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MT리포트] 노년층의 한탄 "밥도 못시켜 먹는 세상이 왔구먼"

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이재은 기자 2018.12.24 06:30

[디지털 오지(奧地)](종합)

편집자주 | 무인결제시스템, 종업원 없는 매장, 스마트폰 앱 등. 디지털혁신이 가속화되면서 자동화·무인화 시스템에 익숙치 않은 노년층들의 소외감이 커지고 있다. 디지털 격차는 '소비의 세대차'로 이어져 사회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상생활에서조차 제약을 받고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사회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돌아봤다.




무인주문기 앞에서 까막눈이 됐다






[디지털 오지(奧地)-①]무인화 확대로 '디지털 소외' 현상 심화…"도우미 등 과도기적 인력 필요"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의 한 패스트푸드 전문점. 60대 고객이 '셀프 오더 타임'에 무인 주문기로 주문을 넣다 주변인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사진=박가영 기자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의 한 패스트푸드 전문점. 60대 고객이 '셀프 오더 타임'에 무인 주문기로 주문을 넣다 주변인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사진=박가영 기자
디지털 시대의 그림자가 짙다. 디지털 변혁이 가속하며 정보 기술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많아졌다. 정보통신의 발달이 오히려 또 다른 장벽을 만드는 상황. 초고령 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지금 '디지털 소외'를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지털 소외 현상은 노년층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23일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발표한 '2017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55세 이상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일반 국민 평균수준 100%)은 58.3%에 불과했다. 특히 70대 이상은 25.1%로 현저히 낮은 수준을 보였다.

디지털 격차는 자연스레 소비의 세대 차로 이어진다. 무인화(無人化) 흐름이 빨라지며 키오스크(무인주문기) 등 기계 조작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이 늘고 있는 것. 키오스크와 같은 무인정보 단말기는 매장 직원의 손을 거치지 않고 주문과 결제가 이뤄지는 전자 주문 시스템이다. 키오스크는 비대면 거래를 선호하는 젊은층에겐 환영을 받지만 노년층의 소비를 주저하게 만든다.

외식업계는 무인화 흐름이 거센 곳 중 하나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2019 외식소비 트렌드' 키워드로 '비대면 서비스화'를 선정했다. 농림부는 무인화·자동화의 확산에 따른 키오스크, 전자결제 등의 발달로 외식 서비스의 변화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패스트푸드 전문점 키오스크를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다. 롯데리아의 경우 전체 매장의 반이 넘는 825곳에서 무인계산대 1200여대를 운영 중이다. 맥도날드 역시 전국 440여개 매장 절반가량에 무인주문 시스템을 도입했다. KFC와 버거킹도 올해 안에 키오스크를 전 직영점에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에 노년층은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일상과 가까운 만큼 소외도 크게 느낀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박모씨(63)는 키오스크 앞에 한참을 서 있다 다른 손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박씨는 "주문받는 직원이 없는 시간이라고 이 기계로 주문을 넣으라고 했다. 혼자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된다. 못 배운 사람은 밥도 못 시켜 먹는 세상이 된 것 같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식당뿐만 아니라 영화관, 마트, 기차역 등 업계 곳곳에서 키오스크가 자리 잡으며 디지털 소외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직장인 고모씨(59)는 "키오스크와 스마트폰 이용법을 잘 몰라서 영화관에 가서 직접 표를 끊는 편이다"면서 "그런데 요즘 기계는 늘고 표를 끊어주는 직원은 줄어서 대기 시간이 너무 길다. 기계 이용법을 물어보고 싶어도 직원들이 다 바빠 보여서 설명해달라고 할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영화관 아르바이트생 임모씨(25)는 "무인 발권기로 인한 불편함이 크다. 이에 대한 항의(혹은 욕)를 듣는 건 기계가 아닌 아르바이트생들의 몫"이라며 "기계에 익숙하지 않아 점차 발길을 끊는 소비자가 많아질 것 같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무인화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지만 디지털 소외 계층을 위한 배려와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년층의 디지털 소외 현상은 사회 문제"라며 "무인화 시대로의 전환기에서 이들의 적응을 돕기 위한 접근법을 마련해야 한다. 각 매장별로 지역, 고객 등의 특성을 고려해 키오스크 주문을 돕는 인력을 배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고 설명했다.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키오스크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정보 취약계층이 편의성을 이유로 차별을 겪어서는 안 된다"며 "정부 차원의 무인 단말 설치 현황, 접근성 보장 여부 등에 관한 전반적인 조사를 실시하고 자세히 분석해 정책에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가영 기자





