데 이젠 저희가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해요. 부모가 나서서 성소수자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알려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일종의 방패 역할을 하는 거죠."

퀴어문화축제에서 마주한 혐오세력… "네 자식은 정신병자", "그러다 에이즈 걸린다"
세 사람은 퀴어문화축제가 열릴 때마다 참가한다. 이들은 그곳에서 자녀가 겪어야 했던 혐오를 오롯이 마주할 수 있었다. '혐오세력이 부모에게도 심한 비난을 하느냐, 성소수자에게 하는 것보단 상대적으로 예의를 갖추지 않냐'고 묻자 그들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지인씨는 "'네 자식은 정신병자다', '부모가 돼서 애를 바꿔줄 생각은 안 하냐', '자식이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HIV)에 걸려도 계속 동성애를 지지할 거냐' 외에도 입에 담지 못할 욕이 난무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라라씨는 "아이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들도 퀴어문화축제에 한 번 가면 생각이 달라질 정도"라고 했다.

지난해 10월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제1회 광주퀴어문화축제에서 '우리는 여기있다'라는 팻말을 든 축제 참가자와 '죄를 버리고 예수님께 오세요'라는 화이트보드를 든 시민이 경찰이 설치한 바리케이트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 /사진=뉴스1지난해 10월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제1회 광주퀴어문화축제에서 '우리는 여기있다'라는 팻말을 든 축제 참가자와 '죄를 버리고 예수님께 오세요'라는 화이트보드를 든 시민이 경찰이 설치한 바리케이트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다. /사진=뉴스1
"'우리 아이가 그 사람들한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혐오하는 표정을 하고 우리 아이를 비난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녀를 지지하는 쪽으로 마음을 바꾸는 분들이 많아요. 혐오와 차별이 심한 세상에서 어떤 아이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겠어요."

아이의 커밍아웃이 엄마를 성장시켰다… "성소수자라 해도 아이를 사랑한단 사실은 변하지 않아"
이들은 "아이의 커밍아웃이 나를 성장시켰다"고 입을 모았다. 라라씨는 "성소수자를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편견이 없어졌다"고 했다.

"아이에게 '넌 스스로 여성이라고 생각하면서 왜 머리를 안 기르냐'고 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불편해서 기르고 싶지 않다면서 '나는 그냥 나라고!' 소리치더라고요. 그 순간 '아, 내가 트랜스젠더에 대해서도 편견을 가지고 있구나'라는 걸 깨달았죠."

자연스럽게 '성소수자의 부모는 어때야 하는가'를 넘어 '좋은 부모는 어떤 부모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다. 도치씨는 "어느날 아들이 '엄마가 이렇게 바뀔 줄은 몰랐다'고 하더라"며 "내가 바뀌어야 다른 사람의 생각도 조금씩 바뀌고 결국 세상도 변화하리라 생각한다"며 웃었다.

지난해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과 성소수자 당사자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담은 '커밍아웃 스토리'를 발간했다. /사진=강선미 기자지난해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과 성소수자 당사자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담은 '커밍아웃 스토리'를 발간했다. /사진=강선미 기자
지인씨도 "스스로 '좋은 엄마'라 믿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단 사실을 깨달았다"며 "'이 길이 옳아, 이렇게 살아야 행복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이 입장에서는 아닐 수도 있단 걸 알게 됐다"고 전했다.

"법륜스님 즉문즉설에 따르면 한 트랜스젠더 어머니가 '아이가 불행하게 살까봐 걱정된다'고 하자 스님이 '누가? 엄마가?'라고 하셨대요. 아이는 행복해지고 싶어서 커밍아웃한 건데 정작 아이를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불행하게 만드는 건 부모였던 거죠."

끝으로 지인씨는 "성소수자들에게 커밍아웃했을 때 부모가 어떻게 반응해 주길 바라는지 물어봤더니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이 '그게 뭐 어때서', '그래도 여전히 넌 내 자식이야', '있는 그대로의 네 모습을 사랑해' 등이었다"며 "결국 아이의 편이 돼 줘야 하는 건 부모"라고 소신을 밝혔다.

"우리 아이가 성소수자인 게 뭐 어떤가요? 제가 아이를 사랑한단 사실은 변하지 않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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