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이지혜 디자인기자
▶ 민규씨 어린 딸이 단독으로 상속하게 됩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의외로 채무(빚)는 상속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분(피상속인)의 재산은 적극재산(+)과 소극재산(-)을 불문하고 모두 상속인에게 상속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민법은 상속인 보호를 위해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상속으로 인해 얻을 재산의 한도에서 피상속인의 채무와 유증을 변제하는 것을 조건으로 상속을 승인하는 제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그 신고기간을 단기(3개월)로 해 채무자의 불확정성으로부터 채권자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안과 같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상속재산이 오로지 채무뿐인 경우에도 이는 배우자인 어머니와 직계비속인 민규씨 둘이 1.5:1의 비율로 상속받게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와 민규씨가 상속포기 기간(상속개시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가정법원에 상속포기 신고를 했으므로 상속개시된 때부터 어머니와 민규씨는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이 돼 결국 상속재산은 아버지의 또 다른 직계비속인 손녀(민규씨 딸)가 상속받게 됩니다. 민규씨로서는 상속포기를 할 때 딸도 함께 상속포기를 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는데 이를 미처 알지 못한 겁니다. 다만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입장에서 선순위자의 상속포기로 인해 자신이 상속인이 됐다는 사실까지 알기는 쉽지 않으므로 판례는 이런 경우 상속인이 피상속인 사망으로 상속이 개시됐다는 사실과 제1순위 상속인의 상속포기로 인해 자신이 상속인이 된 사실을 모두 알게 된 때부터 상속포기 기간 3개월이 진행한다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2003다43681 판결). 그러므로 민규씨는 딸의 법정대리인으로서 그 기간 내에 딸이 상속포기를 할 수 있도록 신고해야 어린 딸이 할아버지의 채무를 단독으로 떠안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습니다.
▶ 주형(사망)씨의 배우자와 어린 딸이 공동으로 상속하게 됩니다.
상속인이 될 자가 피상속인 사망 전에 사망하거나 결격자가 된 경우 그 자의 직계비속이 피상속인의 재산을 대습상속받게 되고(민법 제1001조), 배우자도 그 직계비속과 동순위로 대습상속을 받게 됩니다(민법 제1003조 제2항). 즉, 주형씨 어머니의 사망으로 인해 원래 주형씨가 살아있었다면 받았을 상속이 사망한 주형씨를 거쳐 주형씨 배우자와 딸에게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대습상속). 그런데 주형씨 배우자와 딸은 이미 주형씨 사망 당시 주형씨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지 않겠다고 포기 신고를 한 바 있으므로 주형씨의 재산이 그 모친인 할머니에게 넘어간 후에 할머니 사망으로 인해 다시 내려오는 것까지 모두 사전에 상속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최근 대법원 판례(대법원 2014다39824 판결)에 따르면 ‘대습상속은 상속과 별개의 원인으로 발생하는 것이고 대습상속이 개시되기 전에 이를 포기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므로 상속포기의 효력은 피상속인 사망으로 개시된 상속에만 미칠 뿐 그 후 피상속인을 피대습자로 해 개시된 대습상속에는 미치지 않는다’고 판시해 이를 부정했습니다. 즉, 주형씨 배우자와 딸이 주형씨 사망 당시 상속을 포기한 것은 주형씨 모친 사망으로 인한 대습상속에는 미치지 않아 포기의 효력이 인정되지 않고 그대로 채무를 모두 상속받게 되는 겁니다.
따라서 주형씨 배우자와 딸은 할머니(주형씨 모친) 사망을 안날로부터 3개월 내에 다시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해야 채무 상속을 막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