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안전과 맞바꾼 돈"…어느 '노동자'의 목숨값

머니투데이 이영민 기자, 최민지 기자, 이동우 기자, 김영상 기자 2018.12.2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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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없다, 안전이 위험하다](종합)

편집자주 이달 11일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석탄이송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가 숨졌다. 컨베이어벨트를 멈춰줄 한 사람만 있었어도 그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 김씨의 사례처럼 사람이 없어진 자리에 도사린 위험의 불씨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다. 무인화, 경영효율화의 그늘에 가려 위태해진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조망한다.

이달 19일 오후 7시쯤 찾은 서울 행당역 안내부스는 텅 비어 있었다. 부스 안에서 혼자 일하던 역무원이 승객 민원 처리를 위해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다. /사진=이영민 기자  이달 19일 오후 7시쯤 찾은 서울 행당역 안내부스는 텅 비어 있었다. 부스 안에서 혼자 일하던 역무원이 승객 민원 처리를 위해 자리를 비웠기 때문이다. /사진=이영민 기자


"사고 나도 못간다"…텅빈 자리, 버려진 안전
[사람이 없다, 안전이 위험하다 ①] 5개층 역사에 1명 근무…비상상황시 공백 우려



지난 19일 저녁 7시쯤 찾은 서울 행당역 안내부스는 텅 비어 있었다. 부스 안에서 일하던 역무원 A씨(40)가 승객 민원 처리를 위해 자리를 비웠다.

A씨는 전체 5층으로 이뤄진 넓은 역사를 혼자 책임지느라 자리에 앉을 틈이 없었다. 신고 민원이 들어오면 곧바로 출동해야 했다. 그렇다고 부스를 오래 비울 수도 없어 항상 역사 내를 뛰어다니다시피 했다.



이날 A씨는 저녁 식사도 못했다. 2인 1조로 일하는 5~8호선 야간 근무자들은 식사를 교대로 하기 때문에 다른 근무자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A씨는 "1명이 식사를 하러 가면 근무자가 1명밖에 남지 않으니 서둘러 먹고 온다"며 "밥 먹다가 급히 돌아와야 할 때도 종종 있다"고 했다.

근무자가 2명이면 그나마 낫다. 1명이 갑작스레 몸이 안 좋거나 일이 생기면 넓은 역사를 역무원 혼자 지켜야 하는 상황도 종종 생긴다. 황우진 서울교통공사노조 역무본부 광화문지회장은 "인근 역에서 지원 나오기도 하지만 한달에 3~4번은 1인 근무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지하철역에 대부분 업무가 자동화돼 사람이 거의 필요 없어졌다지만 어디까지나 아무 일 없을 때 얘기다. 역무원들은 혼자 근무할 때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열차 탈선·추돌·화재·응급환자 발생 등 행여라도 비상상황이 터지면 제때 대응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공사에서 만든 '비상대응 현장조치 매뉴얼'이 있지만 역무원 1명만 있는 상황에서 매뉴얼에 따른 대응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황 지회장은 "현장에서는 1인 근무 상황이 벌어지는데 매뉴얼은 2인 이상 근무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며 "현 근무 형태로는 대형사고가 발생할 경우 승객의 안전을 지키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하철 기관사들도 1인 승무나 무인운전이 승객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박찬용 승무본부 사무국장은 "1인 승무 열차는 열차 내부에서 승객이 쓰러지거나 승객끼리 다투는 등 사고가 나도 즉각 조치가 불가능하다"며 "도착역 역무원이나 지하철 보안관에 연락을 하지만 그 사이에 다른 승객들이 피해를 입는 등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전인력 부족은 지하철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3월 발표한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수요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기술발전·자동화 등으로 약 18.5%의 일자리가 사라질 전망이다.

여기엔 △운전·운송 관련직 △청소·경비 관련 단순노무직 △기계제조·관련 기계조작직 등 고위험군 직업도 포함돼 있다. 이달 11일 컨베이어벨트 정비 도중 사고로 숨진 고(故) 김용균씨의 업무도 기계조작직에 속했다.

인건비 감축을 위한 무인화로 가장 먼저 직장에서 내몰리는 이들이 경비원이다. 대학과 아파트 등이 무인경비시스템을 속속 도입하면서 경비 인력이 줄어들고 있다.

