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면옥은 되고 안성집은 안되고...재개발 '세운' 주먹구구 생활유산 선정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2019.01.25 05:59
글자크기

법적 구속력 없는 불확실한 개념으로 민간사업 제동 지적, 재개발 찬성 토지주들 반발

지난 22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면옥에 찾은 시민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지난 22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면옥에 찾은 시민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을지면옥, 양미옥 등 을지로 노포(老鋪·대를 잇는 오래된 가게) 철거에 반대하면서 세운3구역 재개발이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서울시가 철거금지 사유로 제시한 ‘생활유산’이 원칙과 기준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결정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서울시에 따르면 세운상가 지역에선 △을지면옥 △을지다방 △양미옥 △조선옥 △흥남집 △신창면옥 △평래옥 △송림수제화 △우래옥 △방산시장 △중부시장 △함흥냉면 △종로양복점 13곳이 생활유산으로 지정됐다.
 
서울시는 이를 근거로 세운3구역에 있는 을지면옥과 양미옥이 강제로 철거되지 않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토지주 75% 이상 동의를 얻어 진행된 재개발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취재결과 서울시가 선정한 생활유산은 정부 공식 문화재 지정과 달리 법적 구속력이 없다. 역사학자가 포함된 공식 협의체나 위원회에서 결정한 것도 아니다.
 
서울시는 2015년 600페이지 넘는 ‘역사도심기본계획’ 보고서를 외부 용역으로 만들었다. 당시 연구에 참여한 기관은 서울시립대, 서울연구원, 코레스엔지니어링건축사무소, 동일기술공사 4곳이다.
 
서울시 담당 공무원들도 생활유산의 정의, 지정근거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에는 4대문 안에 시민들의 정서가 녹아 있는 지역과 오래된 건물이 많다”며 “그런 곳 위주로 가급적 보존하자는 취지로 (생활유산을) 선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래된 건물’이란 기준만으론 근거가 부족하다. 일례로 1985년 문을 연 을지면옥은 올해 35년차인 데도 생활유산에 포함됐지만 인근 돼지갈비 전문점 안성집은 1957년 문을 열어 62년째 운영 중인데도 생활유산이 아니다.
 
또다른 서울시 관계자는 “맛이나 조리기술 방식 등 전통적인 요소를 고려한 것같다”고 했지만 을지면옥 본류는 국내 평양냉면 계보 중 하나인 ‘의정부 평양냉면’으로 원조라 보기 어렵다.
 
을지면옥 건물이 최근 시내에서 보기 힘든 저층 구조물이지만 일대 공구상 건물과 외형이 비슷한 데다 전남 목포의 적산가옥처럼 특수한 건축방식이 적용된 것도 아니다.
 
서울시는 생활유산을 근거로 강제철거 금지 방침을 밝히면서도 ‘법적 구속력 없는 권고사항’이라는 점도 동시에 인정했다. 현금청산 등 적정 보상협의를 거쳐 재개발을 진행하면 불법이 아니라는 얘기다.
 
문제는 앞으로다. 중구, 종로, 동대문 등 구도심 재개발을 추진할 때 서울시가 이를 근거로 구청에 사업계획 승인 지연을 요청하는 등 행정력을 남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세운3구역 한 토지주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승인된 2014년 정비계획을 법적 근거도 불분명한 개념을 적용해 이제 와서 뒤집는 게 말이 되냐”며 “행정소송 등 법적 대응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