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레이더 갈등에 불똥 맞을라…반도체 업계 긴장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19.01.23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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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세정용 불화수소 국내 재고 2주분 불과…일본 독점생산 수출금지시 타격 불가피

韓·日 레이더 갈등에 불똥 맞을라…반도체 업계 긴장


한일 관계가 빠르게 얼어붙으면서 반도체 업계가 긴장했다. 일본이 사실상 독점 생산하는 반도체 공정용 특수가스 불화수소의 한국 수출 금지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다.



23일 관련 업계와 일본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한일 양국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일본 정부가 불화수소 한국 수출 제한 조치 등을 포함한 외교 대책을 물밑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이 같은 움직임은 지난달 20일 동해상에서 발생한 사격 관제 레이더 조준 논란이 영향을 미쳤다. 이날 남해 이어도 근해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가 또다시 우리 해군 함정을 향해 근접 비행을 해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강제징용 소송도 영향을 미쳤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 자산 압류 신청에 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까지 시사하면서 입국비자 제한, 불화수소 수출 제한 등도 거론되고 있다.

불화수소(불산 플루오르화 수소)는 반도체 세정에 쓰는 전략물자다. 순도가 높아야 하는 반도체용 불화수소는 스텔라, 모리타 등 일본 업체에서 전세계 수요의 대부분을 생산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고순도 불산의 90% 이상을 일본에서 수입한다. 우리나라의 산업통상자원부에 해당하는 일본 경제산업상이 이 전략물자의 수출 허가권을 쥐고 있다.


국내 반도체 제조업체의 경우 일반적으로 2주 정도의 불화수소 재고를 확보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불화수소 수입이 2주 이상 제한되면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불가피한 셈이다.

이런 상황은 산업부를 중심으로 정부에도 보고됐다. 산업부 관계자는 "주일 한국대사관 등을 통해 수출제한 관련 동향을 면밀하게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에도 일본 경제산업상이 한국으로 수출 예정이던 불화수소 물량을 불승인했다가 이틀만에 허가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업계가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당시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반발 움직임으로 알려졌다가 서류 미비에 따른 행정절차상 승인 지연으로 알려지면서 업계와 정부가 간담을 쓸어내렸다.

업계에선 이번에도 일본 정부가 직접적으로 불화수소 한국 수출을 제한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본다. 장기 계약이 체결된 상태에서 수출 제한 조치를 내릴 경우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대상이 될 수 있고 한국산 반도체를 공급받는 일본기업으로 피해가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외교 마찰이 격화될 경우 직·간접적으로 파장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선 업계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잇단 외교 마찰을 계기로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핵심소재를 전적으로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는 데 대한 경각심도 흘러나온다. 정부도 일본이 불화수소를 볼모로 외교 무대에서 우위를 노릴 가능성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국내에선 SK머티리얼즈가 반도체 공정용 삼불화질소 등 세정가스를 생산하지만 고순도 불화수소 생산에선 노하우가 부족하다. 산업부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18.2% 수준에 그친다. 2013년보다 오히려 7%포인트 이상 줄었다. 산업부는 2022년까지 국산화율을 3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메모리반도체 초호황으로 삼성전자 (82,400원 ▲1,600 +1.98%), SK하이닉스 (183,000원 ▲4,800 +2.69%)가 글로벌 시장의 강자로 알려졌지만 1대에 수천억씩 하는 제조장비나 핵심소재 물자에 초점을 맞추면 한국은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며 "원천기술과 노하우를 따라잡기 위해선 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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