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주의 꿈 '넥슨월드'까지…'동행'의 기업가정신 바라는 이유

머니투데이 성연광 정보미디어과학부장 2019.01.0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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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광의 디지털프리즘]

김정주 NXC 대표. /사진제공=넥슨코리아 제공.김정주 NXC 대표. /사진제공=넥슨코리아 제공.


 “한국의 디즈니로 키우고 싶다.” 넥슨 창업주 김정주 NXC 대표(51·사진)의 꿈이었다. 그의 꿈은 얼마나 실현됐을까.



 1994년 그는 26세의 나이로 동료들과 함께 넥슨을 창업했다. 2년 뒤 넥슨은 국내 첫 온라인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바람의 나라’를 시작으로 ‘메이플스토리’ ‘카트라이더’ ‘던전앤파이터’ 등 공전의 히트작을 쏟아냈다. 2011년 일본 증시에 상장했다. 국내 기업으론 최초다.

 이후에도 넥슨은 고공행진을 거듭해 영업이익 1조원 시대를 눈앞에 뒀다. 김 대표의 천부적인 M&A(인수·합병) 능력 덕분이다. 넥슨 자체개발 게임도 있었지만 ‘돈 될 만한 게임’을 간파하는 안목이 탁월했다. 그렇게 김 대표는 게임산업, 더 나아가 벤처업계의 신화가 됐다.



 그의 이름 석 자가 새해 벽두부터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김 대표가 NXC 지분 전량을 매각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NXC는 넥슨 지주사다. 10조원에 육박하는 천문학적 거래규모도 그렇지만 국내 부동의 1위 게임기업 창업주가 회사 지분 전량을 매물로 내놨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다. 1세대 창업자마저 더 이상 지분 보유 가치를 느끼지 못할 만큼 게임사업의 미래가 없다는 신호로도 읽혔기 때문이다. 파장은 국민 자존심으로까지 이어지는 분위기다.

 게임 종주국이던 대한민국이 이제 해외(중국) 하청 국가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메이플스토리 게임을 해본 세대든 아니든 간에 김 대표의 진의(眞意)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는 왜 넥슨을 팔려고 하나

 지분 매각설이 불거지자 김 대표는 지난 4일 입을 열었다. “여러 방안을 고심 중이며 구체적으로 정돈되는 대로 알리겠다”는 짧은 입장문을 발표했다. ‘지분 매각’이란 단어를 쓰진 않았지만 그 사실을 애써 부인하지도 않았다.

 그는 왜 지분을 팔려고 할까.

 일각에선 정부의 지나친 규제 탓 아니냐고 추측한다. 이에 대해 김 대표 본인과 넥슨은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손사래를 쳤다. 김 대표는 일찌감치 넥슨 일본과 한국법인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주요 의사결정만 도왔다. EA나 닌텐도처럼 창업자 오너십보다는 조직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그는 지주사 대표로 국내외 신사업 투자에 전념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게임사업에 흥미를 잃었을 개연성이 크다.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사이트인 코빗과 비트스탬프, 레고 거래사이트 ‘브릭링크’, 유모차(스토케), 애완동물 사료(아그라스델릭) 등 근래 NXC가 투자한 회사 리스트를 보면 게임사업과 거리가 멀다.
김정주의 꿈 '넥슨월드'까지…'동행'의 기업가정신 바라는 이유
 2016년에 터진 ‘진경준 게이트’와 그에 따른 송사는 그가 지분 매각 결심을 굳힌 결정적 이유로 꼽힌다. 대학동창인 진경준 전 검사장에게 무상 주식과 여러 편의를 제공했다는 빌미로 2년여간 검찰과 법원을 오갔다. 지난해 5월 최종 무죄 판결을 받긴 했지만 그가 받은 심리적 충격은 상당했다고 한다. 넥슨 등기이사직에서도 물러나야 했다. 일생일대의 최대 시련기였다.

 ‘은둔의 경영인’으로 불릴 정도로 대외활동을 꺼리던 그의 스타일상 치욕적인 순간들이었을 게다. 김 대표는 무죄 판결 직후 지인들에게 “지쳤다. 쉬고 싶다”고 토로했다.

# 김정주 고심 속 우리 자회상

 따지고 보면 김정주 지분 매각 논란은 우리 사회의 불편한 자화상이다. 무죄로 결론이 나긴 했지만 국민적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던 ‘진경준 게이트’가 그렇다. 김 대표의 주장대로 ‘대가 없는’ 우정의 발로였을 수 있다. 하지만 ‘연줄’과 ‘뒷배’ 없인 벤처 성공신화가 불가능한 것이라는 선입관 속에, 또 그런 사건들을 자주 접하면서 그들의 관계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反)기업 정서와도 무관치 않다. 2년 전 공정거래위원회는 넥슨을 준대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그는 감시를 받아야 할 총수(동일인)가 됐다. 속 편하게 회사를 팔아치우자는 심정이 앞섰을지 모른다.

