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韓브랜드 입고 빌보드 무대 오른 배경은…

머니투데이 김평화 기자 2019.01.23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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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사20주년 기획- 새로운 100년 이끌 '영 리더]패션디자이너 장형철 오디너리피플 대표

편집자주 20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대한민국은 100년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됐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한 덕분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역사적 변곡점마다 젊은 리더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이 나라의 운명을 바꿨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새로운 100년을 시작한다. 그 어느 때보다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올해 창사 20주년을 맞는 머니투데이가 우리 사회 각 분야 ‘영 리더’(Young Leader) 20인을 선정, 이들이 얘기하는 미래 대한민국 얘기를 들어봤다.

방탄소년단이 미국 빌보드 무대에서 입은 '오디너리피플' 의상/사진제공=오디너리피플방탄소년단이 미국 빌보드 무대에서 입은 '오디너리피플' 의상/사진제공=오디너리피플


방탄소년단(BTS)이 일으킨 한류 열풍은 2018년 전세계를 달궜다. BTS는 '빌보드 200'에서 두 번이나 1위를 차지했다. 9월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BTS가 무대에서 입은 의상 대부분은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들이 협찬한 명품이었다. 이 중 한국 토종 브랜드도 당당히 포함됐다. 장형철 디자이너의 '오디너리피플' 브랜드다.

'오디너리피플'이 먼저 나서진 않았다. BTS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측에서 먼저 장 대표에게 연락했다. 2017년 F/W 밀라노 컬렉션에 참가했던 장 대표의 작품을 눈여겨 본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이 미국 빌보드 무대에서 입은 의상. 장형철 디자이너의 브랜드 '오디너리피플'방탄소년단이 미국 빌보드 무대에서 입은 의상. 장형철 디자이너의 브랜드 '오디너리피플'
장 대표는 빅히트엔터측에 '오디너리피플'을 고른 이유를 물었다. 방시혁 빅히트엔터 대표가 '한국 아이돌이 미국에서 공연하는 데 한국 브랜드를 입고 나섰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에 감명받은 장 대표는 주저없이 의상을 제작키로 했다. 'K-패션'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BTS와 손을 잡은 셈이다.

장 대표는 BTS 외에도 워너원, 엑소, 갓세븐 등 다른 아이돌 가수들의 무대 의상을 직접 디자인했다. 모두 각 소속사들로부터 연락을 먼저 받았다. 장 대표는 "아티스트들을 빛나게 하는 옷을 만들어야 저희도 빛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직접 작명한 브랜드 '오디너리 피플'은 '평범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조금 더 풀어 설명하면 '평범함에서 특별함을 찾는 사람'이다. 장 대표는 "스스로가 특별한 존재이길 바라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 옷을 입음으로써 특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옷을 만든다"고 했다.


그 역시 평범했다. 24살 때 막연히 옷이 좋아 디자이너의 길에 들어섰다. 그전까진 대학에서 식품외식조리를 전공했다. 군대에서 생각이 달라졌다. 전혀 다르지만 가고 싶은 길을 걷기로 했다. 제대 후 다니던 학교를 그만뒀다. 서울패션전문학교에 입학했다. 3년이 늦어진 셈이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해 여름, 강남구 신사동 일대 패턴실에서 디자인을 배웠다. 우연히 고태용 디자이너를 만나게 됐다.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그렇게 '비욘드 클로젯'의 첫 직원이 됐다. 지금은 매우 유명한 브랜드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매출이 아예 없었다. 하지만 4년을 함께 일하며 많이 배우고 함께 성장했다.

'오디너리피플' 브랜드 런칭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처음 6개월간 사무실도 없었다. 집에서 디자인을 시작했다. 직원들이 늘면서 대표로서 무거운 책임감도 견뎌내야 했지만 자신있었다. 단순히 생각했다. 좋아하고 몰입할 수 있는 일이니까 성공도 자신했다.

장 대표는 "물론 다른 길을 걷는 게 불안했지만 단순히 생각했다"며 "패션을 사랑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몰입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시간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며 "남들보다 빠른 시간에 경험을 쌓았고 결국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맨손으로 시작했지만 패션 자체가 좋고 재밌었다. 작은 기회가 찾아올 때마다 꼭 잡으려고 했다. 브랜드 런칭 1년여만에 서울 컬렉션에 데뷔했다. 2년차 때는 '패션왕 코리아'라는 디자이너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인지도가 쌓았다. 이는 홈쇼핑 데뷔로 이어졌다.

2015년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 남성복 전문 수주회 '삐띠 워모(Pitti Uomo)'에 참가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았다.

