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는 알아서, 제재는 알지?" 그림자규제 실태보니…

머니투데이 전혜영 기자 2019.01.22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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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규제, 각종 모범규준 및 가이드라인, 가격개입까지…공문 한장 없이 그림자규제, 어기면 "들여다본다" 제동

금융위원회가 그림자규제 근절을 선언한 지 3년이 지났지만 금융권 곳곳에는 공문 한 장 없이 이뤄지는 금융당국의 그림자규제가 아직 상당하다. 형식적으로는 금융사가 ‘알아서 하라’는 자율규제지만 당국의 지시를 어기고 액면 그대로 ‘알아서 하면’ 각종 검사와 제재 압박을 받는다.

◇참고지표가 대출기준, 금리 올리면 검사 압박=지난해 시행된 총체적상환능력비율(DSR) 규제는 대표적인 그림자규제다. DSR은 연간 소득 대비 모든 대출의 연간 원리금 상환비율로, 대출 신청자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연 소득의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대출에 제한을 받는다.



DSR은 은행업법 감독규정 등에 명시되지 않은 단순 참고지표지만 대부분의 은행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금융당국이 정한 기준에 맞춰 고DSR에 해당하면 대출을 거절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DSR규제가 없다면 은행이 소비자보호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해 대출을 거부하거나 승인하면 되는데, 사실상 안 지켜도 되는 규제를 DTI(총부채상환비율)나 LTV(주택담보인정비율)처럼 획일적으로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개입해 은행권의 가산금리를 못 올리게 한 경우도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주택담보대출 가산금리를 인상했다가 금감원이 “적극적으로 은행권 가산금리 인상사유를 들여다보겠다”고 밝힌 후 금리를 내리고 원위치했다.

◇“자율인데 규제?” 모범규준·가이드라인 홍수=지난 한해 동안 은행연합회·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여신금융협회 등 금융협회는 각각 10건이 넘는 규정을 개정하거나 새로 만들었다. 대부분 업권에서 필요해서라기보다 금감원이 제도 개선을 지도하면서 ‘반강제’로 만든 규정이다.

대표적인 것이 금융그룹 통합감독 모범규준이다. 비은행 금융그룹의 건전성을 감독하겠다는 취지에서 제정됐는데 아직 통합감독법이 제정되지 않아 법적 근거가 없다. 하지만 금감원은 이 모범규준을 근거로 금융사를 대상으로 현장점검과 실태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각 금융협회가 마련한 ‘채용절차 모범규준’, ‘금융회사 내부자 신고제도 모범규준‘ 등도 마찬가지다. 채용절차 모범규준은 은행권 채용비리 사태 이후에, 내부자 신고제도 모범규준은 횡령이나 사기 등 금융사고를 효율적으로 막자는 취지에서 금감원의 지시로 마련됐다.

◇가격개입·즉시연금 일괄구제 논란도=원칙적으로는 금지된 가격개입도 그림자규제다. 금융위와 금감원의 내부규범인 ’금융규제 운영규정‘에서는 금리, 수수료 등 가격이나 배당, 인사 등 금융사 고유 경영행위에 대한 행정지도 등이 금지됐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에 따른 보험료 인하 요인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지난해 실손의료보험료를 동결했다. 자동차보험도 “업계에 사업비 절감 여력이 충분하다”며 사실상 보험료 인상에 제동을 걸었다.

즉시연금 일괄구제 사례도 그림자규제에 해당한다. 금감원은 삼성생명이 즉시연금 과소지급에 대한 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을 받아들이자 명확한 행정지도도 없이 전 보험사에 구두로 보험금 일괄 지급을 지시했다. 보험사들이 이사회를 통해 보험금 지급을 결정하기 위해 감독 규정이나 구체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며 공문을 요청했지만 끝내 거부했다.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금감원이 행정지도를 통해 카드사의 과도한 마케팅 경쟁에 제동을 걸거나 저축은행이 법정 최고금리(24%) 안에서 영업하고 있음에도 20%를 고금리로 규정하는 등 영업행위에 개입하는 사례도 많다”며 “불합리한 관행인 만큼 감독당국 스스로 과도한 재량 행사를 자제하고 절차에 따른 공식적인 지도를 체화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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