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문체부, 4000억원 예산 주고도 대한체육회 ‘털끝’도 못 건드려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2019.01.11 17:06

심석희 성폭력 사건으로 본 정부·산하단체 관계 ‘함수’…체육회 '관행의 반복', 문체부 '개입 의지 빈약'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심석희(왼쪽)와 전 국가대표 코치 조재범.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심석희(왼쪽)와 전 국가대표 코치 조재범.
“(문체부) 차관이 수백 번 고개 숙여 사과하면 뭘 하나요. 옷 벗을 각오 하고 확실한 제재를 단행하는 게 우선 순위죠.”(문화체육관광부 A 고위 공무원)

“대한체육회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체육회는) 지나가는 바람처럼 ‘잠시’ 고개 숙이고 문제 해결하고, (문체부는) 자기 문제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이 횡행하기에 개혁 의지가 사라지는 겁니다.”(문화체육관광부 B 고위 공무원)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의 폭력 및 성폭력 폭로 이후 대한체육회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와 함께 산하단체를 관리·감독해야 할 문화체육관광부의 ‘방관 정책’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폭력과 성폭력이 암암리에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국가대표의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폭력쯤은 눈감아 줄 수 있다는 체육회와 문체부의 암묵적 동의가 수십 년 간 이뤄지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게 체육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문체부 공무원 C씨는 “대한민국 공무원 적폐청산하는 과정에서 ‘움직이면 손해’라는 내면의 확신이 깊어지는 게 현실”이라며 “특히 체육 관련 공무원들은 체육계 속사정에 밝지 않고 보직 변경도 빈번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귀띔했다.

문체부와 대한체육회는 최근 잇따라 고개 숙여 국민에게 사과했다. 노태강 문체부 제2차관은 “심석희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보호하지 못한 데 대해 사과드린다”며 “정부는 지금까지 모든 대책을 전면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체육회 역시 “심석희 선수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전하며 국민 여러분께도 깊이 사과드린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체육계 인사들은 여전히 미봉책에 그칠 것이라며 “사과로 시작해 개선책을 내놓는 구성은 과거에도 흔히 봐왔던 패턴”이라고 우려했다.

지난해 10월 대한체육회를 감사한 문체부가 2015년부터 지난해 6월 15일까지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에 접수된 선수와 지도자들의 폭력 및 성폭력 관련 민원을 조사한 결과 71건 민원 중 사건 처리가 부실하거나 유야 무야 넘어간 사례가 적지 않았다.

71건 중 13건은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았고 2015년 모 학교 축구부 지도자 간 성폭력은 결과 내역이 전무한 상태로 남아있기도 했다. 또 민원 취하 요청이 없는데도 종결 처리된 폭력 민원, 미흡한 처리 결과로 남은 핸드볼 지도자 폭력 사건 등 어정쩡한 처리 사건들이 적지 않았다.

대한체육회가 문체부로부터 받는 예산은 4000억 원에 이른다. 체육회는 이 막대한 예산을 빙상연맹, 축구협회 등에 나눠준다. 체육회가 관리하는 종목 단체들은 ‘예산 배분’의 목줄을 쥔 체육회를 조심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나마 축구협회는 재정 자립도가 70, 80%에 이르러 독립성을 유지하지만, 나머지 단체들은 재정 자립도가 10, 20% 그쳐 체육회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왼쪽)과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두 사람은 최근 심석희 선수의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고개 숙여 심 선수와 국민에게 사과했다.이기흥 대한체육회장(왼쪽)과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두 사람은 최근 심석희 선수의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고개 숙여 심 선수와 국민에게 사과했다.
종목 단체장의 눈치를 보는 것은 체육회도 마찬가지다. 경기 연맹단체장들이 몇 해 전까지 체육회 회장 선거권을 가졌기 때문에 큰 물의를 빚는 사건이 아니면 유야 무야 넘어가는 관례가 빈번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한체육회의 ‘막강한 예산 권력’을 감시해야 할 문체부의 태도다. 심석희 사건을 계기로 문체부가 강도 높은 개선책을 내놓고 적극 개입 의지를 시사했지만, 그간 ‘뒷짐’지며 관리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기 때문.

고위공무원 A씨는 “(문체부) 순환 보직이 대체로 1년마다 바뀌는 게 현실이다. 체육계 속사정을 알만하면 떠나야 하는 현실에서 제대로 된 개혁 정책이 나오겠느냐”며 “엘리트 체육을 일정 정도 포기하는 일이 있더라도 체육개혁에 대한 진정한 의지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고위공무원 B씨는 “심석희 선수 성폭력 사건은 (코치의) 개인 일탈이 아닌, 국가대표 소집 상황에서 벌어진 구조적 문제”라며 “그만큼 체육계의 (성)폭력 사태가 갈 데까지 갔다는 걸 방증한 것”이라고 했다.

B씨는 이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단체를 정부가 제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예산”이라면서 “1년간 폭력, 자립도, 성적 등 다각적 평가를 통해 예산 배분을 하고 ‘내 일이 아니다’는 공무원의 인식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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