패션디자이너가 된 지 4년만인 2016년엔 한 발자국 더 앞으로 걸었다. 뉴욕 패션위크에 데뷔한 것. 만 32세, 한국인 최연소였다. 세계 3대 패션스쿨로 불리는 파슨스디자인스쿨 학장이 장 대표를 높게 평가했다.

이전까진 뉴욕컬렉션에 경력이 짧은 디자이너가 참가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장 대표의 참가 자체로 이슈가 됐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국내외 언론들이 그를 취재했다. 국가당 2명씩 뽑아 해외 컬렉션 참가를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였다.

그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디자이너 지망생으로서 쉽게 올 수 없는 기회였다. 장 대표는 "실력으로 모든 걸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패션은 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나만의 의상과 그에 담긴 스토리를 잘 풀어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컬렉션에 참가하려면 디자인을 3000개 정도 구상해야 한다"며 "실제 의상으로 나오는 디자인만해도 300개 정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상 하나가 예쁘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라며 "의상들 간 조화를 이루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 대표는 "컬렉션에 참가하면 1~45착까지 진행하는데 흐름이 있어야 한다"며 "옷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옷을 돋보이게 하려면 어떻게 할지 모델이 어떻게 할지 모든 게 디자이너 머리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무대와 조명, 모델의 걷는 속도, 음악까지도 디자이너가 직접 구상한다는 설명이다.

사업을 하면서 '보는 눈'이 점점 깨기 시작했다. 그는 "요즘에도 동대문 원단시장을 둘러보며 패턴을 보는 눈과 실력을 향상시키려고 한다"고 말했다.

뉴욕패션위크에서 잡은 기회는 또다른 기회로 이어졌다. 장 대표는 2017년엔 헤라서울패션위크, F/W 밀라노 컬렉션 무대에 연달아 자신의 작품을 세웠다. 밀라노컬렉션에선 벨기에 출신 유명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비교적 어린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실력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기회가 올 때마다 꼭 잡으려 했다"며 "기회는 새로운 기회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우연찮게 잡은 기회들을 통해 능력을 입증했다.

2018년 초 열린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곤 코카콜라의 연락을 받았다. 코카콜라는 평창올림픽 최대 스폰서였다. 유니폼 제작을 맡아달라는 요청이었다. 코카콜라 본사 직원과 자원봉사자가 입을 유니폼 1000여장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이 역시 사업가로서 누릴 엄청난 기회였다.

최근엔 디즈니와 '락 밴드 투어 티셔츠'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미키마우스 캐릭터를 재해석한 디자인을 내놨다. 디즈니는 장 대표의 '평범함을 재해석하는 능력'에 주목했다.

기존 미키마우스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어찌보면 뻔할 수 있는 캐릭터의 이미지를 다시 만들었다. 장 대표는 "30대 남자가 어떻게 미키마우스를 입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작업했다"며 "자료 조사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나만의 색을 찾고 나답게 할 수 있는 게 뭘지 끊임없이 새로움을 고민한다"며 "그 과정에서 실패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안되도 당연한 것이고, 되면 감사한 것으로 여겼다"며 "작은 기회에도 최선을 다하면 그 기회들이 모여 큰 기회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스로가 새로운 리더라고 자신했다. 장 대표는 "한국 패션계에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시도를 하고, 그 결과물을 세계시장에 내놓고 있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패션이 좋아 디자이너가 됐고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 초반엔 '옷만 아는 바보'였다. 이제는 다르다. 엄연한 사업가가 됐다.

장 대표는 "리더는 A부터 Z까지 다 알고, 다 잘해야 한다"며 "비지니스적으로 부족한 면이 있다고 느껴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틈이 날때마다 책을 읽었다. 전문가들을 자주 만나 사업하는 법을 배웠다. 사업을 하다 난관이 생길 때도 있었지만, 오히려 배움의 기회가 됐다. 문제들을 해결하며 리더의 자격을 갖춰나갔다.

30년 후, 그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까. 그는 취미로 축구를 즐긴다. 축구에서 '멀티플레이어'를 자처한다. 장 대표는 "공격수 역할을 좋아하지만 미드필더와 수비수, 때론 골키퍼 역할까지 즐긴다"며 "다른 포지션에선 다른 기술과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데, 다른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 재밌다"고 말했다.

인생도 같은 맥락이다.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꿈꾼다. 예컨데 전공으로까지 선택했다 접은 요리라든지. 장 대표는 "패션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또 다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장형철 오디너리피플 대표장형철 오디너리피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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