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대제전’이 보여준 MBC의 몰락

강명석 ize 기자 2019.01.0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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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대제전’이 보여준 MBC의 몰락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은 MBC ‘가요대제전’의 1부와 2부에서 각각 ‘MIC DROP’과 ‘IDOL’을 불렀다. 이미 논란이 된 것처럼 두 번 다 엔딩무대에 서지는 못했다. 다시 말하면, 방탄소년단은 ‘가요대제전’에 잡힌 볼모와도 같았다. 두 곡을 완곡으로 부르면서 러닝타임은 가장 길었다. 하지만 다른 인기 팀들은 한 번에 5분 이상의 무대를 배정받으며 인트로 등을 포함, 기존과 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었다. 반면 방탄소년단은 1,2부에 한 곡씩 쪼개 부르면서 원곡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 이상은 선보이지 못했다. 그들이 두 번 다 엔딩 무대에 서지 못한 것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흥행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팀으로서 1,2부에 모두 서며 시청자들을 붙잡아 두는 역할을 했지만, 이 팀은 어떤 대우도 받지 못했다. 심지어 방탄소년단은 ‘가요대제전’에 출연한 의상을 입은 채 MBC ‘일밤’의 ‘복면가왕’ 리메이크인 미국 FOX ‘더 마스크드 싱어’를 홍보하는 영상도 찍었다. MBC 예능국이 ‘가요대제전’ 출연 팀 중 가장 홍보를 맡길 만하다고 판단했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MBC 예능국은 그들에게 ‘가요대제전’만을 위한 무대조차 주지 않았다.

음악 프로그램의 위상은 과거 같지 않다. 엔딩무대는 더욱 그렇다. 네이버 TV 캐스트와 유튜브로 원하는 가수의 무대만 볼 수 있는 시대에 엔딩 무대는 많은 순서 중 하나일 뿐이다.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방탄소년단의 무대가 화제가 된 것은 엔딩이어서가 아니라 ‘IDOL’에 담긴 국악적인 요소를 더욱 확장한 퍼포먼스가 놀라움을 줬기 때문이다. 지난 7일 ‘골든디스크’는 방탄소년단의 ‘IDOL’ 무대를 위해 그들이 타고 들어올 대형 조각상을 제작했다. 여기에 한국, 일본, 홍콩에서 3일동안 콘서트처럼 진행하는 Mnet의‘MAMA’까지 더해지면, 지상파 3사의 연말 음악 프로그램은 비지상파 시상식들의 애프터 파티일 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요대제전’은 그 중에서도 최악이다. 방탄소년단은 SBS ‘가요대전’과 KBS ‘가요대축제’에서도 엔딩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요대전’에서는 콘서트같은 구성을 보여줬고, ‘가요대축제’에서는 멤버들의 솔로 무대를 각각 보여줬다. 연말 음악 프로그램이 아니면 TV에서는 볼 수 없는 퍼포먼스고, 많은 기획사들이 시상식을 비롯한 연말 특집 프로그램 출연을 원하는 이유다. 하지만 ‘가요대제전’에서는 방탄소년단조차 새로운 무대를 보여줄 수 없다. 주어진 시간은 한정 돼 있고, 다른 방송사들의 프로그램보다 작은 무대에 뒤 편에 LED 스크린 하나 띄운 연출은 평소의 MBC ‘음악 중심’과 다를바 없다. 다른 모든 의심들을 떠나서, ‘가요대제전’에는 좋은 무대를 만들어보겠다는 의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상파의 최소한의 자존심조차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MBC ‘연기대상’의 대상을 받은 소지섭은 MBC ‘내 뒤에 테리우스’에 출연했다. 최고시청률은 10.5%(닐슨코리아)였고, tvN ‘미스터 선샤인’, ‘남자친구’, 최근의 JTBC ‘스카이 캐슬’등과 비교해 화제성이 컸다고 하기도 어렵다. 이것이 MBC의 현주소다. 지난해 MBC ‘방송 연예대상’에서 버라이어티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차인표가 출연하는 ‘일밤’의 ‘궁민남편’ 시청률은 2.5~5.1%를 오간다. 지상파 시청률이 많이 낮아졌다고 하지만,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과 비교해도 가장 낮다. ‘나 혼자 산다’와 ‘전지적 참견시점’등은 인기를 얻었지만, 그 중 ‘전지적 참견시점’은 세월호 침몰 관련 뉴스를 웃음의 소재로 쓰고, 이후 자체 조사 과정에서의 문제 등으로 결방까지 됐다. 각 기업 구내식당을 돌아다니며 사실상 기업을 홍보해주는 ‘구내식당’ 같은 프로그램까지 있었다. 다른 지상파가 위기를 겪고 있다면, MBC는 몰락했다. ‘가요대제전’은 이런 문제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줬다. 콘텐츠에 대한 아무런 욕심도, 투자도 없다. 시간 배분이나 무대 연출은 제작진 마음대로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의도조차 보이지 않고, 그저 인기 팀을 1,2 부에 나누어 출연시키는 꼼수만을 쓴다.

지난 5일 MBC 오디션 프로그램 ‘언더나인틴’에는 방탄소년단의 멤버 제이홉이 출연했다. 오디션 참가자들에게 조언을 해주기 위해서다. MBC는 ‘가요대제전’에서 방탄소년단을 1,2부에 나눠 출연시키고, 엔딩도 주지 않고, 따로 퍼포먼스를 보여줄 시간도 주지 않았지만 ‘언더나인틴’에는 섭외할 수 있다. MBC 예능국은 이것을 지상파의 힘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애초에 방탄소년단은 지상파가 아닌 유튜브를 거점으로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또한 ‘언더나인틴’은 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과 비교하면 진행 방식은 매우 비슷한 반면, 규모는 비교하기 민망할 만큼 소소하다. 반응 역시 ‘프로듀스 101’과 그만큼 차이가 난다. 더 이상 음악 산업의 스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 스타를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한다. 그저 섭외만 해서 시청자들을 붙잡아 두고, 연말 음악 프로그램에서도 마치 출석도장 찍듯 많은 가수들을 무대에 세우고 내릴 뿐이다. 그 결과 MBC에서는 모든 가수들이 똑같이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하는 무대를 보여준다. 과거에는 그래도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것이 MBC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무대 순서와 시간 배분만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2019년이다. 정말, 이래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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