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임종철 디자인기자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났습니다. 의식의 영역을 탐사하는 것은 우리에게 그다지 낯설지 않은 일이 되었으며, 정신의학계는 단일성 정체감 장애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굳이 복잡한 생각을 할 필요 없이, ‘단일인격자’라는 표현이 일종의 멸칭으로 통용되어 이 글에서도 꼬박꼬박 ‘단일성 정체감 장애 환자’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 하나의 사례가 되겠지요.
언론은 확인할 수 없거나 되지 못한 사항을 부풀려 그들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같은 이들로 묘사하는 데 여념이 없지요. 또한 대중은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단일성 정체감 장애 환자를 따돌리고 감추는 경직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합니다.
단일성 정체감 장애 환자들은 근본적인 면에서 우리와 같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약간 다른 방향으로 세상을 바라볼 뿐입니다. 단일성 정체감 장애를 말하며 미디어에서의 묘사를 떠올려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그저 극적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에 불과합니다. 또한 우리는 나와 같지 않은 사람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임을 받아들이고 이를 인정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대다수 사회구성원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집단을 박해하는 것은, 우리의 선조들이 종종 저질렀던 끔찍한 실수를 답습하는 것이겠지요.
이 책은 단일성 정체감 장애의 일반적인 특성과 흔히 알려진 오해, 한발 더 나아가 그들과 원활한 관계를 맺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전반적인 사항을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모든 내용은 권위기관에 의해 충분히 검수 되었음을 알리며, 수익금의 절반은 단일성 정체감 장애 환자들의 권익 보장을 위하여 기부됩니다. 단일성 정체감 장애 지원 단체의 대표로서 그들을 대변하는 책을 한 권 더 제 서재에 들여놓을 수 있다는 것이 매우 기쁩니다. 부디 이 책이 인격의 개수와 관계없이 모두의 행복을 보장하는 걸음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 빌리 밀리건, 하얀 의자 재단 운영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