노조 측은 일부 대학이 야간 경비를 CCTV(폐쇄회로화면)를 활용한 무인방범체제로 바꾼 것을 두고 "무인화를 앞세운 학교의 인력 감축"이라고 비판했다. 이경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연세대분회장은 "CCTV가 아무리 최첨단이어도 기계일 뿐 상황 판단·처리 능력은 없다"며 "도둑을 잡고 침수에 대비하고 화재를 진압하는 일은 사람의 몫"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경비원도 마찬가지다. 서울노동권익센터 정책연구팀은 올해 8월 발표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서울시 아파트 경비원 고용변화' 보고서에서 "아파트 경비 노동자의 임금 인상 억제·고용 인원 유지를 위해 휴게시간을 늘려왔던 관행은 한계에 다다랐다"며 "장기적으로 아파트에 무인경비 시스템을 도입하는 현상이 확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장에선 안전인력 감축이 결국 시민의 안전과 직결된다고 지적한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조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CCTV와 외부 경비업체에 의지하는 통합경비시스템은 현장에 상주하는 경비보다 대응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며 "현장 경비인력 감축은 결국 아파트 주민이나 대학생들의 안전을 위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영민 기자

돈-목숨 교환 언제까지…죽음도 '외주'하는 사회
[사람이 없다, 안전이 위험하다 ②] 국회에서 발목 잡힌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그래픽=임종철 디자인 기자/그래픽=임종철 디자인 기자
서울 창동 지하철 4호선 차고지에서 27년째 전동차량 점검을 맡고 있는 김모씨(54·서울교통공사 소속)는 올 한 해만 동료 3명이 감전으로 다쳤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중 1명은 3도 화상을 입고 현재까지도 치료 중이다.

김씨는 동료들의 부상이 잦은 이유로 인력 부족을 꼽았다. 김씨는 "DC(직류) 1500볼트의 강력한 전압이 흐르는 전차로에서 다치지 않으려면 1명은 차량을 정비하고 다른 1명은 안전을 점검하는 2인1조 시스템이 돼야 하는데 현재는 그러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김씨에 따르면 전체 90여명의 정비원들이 기존에는 3조 3교대로 일하다가 약 5년 전부터 비용절감 등을 위해 4조 2교대로 쪼개졌다. 1조당 20명 정도의 인원이 배정되는데 이처럼 근무조는 늘어나지만 인력 충원은 없다 보니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산업재해가 하청 비정규직에게 몰리는 경향도 뚜렷하다. 이른바 '위험과 죽음의 외주화'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 6월까지 한 사건에서 3명 이상 숨진 산업재해는 모두 28건, 숨진 노동자는 모두 109명이었다. 이 가운데 85%(93명)가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이처럼 위험한 업무를 하청업체에 넘기는 것은 책임과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의원이 공개한 산업재해 사건 중 원청 사업주가 처벌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전문가들은 안전에 대한 원청의 책임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 "영국에는 일명 '기업살인법'이라고 해서 안전사고가 나면 하청업체뿐만 아니라 정책을 짠 원청 기업도 처벌받도록 하는 법이 있다"며 "원청 기업 정책 담당자들도 안전 사고에 책임을 지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안전사고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지난 2월 입법예고됐다. 개정안에 따르면 작업 현장에서 안전조치 미이행으로 사망자가 발생하면 원청업체 사업주도 하도급업체 사업주와 마찬가지로 1년 이상∼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현행 법에 없었던 하한선을 둔 게 개정안의 요지다.

재계는 개정안에 즉각 반발했다. 개정안은 올 10월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로 넘어왔지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24일에 이어 26일 오전 고용노동소위원회를 열어 산업 현장의 안전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개정안 내용을 논의했으나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최민지 기자

삽화=임종철 디자이너삽화=임종철 디자이너
"우리 자르려는 거지"…무인화·자동화의 전쟁
[사람이 없다, 안전이 위험하다 ③] 지하철, 부산항 등 곳곳 갈등

무인화·자동화를 놓고 곳곳에서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사측은 무인화·자동화를 경영 효율화의 기회로 본다. 반면 노동자들은 안전과 고용을 위협하는 '괴물'로 인식한다. 노사가 상생할 수 있는 해법 마련이 시급하다.

24일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시장 일자리의 43%는 자동화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전체 취업자 약 2660만명 중에 1136만명이 향후 무인화될 가능성이 높은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는 셈이다.

고위험군 일자리의 72%에 해당하는 818만명은 '사무 종사자', '판매 종사자', '장치·기계 조작 및 조립 종사자' 등에 해당한다. 최근까지도 무인시스템 도입으로 노사 갈등을 빚고 있는 서울 지하철도 대부분 자동화 고위험군인 장치·기계 조작 분야다.

갈등은 지난 6월 서울교통공사가 지하철 8호선에서 DTO(전자동운전·Driverless train operation) 시험운행을 하며 촉발됐다. DTO는 운전업무는 자동이지만 비상 상황에 대비해 승객 안전을 담당하는 기관사가 탑승하는 시스템이다.

[MT리포트] "안전과 맞바꾼 돈"…어느 '노동자'의 목숨값
공사 노조 측은 무인시스템 도입 목적이 '인력 감축'에 있다고 보고 즉각 반발했다. 노조는 "공사가 추진하는 DTO는 '무인역사'와 '무인운전'으로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노조위원장의 단식이 한 달 넘게 이어질 정도로 대립하던 노사는 9월21일 노사특별합의서를 채택하고 무인시스템 사업 추진 과정에서 시민단체·학계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를 거치기로 했다.

공사 측은 노조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DTO 도입 여부를 검토 중이다. 해외 사업 진출 등 미래 먹거리를 위해서다.

