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날]"뭘 알아야 배우죠"…방치된 유학생, 웃음짓는 대학가

머니투데이 유승목 기자, 이강준 기자, 임찬영 기자 2019.01.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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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중국화(化)-②]외국인 유학생 15만 시대, '어학능력 부족' 그림자도…전문가 "입학부터 높은 수준 요구해야"

편집자주 월 화 수 목 금…. 바쁜 일상이 지나고 한가로운 오늘, 쉬는 날입니다. 편안하면서 유쾌하고, 여유롭지만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 쉬는 날엔 '빨간날'

지난해 11월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 재학 중인 외국인 학생들이 축제에 참여한 모습.(기사와 관계 없음) /사진= 뉴스1 지난해 11월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 재학 중인 외국인 학생들이 축제에 참여한 모습.(기사와 관계 없음) /사진= 뉴스1


[빨간날]"뭘 알아야 배우죠"…방치된 유학생, 웃음짓는 대학가
대학가에 '국제화' 바람이 거세다. 교정을 거니는 외국인 유학생은 이제 자연스러운 광경이다. 전공·교양 수업을 막론하고 어느 강의실을 가도 자리에 앉아 수업에 집중하는 외국인 학생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의 대학생활이 마냥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한국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따라가기도 벅차다 보니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국 학생과 마찰을 빚기도 한다. 막연한 국제화 환상에 빠진 교육당국과 학교의 낙관적 태도에 정작 등록금을 내고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고통만 가중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인 유학생 15만 시대
외국인 유학생은 더 이상 소수자가 아니다. 매년 해외에서 한국 대학을 찾는 발길이 늘어나는 추세다. 12일 교육부의 '2018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대학과 대학원 등 고등교육기관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유학생의 수는 14만2205명으로 전년(12만3858명) 대비 14.8% 증가했다. 2008년(6만3952명) 이후 10년 만에 두 배를 훌쩍 넘겼다.



특히 중국인 학생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전체 외국인 학생 중 중국인만 6만8537명(48.2%)에 달한다. 두 명 중 한 명 꼴이다. 서울 시내 주요대학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가장 많은 외국인 학생이 수업을 들은 고려대와 경희대, 성균관대 모두 중국인 학생의 수가 2000명을 넘었다. 특히 성균관대의 전체 외국인 학생(3853명)에서 차지하는 중국인(2607명) 비율은 67.7%에 달했다.

이처럼 해외 유학생이 급증하며 대학 강의실에는 한국 재학생과 외국인 학생이 섞여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는 다소 어색한 긴장감이 흐른다. 어학 능력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서울 성북구 한 대학에 재학 중인 한국인 학생 A씨(25)는 "한국어와 중국어를 서로 못하다 보니 차라리 영어로 얘기해야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빨간날]"뭘 알아야 배우죠"…방치된 유학생, 웃음짓는 대학가
같은 대학에 재학 중인 윤모씨(26)도 "모든 유학생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종종 부족한 어학능력 때문에 강의나 그룹활동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때가 있어 늘어나는 유학생이 솔직히 마냥 반갑지는 않다"고 토로했다.


◇갑작스러운 증가 우려에… 대학 "문제 없어"
이처럼 해외 유학생이 급증하며 부작용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의 어학 능력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입학한다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으로 교육 당국의 보여주기식 국제화 정책이 가장 먼저 지목된다. 교육부는 2015년 글로벌 인재 유치를 위해 2023년까지 유학생을 20만 명으로 늘리겠다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를 위해 이듬해 유학생 입학 기준을 한국어능력시험(TOPIK) 3급에서 2급으로 내려 비판을 받았다. TOPIK 관계자에 따르면 3급은 '기초 언어 구사' 수준에 불과하고, 2급은 이보다 더 낮은 등급이다.

대학도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해외 유학생이 급증한 수 년 전부터 국제화 지수를 높여 정부지원금을 얻는 동시에 이들의 등록금으로 재정을 확충하려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기 때문. 이에 대해 대학 측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서울 소재 한 대학교 관계자는 "유학생 증가로 받는 정부 지원금은 일체 없다"며 "재정 충당이 목적이라면 입학금도 올렸겠지만 최근 오히려 낮추는 추세"라고 선을 그었다.

오히려 유학생 적응 및 어학능력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과 강의 수강 기준 등을 마련해 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해당 대학 관계자는 "입학시 TOPIK 급수 기준이 없긴 해도 전공 수업 수강을 위해서는 4급 이상을 취득해야 한다"며 "수업에 있어 크게 방해가 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낙관적인 태도를 보였다. 해당 대학이 제시한 자체 조사에 따르면 전체 유학생 중 55%가 TOPIK 4급 이상을 소지하고 있었다.

/사진= 이미지투데이/사진= 이미지투데이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에게
정작 수업 현장에서는 학교와 당국의 이같은 낙관적인 시각을 납득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경희대학교에 재학중인 중국인 유학생 A씨(25)는 "학교가 유학생들을 위해서 한국어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한다고 하는데, 전혀 모르겠다"며 "(아마) 유학생들 대부분이 모를 것이다" 말했다.

한국어를 잘 구사하는 학생도 교내 한국어 프로그램을 잘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다. 고려대학교를 다니는 중국인 유학생 B씨(24)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 6급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어 능통자지만 학교의 도움을 받은 기억은 없다. B씨는 "학교의 어학당이 아니라 따로 중국에서 학원을 1년 다니며 공부를 한 게 많이 도움됐다"며 "학교 한국어 프로그램은 1대1로 멘토링 해주는 프로그램 말고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애초에 입학 기준인 TOPIK 자체가 실제 강의에서 필요한 한국어 능력과 관계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 서울 소재 대학 대부분이 '일상 생활이 가능한' 수준인 TOPIK 4급이면 입학이 가능하지만 큰 의미가 없다는 것. 중국인 대학생 C씨(23)는 "TOPIK은 듣기·읽기·쓰기만 있어 회화 능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TOEIC점수가 높다고 영어를 다 잘하는 것이 아니듯, TOPIK이 높다고 한국어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TOPIK 5급이어도 회화를 전혀 못하는 친구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유학생 수에 집착하지 말고 입학 단계서부터 높은 수준을 요구해 교육의 질을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울 소재 한 유학원 원장은 "대학 대부분이 TOPIK 4급 이상 학생을 선발해 알아서 한국어 수업을 공부하게 한다"며 "이런 시스템은 한국어를 열정적으로 공부하지 않는 학생을 만들고, 결국 수업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민귀식 한양대 중국경제통상 교수는 "처음 입학할 때부터 높은 수준의 한국어 능력을 요구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학교가 유학생의 한국어 교육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근본적인 문제는 대학이 외국인 유학생을 단순히 재정적 차원에서만 바라보는 것"이라며 "한국 학생처럼 같이 인재를 키워낸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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