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지면옥 논란에 가린 을지로공구상 '한숨'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2019.01.2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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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개입으로 재개발 혼란만 가중.. 이주대책 미흡한 영세 공구상들 우선 살펴야

 박원순 서울시장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 신년간담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박원순 서울시장이 2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 신년간담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박원순 시장님, 문제는 을지면옥이 아니라 영세 공구상들입니다”

최근 재개발 문제로 논란이 된 중구 세운3구역, 수표지구 상인과 토지주 등 다수 관계자를 취재한 기자가 박원순 시장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



사실 초반에는 기자도 을지면옥 문제만 집중했다. 지역 내 가장 유명한 음식점으로 알려져 있고 이번 재개발 철거 논란의 ‘도화선’이 된 곳이기 때문이다.

을지로 대표 노포(老鋪, 대를 잇는 오래된 음식점)란 상징성, 1985년 문을 연 전통의 냉면집이 재개발로 곧 철거될 위기에 놓였다는 소식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소재였다.



처음엔 “멀쩡히 장사 잘하는 음식점을 왜 없애냐”는 여론이 우세했지만 이 문제를 조금 더 들여다보니 다른 목소리도 들렸다. 바로 10년 넘게 세운3구역 재개발을 추진한 중소토지주들이었다.

이들은 여러 언론에서 을지면옥을 ‘재개발의 피해자’로 조명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유는 을지면옥 이윤상(92) 선대 사장이 사업 초기 단계인 2006년부터 줄곧 재개발에 찬성했기 때문이다.

세운3구역 토지주 중 한명인 심병욱씨는 “세운3구역 재개발은 처음부터 을지면옥이 주도했다”고 했다. 시행사 관계자나 중소토지주 모임에 있는 사람들도 같은 말을 했다.


재개발에 앞장섰던 을지면옥이 왜 갑자기 입장을 바꿨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그런 와중에 일대 재개발에 10년 넘게 참여한 신종전 한호건설 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시행사 입장을 듣기 위해 실무진 연락처를 문의했는데 대표가 직접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신 회장은 을지면옥이 입장을 바꿔 2017년 7월 세운 3-2구역 사업시행인가 무효소송을 낸 이유가 토지보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16년 2월 을지면옥 일가가 보유한 136.7평(3-2구역 전체 11% 비율)의 토지에 평당 2억원의 보상비를 요구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자 (재개발) 동의를 철회했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을지면옥' 앞으로 시민들이 드나들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br><br>서울 중구 '을지면옥' 앞으로 시민들이 드나들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br><br>
이 말이 맞다면 보상비만 300억원을 요구한 셈인데, 이렇게 되면 평당 평균 5000만원 중후반대에 보상금을 협의한 다른 토지주들의 반발로 사업 추진이 어렵다는 설명도 들었다.

삼인성호(三人成虎, 거짓말도 여러 사람이 하면 곧이 듣게 된다)란 옛말도 있고, 시행사도 근본적으로는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모두 믿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신 회장 말고도 여러 중소토지주들이 “이름을 걸고 증언할 수 있다”고 하니 생각이 달라졌다.

을지면옥이 재개발 공사 기간에도 영업을 지속할 수 있는 별도 건물을 마련했다는 말도 전해들었다. 구체적인 지명(인현동1가 19-2)도 확보했는데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을지면옥 점주 소유가 맞았다. 이쯤되면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고 봤다. 그래서 을지면옥이 재개발을 앞두고 과도한 보상을 요구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

다음날 이병철 을지면옥 사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기사가 출고된 일요일 오전 6시에서 약 3시간 지난 시점이었다. 이 사장이 그동안 언론 접촉을 피해 연락이 어려웠던 데다 재개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듣기 위해 성동구 옥수동 자택을 직접 찾아갔다.

이 사장은 재개발 문제는 전혀 모르고 지금까지 아무런 입장도 밝힌게 없고, 관심도 없고 오로지 장사만 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2억 요구설’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재개발 문제를 전혀 몰랐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을지면옥 부지 공동 소유주인 이윤상·이병철 사장은 세운재개발촉진구역 지정을 앞둔 2014년말 재개발동의서에 서명했다. 이병철 사장은 직접 지장까지 찍었다. 토지소유주들이 제보한 자료였다. 이 사장에게 확인을 요청하니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이웃 구멍가게 점주들이 (재개발을) 도와달라고 해서 서명한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재개발 추진에 대한 입장도 명확치 않다. 이 사장은 기자에겐 "지붕을 고치치 못해서 비가 오면 영업에 불편한 점이 많다. 여기서 장사만 할 수 있으면 재개발을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했으나 서울시 관계자에겐 재개발 반대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정확한 을지면옥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보존을 이유로 재개발 사업에 제동을 건 서울시가 다시 한번 을지면옥의 명확한 입장을 확인해보길 권유한다. 만약 을지면옥 부지만 별도 토지보상 없이 원형 그대로 보존하되, 다른 곳만 재개발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청계천 공구거리에 재개발 반대 포스터가 붙었다. /사진제공=뉴스1 <br>청계천 공구거리에 재개발 반대 포스터가 붙었다. /사진제공=뉴스1 <br>
사실 이번에 철거 논란에서 화제를 모은 곳은 세운3구역에 속한 을지면옥이지만 일대 영세 상인들의 불만이 촉발된 진앙지는 바로 옆 수표재개발지구다. 제대로 된 보상안을 마련하지 않고 인허가가 떨어지기 전부터 철거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이유에서다.

시행사는 지난해 12월 사업시행인가를 냈는데 관할 구청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이주대책이 부실했다고 한다. 신상철 중구 부구청장은 “이주대책과 보상금 지급 계획이 불분명해 이 문제가 해결될때까지 사업시행인가를 보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세운5구역에 공공 임대상가를 지어 ‘공구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대책은 바람직해보인다.

우려스러운 점은 애초 시행사와 토지주간 ‘협상의 영역’이었던 을지면옥 토지보상금 문제에 서울시가 너무 깊숙이 개입해 판을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민간사업에 당사자간 결자해지할 문제를 보존이란 명목으로 눈치없이 끼어들어 양측의 갈등과 혼란을 부추긴게 아니냐는 것이다. 서울시 개입으로 사업이 또 다시 수년간 표류하면 중소토지주들의 부담만 늘리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소상공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박원순 시장이 이번에 을지면옥보다 수표지구 공구상 문제에 정책 초점을 맞췄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 시장이 관심을 가져야 할 '사회적 약자'는 땅주인이 아니라 월 임대료 50만원도 버거운 영세 공구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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