공사 관계자는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해외 지하철 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데이터를 축적하기 위해 8호선 시범운행을 했던 것"이라며 "1~8호선 노선에 DTO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열차 운행은 무인화가 빠르게 이뤄지는 분야다. 실제 인천 2호선, 신분당선, 우이신설선 등 최근 만들어진 노선은 설계 단계부터 무인운전이 도입돼 운행 중이다.
[MT리포트] "안전과 맞바꾼 돈"…어느 '노동자'의 목숨값
스마트항만 도입을 준비 중인 부산항도 비슷한 진통을 겪고 있다. 올해 3월 정부는 2024년까지 8개 선석(항내 선박을 계선시키는 시설을 갖춘 접안장소)이 들어가는 새 부두에 무인항만시스템을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컨테이너를 차량에 싣는 '야드 영역'에만 적용된 자동화를 전체로 확대하는 것이다. 생산성이 30% 이상 높아지고, 연간 운영비도 15% 절감된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일자리다. 부산항운노동조합은 무인시스템이 항구에서 일하는 1700여명의 노동자를 위태롭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갈등이 커지며 해양수산부와 부산항만공사, 노조 등은 노사정 협의체를 구성해 무인시스템 도입의 타당성과 일자리 대책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10월 연세대에서 불거진 노사 갈등도 무인화 움직임에서 비롯됐다. 야간 경비를 CCTV(폐쇄회로화면)와 중앙관제센터 중심의 '무인 방범체제'로 바꾼다는 학교 측의 발표로 경비·미화 노동자 150여명은 "대학 구성원의 안전을 위협한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전문가들은 무인화로 발생하는 갈등 해결을 위해선 노사의 상생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술의 발달로 무인화가 일어나는 것을 과거 러다이트 운동처럼 기계를 없앤다고 해서 막을 수는 없다"며 "중요한 것은 일자리 방어 차원에서 대응하기보다는 기존 인력이 새로운 일자리로 이전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의 무인화 경향은 무조건 사람을 없애고 자동화만 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무인화로 발생하는 여유 인력의 스마트한 업무 방식을 고민해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우 기자
'무인화'가 안전을 위협한다고?

[사람이 없다, 안전이 위험하다 ④] '4차 산업혁명' 무인화에서 안전의 새 활로 찾아야
[MT리포트] "안전과 맞바꾼 돈"…어느 '노동자'의 목숨값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효율을 내세운 무인화가 안전을 위협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일각에선 4차 산업혁명 등 기술 혁신에 따른 무인화가 안전 강화를 위한 새로운 활로를 열어줄 것이란 주장도 제기된다.

사회공공연구원에 따르면 JR(일본여객철도) 동일본의 역무원들은 인력이 부족해 한달에 5~7회 숙직을 하고 출퇴근 시간에도 혼자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2014년 JR 동일본 수도권 가와사키역에서 외주 작업 차량이 완전히 빠져나가기 전 열차가 진입하면서 탈선 사고도 발생했다.

김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JR에서 본사 인력 규모를 줄이는 동시에 비정규직을 늘리는 방식으로 위험을 외주화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벌어진 사고의 피해는 대부분 하청 노동자의 몫이었다. 민영화 후 JR이 출범한 1987년부터 2013년까지 사망을 포함한 중대 재해를 당한 노동자 342명 중 약 80%(275명)가 하청 노동자였다.

김 연구위원은 "철도망이 촘촘하고 길어 외진 역이 많은 일본에서 무인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사고 대응·노동 시간·사회적 약자 배려 등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철도 등 공공 분야에서 값싸게 사람을 쓰기 위해 무인화를 강행하지 않도록 잘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술 발전에 따른 무인화는 피할 수 없는 대세라는 지적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는 앞으로 5~10년 내 무인화로 일자리 약 1050만개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경제포럼(WEF)도 앞으로 5년간 전세계 고용의 65%를 차지하는 상위 15개국에서 일자리 710만개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다고 무인화가 모두 안전 공백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인화가 위험한 작업에서 사람을 해방시켜줄 수도 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스위스 벤처기업인 플라이어빌러티(Flyability)는 좁거나 장애물이 있는 공간의 안전 점검에 활용할 수 있는 드론을 개발했다. 이 드론은 장애물에 부딪혀도 추락하지 않아 광산·발전소·항공기 등을 쉽게 점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국내에서도 안전관리 분야에 새로운 기술들이 도입되고 있다. 특히 소방 분야에서는 화재를 스스로 탐지한 후 로봇이나 드론이 직접 불을 끄는 등 무인 소방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화재 안전관리 기술과 관련된 국제 특허출원 공개 건수는 2013년 41건에서 지난해 87건으로 늘었다.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산업혁명 이후 경제 발전은 사람의 힘이 덜 들어가는 과정으로 발달했고 자동화·무인화 추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며 "무인화 자체가 위험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인화 과정에서 안전 문제를 놓치지 않도록 다른 방법을 모색하면 된다"고 말했다.

김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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