 이제 반기업 정서는 대기업·혁신기업을 가리지 않는다. 이웅열 전 코오롱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등 한창 일할 연차의 재계 오너들이 잇따라 은퇴를 선언하는 것을 지켜보며 신선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해지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어차피 팔 거라면 넥슨의 기업가치가 최고조에 달한 지금이 적기라는 게 김 대표의 판단일 수 있다. 넷마블과 엔씨소프트 등 경쟁사들은 실적이 줄었지만 넥슨은 지난해 10%대 실적 성장을 거듭하며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앞으로가 문제다. 지난해부터 국내뿐 아니라 넥슨의 최대 매출처인 중국 시장에서도 규제 리스크가 만만치 않다.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그의 고심에는 살얼음판에 놓인 게임산업의 현실도 담겨있는 셈이다.




'벤처신화' 김대표, NXC 지분 전량 매각 소식 '충격'
게임 종주국서 中 하청국가 전락 우려 쏟아져
"넥슨을 더욱 경쟁력 있게 만다는 방안 고민"의 답
완전한 결별 아닌 '게임산업 생태계 버팀목'이기를


# 그럼에도 기업가 정신이 아쉬운 이유는

 시장경제에서 개인재산 처분 문제를 두고 왈가불가하는 게 바람직한 일일까. 어쩌면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뒤 엑시트하는 건 창업가의 궁극적인 목표다. 지분 매각은 회사경영권을 자식들에게 넘겨주지 않겠다는 경영 불승계 원칙을 실천하는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지난해 5월 자녀들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그의 행동이 아쉬운 건 국내 게임업계 나아가 벤처업계에 결코 가볍지 않은 그의 존재감 때문이다.

 국내 게임사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단기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혁신을 위한 실패’ 가치를 아는 1세대 창업가들이 뒤를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사회공헌사업에 누구보다 앞장선 경영자였기에 더하다. 장애 어린이 전용 재활병원(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건립사업과 작은책방 사업에 애착이 많았다. 그는 어린이재활병원 추가건립과 벤처 창업지원을 위해 1000억원 이상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도 공언한 바 있다.

 ‘진경준 게이트’로 빛이 다소 바래긴 했으나 여전히 ‘기업가 정신의 표상’으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 때문에 그의 지분 정리 소식은 어떤 형태가 됐든 우려스럽다.

 텐센트, 알리바바 등 중국기업 혹은 해외 사모펀드가 넥슨의 새 주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한국 최고의 간판 게임기업이 해외 자본에 넘어가는 일은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사기뿐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뿐이다. 6000명 넘는 넥슨 종사자의 생계권은 물론 넥슨 우산 아래 있던 개발사 생태계도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다.
경기도 성남 판교에 위치한 넥슨코리아 본사. /사진제공=머니투데이DB.경기도 성남 판교에 위치한 넥슨코리아 본사. /사진제공=머니투데이DB.
 김정주 대표에게 부탁한다. 기업가 정신을 잃지 말아 달라. 지분 매각대금 일부를 사회 환원한다고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 할 순 없다.

 자신이 가꿔온 기업과 산업 생태계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는 게 진정한 기업가 정신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법적 수난에도 자신의 지분을 함부로 처분하지 않는 건 경영욕 때문은 아니다. 그것이 자신을 믿는 기업과 사회에 대한 책임일 수 있다.

 김 대표는 입장문에서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롭고 도전적인 일에 뛰어들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넥슨을 세계에서 더욱 경쟁력 있는 회사로 만드는 방안을 숙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어떤 경우라도 우리 사회로부터 받은 많은 혜택에 보답하는 길을 찾겠다고도 했다.

 중국과 단기이익만 좇는 해외 펀드에 무턱대고 지분을 넘기지 않고, 일부 매각하더라도 국내 신사업 재투자로 우리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이고 싶다.

 김 대표는 평소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자랑스럽게 돈 쓰러 가는 곳”이라며 디즈니월드를 동경했다. 게임 산업을 비판하던 이용자들도, 기업 오너를 욕하던 노동자들도 하나같이 그의 지분 매각을 우려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게임산업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것만으로 이번 논란이 남긴 의미는 충분하다.

 게임 유저나 학부모나 모두 자랑스러워 할 대한민국의 기업, 그런 ‘넥슨월드’가 완성될 때까지 지켜주는 것. 김 대표가 끝까지 책임져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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