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인격과 뇌

머니투데이 이신주 작가 2019.01.21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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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대상 '단일성 정체감 장애와 그들을 이해하는 방법' <4회>

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인기자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인기자


실제로 일반인들이 잠을 사회적 의례에 가깝게 여기는 것과는 달리 단일성 정체감 장애 환자들에게 있어 수면의 필요성이란 식사나 배설과도 같은 필수적 욕구에까지 이르지요. 그들은 하루만 잠을 자지 않더라도 지적능력이 현저히 저하되며, 이틀에 이르면 운동능력을 대부분 상실하고, 사흘이 지나면 중추신경계가 파괴되기 시작합니다. 이렇듯 빠르게 소모되는 이들의 정신은 차츰 외적 자극에 둔감해져, 끝내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알코올을 위시한 신경작용 약물에까지 손을 대게 끔 만들곤 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경향과 관련하여 흔히 하는,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오해 중 하나가 단일성 정체감 장애 환자의 생활을 마음가짐을 고쳐먹는 것만으로 쉽게 ‘교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따금 입방아에 오르는 몇몇 사설 캠프나 소위 말하는 ‘치유’ 프로그램의 경우가 이러한 오해에 기반하지요.



최근 정신의학계는 단일성 정체감 장애 환자의 잠에 대한 의존이 그들 신체의 생리·화학 체계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으며, 섣불리 무언가를 목적하기보다 그 정확한 기전을 파악하는 데서부터 신중히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공표한 바 있습니다.

또한 단일성 정체감 장애 환자가 극단적인 상황과 맞닥뜨렸을 경우 개별인격의 발현을 기대할 수 없다는 데에 이르면, 수면이 그들에게 있어 단순한 휴식 이상의 의미를 가진 것이 더욱 명백해집니다. 우리의 의식은 때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에 노출된 뒤 개별인격의 발현을 시도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를 이용하여 기존의 인격과 방법론으로는 타파할 수 없는 시련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지요.



물론, 단일성 정체감 장애 환자들에게는 이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그들의 긴 수면은 감당키 어려운 사건과 마주한 정신을 이완시키기 위해, 혹은 변화를 반추할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그들에게 주어집니다.

단일성 정체감 장애 환자가 적정 수면시간을 정확히 지키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즉 피로를 해독하는 것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정신이 마모된다는 이야기로 귀결됩니다. 그 부작용은 곧 육체적인 면을 통하여 외부로 표출됩니다. 항상성, 신경절의 반응속도, 면역 체계 등 다양한 요소들이 이에 영향받게 되는데, 단적으로 표현하면 단일성 정체감 장애 환자들은 육체를 통제하는 능력을 빠르게 잃게 됩니다. 이로 인해 이들의 평균 수명은 오늘날에조차 70년을 채 넘지 못하며, 100년을 넘기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현실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이들의 중추신경계가 맞이할 가장 비극적인 결말, 치매와 알츠하이머 등으로 대표되는 신경계통 퇴행성 질환입니다. 책을 내려놓고 검색 엔진을 켜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이 이름들은 병리학 역사에 관심이 있거나 관련 학위를 위해 공부 중인 사람이 아니라면 낯설 수밖에 없으니까요.


퇴행성이란 특정 기관이나 조직이 원래의 기능을 점차 잃게 되는 성질을 뜻합니다. 신경계통의 퇴행성 질환이란 다시 말해 두뇌와 척수를 포함한 중추신경계가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질환을 뜻합니다. 더욱 쉽게 해설하자면 후천적 학습으로 획득한 기억을 차츰 잃는 병이라고 할 수 있지요.

현재 이러한 질병은 원활한 인격 발현을 돕는 체계가 잘 갖춰진 국가에서는 거의 볼 수 없습니다. 물론 소득수준이 낮고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국가의 경우 아직까지도 이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종종 발견되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품은 무거운 숙제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단일성 정체감 장애 환자들에게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들은 거주환경과 사회경제적 계급과 무관하게 신경계통 퇴행성 질환이라는 시한폭탄을 끌어안은 채 고통받으며, 그 유병률 또한 일반인 그룹과 비교하여 뚜렷하게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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