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캐슬’에 드리운 빛

강명석 ize 기자 2019.01.2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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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캐슬’에 드리운 빛


"올 블랙톤” JTBC ‘스카이캐슬’에서 노승혜(윤세아)는 남편 차민혁(김병철)이 주도한 집 인테리어를 바꾸려 한다. 두 사람의 집 내부는 시간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어두운 조명이 주를 이룬다. 차민혁은 두 자식을 강압적으로 공부시키기 위해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방음실을 만들기까지 했다. 그들의 집에 빛이 환하게 들어온 순간은 차민혁과 상반된 교육관을 가진 노승혜가 망치로 직접 방음실 벽에 구멍을 냈을 때다.

반면 이들이 사는 주택단지 스카이캐슬에 사는 또 다른 부부, 이수임(이태란)과 황치영(최원영)의 집에는 햇빛이 가득하다. 이수임이 처음으로 스카이캐슬의 다른 여성들을 집에 초대했을 때, 그들이 와인을 마시는 장소에는 빛이 밝게 비친다. 이 모임에서 화면이 어두워질 때는 한서진(염정아)을 클로즈업한 화면 뒤에 빛이 조금 들어오는 어두운 통로가 함께 잡힐 때 뿐이다. 이수임이 햇빛이 만들어낸 환한 배경에서 자식 황우주(찬희)에게 과외도 시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할 때, 한서진은 어두운 배경에서 “이 엄마 천연기념물이네”라며 비아냥거린다. 한서진은 자식 강예서(김혜윤)의 서울의대 합격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돼 있다. 두 사람의 상반된 교육관이 빛과 어둠으로 대비된다.



한서진의 집에도 햇빛이 들어온다. 그러나 그 빛은 커튼을 통과하면서 밝기가 낮아진다. 빛이 닿는 집 내부는 주로 유리, 금속, 대리석 등으로 꾸며져 있다. 화려하지만 어디든 손대면 한기가 느껴질 것 같은 분위기. 한서진은 가난했던 과거를 숨긴 채 훗날 주남대 의대 교수가 된 강준상(정준호)과 결혼했다. 부유한 시어머니 윤여사(정애리)는 강예서가 서울의대에 합격해야만 그의 쓸모를 인정하겠다고 말했다. 강예서를 서울의대에 보내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채, 한서진은 매일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인다. 방이 몇 개일지 짐작가지 않을 만큼 큰 주택이지만 한서진이 편히 쉴 수 있는 온기를 품은 공간은 없다. 그가 집 내부를 이동할 때, ‘스카이캐슬’의 카메라는 세로로 긴 통로를 배경에 두곤 한다. 한서진이 좁고 폐쇄적인 그 길들을 따라 다른 장소에 도착하면, 그곳에는 자식과 남편에 관한 새로운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카메라가 집 안의 한서진에게 넓은 공간을 허락하는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닫힌 방 안에서 혼자 목놓아 울 때다. 카메라는 한서진을 화면의 한 구석에 놓은 카메라는 그를 넓고 어두운 공간의 외진 곳에 몸을 웅크린 작은 존재로 보이게 만든다. 큰 집에 의사 남편과 전교 1등을 하는 자식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도, 실컷 울 수 있는 공간도 찾기 어렵다. 한서진의 집은 그의 현재를 설명하는 배경인 동시에, 그를 작게 만들어 소외시키는 곳이기도 하다.

‘스카이캐슬’의 이야기는 숱한 우연과 실수를 통해 성립된다. 김혜나(김보라)는 강준상이 존재를 몰랐던 자식으로, 강예서와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가난하지만 수십억대의 돈을 줘야 하는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의 코치를 받는 강예서를 제칠 정도의 천재다. 그의 출생의 비밀은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실언을 하거나, 이에 관한 대화를 다른 사람이 엿들으며 퍼져 나간다. 자식의 입시에 매달리는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연이은 죽음과 연결시키고, 한서진이 입시 코디네이터와 갈등하던 이야기가 출생의 비밀을 거쳐 살인사건으로 이어지는 역동적인 전개와 별개로, ‘스카이캐슬’의 대본은 허술한 부분들이 많다. ‘스카이캐슬’의 연출은 대본의 틈을 메꾸고, 더 나아가 이야기를 새로운 맥락으로 재구성한다.



‘스카이캐슬’에서 모든 사건의 시작점이 된 이명주(김정난)가 자살한 장소는 스카이캐슬 안의 호숫가였다. 한 회 내내 이어진 입주민들의 화려한 삶과 그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영상과 달리, 이때 화면은 눈 내리는 호숫가의 전경을 보여준다. 나무들은 잎이 떨어져 앙상하고, 눈으로 뒤덮인 벌판에 작게 이명주가 보인다. 스카이캐슬 입주민들이 모두 부러워했지만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고, 자식에게는 거부당한 그는 결국 집 바깥에서 죽는다. 이 순간, 스카이캐슬은 비밀이 은폐되거나 폭로되는 공간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한서진의 과거는 입주민들이 모인 열린 공간에서 폭로됐고, 김혜나에 얽힌 비밀은 그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추락사하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스카이캐슬’의 모든 이야기가 각자의 비밀이 계속 타인에게 흘러 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스카이캐슬의 입주민들은 이 비밀들이 스카이캐슬 담장 바깥으로 넘어가지 않게 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김혜나는 죽기 전 김주영(김서형)의 비리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 폭로의 수단은 인터넷이었다. 스카이캐슬의 비밀이 담을 넘어 나가려는 순간, 폭로자는 죽음을 맞이한다. ‘스카이캐슬’ 첫회는 한서진이 몰던 차가 스카이캐슬 안으로 들어오며 시작하기도 한다. ‘스카이캐슬’의 연출은 공간을 통해 이 작품이 다루는 거짓과 비밀과 폭로의 의미를 전달한다. 강준상은 강예서의 교육을 한서진에게만 맡겨놓았다. 김혜나의 정체를 몰랐다고는 하지만 생명이 위독한 채 먼저 병원에 온 김혜나를 죽게 한 책임도 그에게 있다. 하지만 그는 김혜나의 정체를 안 뒤 어머니와 한서진에게 분노하는 장면을 통해 마치 어머니로 인해 인생을 망친 피해자처럼 묘사된다. 그는 한서진에게 양심의 눈을 뜨게 만드는 설득을 하기도 한다. 캐릭터에 대한 엉뚱한 면죄부가 주어지는 상황을, ‘스카이캐슬’의 연출은 차가운 분위기의 한서진의 집을 밝은 빛으로 채우며 이 순간이 드라마의 중요한 전환점처럼 보여준다. 강준상의 대사에 장엄한 음악을 깔며 그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이 드라마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면, 그 절반 이상은 연출의 몫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회 방영 예정인 ‘스카이캐슬’의 제작비는 75억으로, 회당 4억이 채 되지 않는다. 많으면 몇 백억 이상 하는 최근의 드라마 제작비를 감안하면 ‘스카이캐슬’은 적은 예산으로 제작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스카이캐슬 내부의 화려한 인테리어, 그 곳을 인물의 성격과 연결시켜 보여주는 연출은 이른바 ‘때깔’이 좋다는 느낌을 준다.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화제가 되고 있는 메인 테마곡 ‘We all lie’의 몽환적인 분위기 역시 이런 ‘때깔’을 만들어내는 데 한몫한다. ‘스카이캐슬’은 드라마가 완성도에 있어 제작비만큼이나 프로덕션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이런 역량은 10여년 전에는 모두 지상파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감각적인 영상은 ‘스카이캐슬’이, 해외의 풍광은 tvN ‘남자친구’가, 수백억의 제작비를 들인 화려한 볼거리는 tvN ‘미스터 선샤인’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25일에는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조선시대 배경의 좀비물 ‘킹덤’이 업데이트 될 예정이다. ‘스카이캐슬’은 이제 비지상파 드라마가 지상파에게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다는 선언과도 같다. 다소 빈틈이 있고, 출생의 비밀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대본도 이 정도의 완성도를 끌어낼 수 있다. ’스카이캐슬’에서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사이, 드라마의 ‘때깔’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곳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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