"은행 앱, 남 얘기"… 오프라인에 갇힌 이들






[디지털 오지-②] 은행, 앱 통한 비대면화 주력하면서 노인 소외 현상 심화… "노인 배려 서비스 제공해야"

/사진=뉴시스/사진=뉴시스
#60대 A씨는 얼마 전 은행에 가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경험을 했다. 점심 시간이긴 했지만 뭔가 이상했다. 번호표를 더 일찍 받은 건 A씨인데, A씨 보다 늦게 도착한 젊은이들이 먼저 은행 업무를 봤다. A씨는 은행 측에 항의를 했으나, "어플리케이션(앱)에서 대기표를 받으면 된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사회가 디지털화하면서 젊은이들이 쉽고, 빠르고, 간편하게 은행 금융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됐다. 그와 동시에 노인 세대는 점점 금융 서비스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스마트폰 모바일뱅킹은 노년층에겐 아득한 이야기일 뿐이다.

2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711만 5000명으로 전체 인구 중 고령 인구 비율이 14.2%인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2026년에는 고령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고령 사회 한국에서 노인의 일상은 갈수록 어려워만 지고 있다. 점차 사회가 디지털화하고 있지만 노인들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 부문에서 노인들의 소외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영업점 방문 빈도가 줄고 인터넷과 모바일을 활용한 뱅킹이 일반화됐지만 노년층에게 이 같은 일처리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연령별 인터넷 이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0대의 인터넷 뱅킹 이용률은 10명 중 2명(19.9%) 수준이었다. 70대 이상은 6.4%에 그쳤다. 30대(91.4%)와 40대(79.7%)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의 설문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75세 이상 고령자의 97.8%가 "온라인뱅킹을 할 줄 모른다"고 답변했다.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금융거래 방식은 '영업점 방문'과 '현금자동입출금기'(ATM)였으며, 이들은 "인터넷뱅킹을 이용할 때 긴장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디지털화에 사활을 건 은행은 앱에서 예적금, 대출, 송금, 환전 등 금융 편의성을 높이려 노력 중이다. 패턴, 지문 등 공인인증서 이외의 간편한 본인인증 방식에 은행 방문 없이 통장 개설이나 대출도 가능해졌다. 이제 다른 계좌로 송금하기 위해 은행 영업점이나 ATM을 찾는 경우가 예전만큼 많지 않다.

/사진=이미지투데이/사진=이미지투데이
노인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은행 지점이나 ATM은 꾸준히 감소세다. 2012년 말 7698곳이던 국내 은행 지점·출장소는 지난 6월 6779곳으로 줄었다. 올해 1분기 금융거래에서 은행 창구를 이용하는 비율(9.5%)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은행들은 점포를 통폐합하거나 아예 무인점포를 만들고 있다. ATM도 그 수가 가파르게 줄고 있다. 올해 4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3·4분기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지난 9월 말 기준 ATM는 2만6827대로 2년 전보다 3302대 감소했다.

뿐만 아니다. 은행 앱이 처리하는 기능이 다변화되면서 이제 노인들은 비대면 서비스 뿐만 아니라 대면 서비스에서도 후순위로 밀려났다. 대표적인 게 국민은행의 은행 지점 대기표 발권이다.

국민은행 간편 입출금 앱 '리브'는 고객에게 앱을 통한 은행 번호표 발행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용자는 앱을 실행해 가까운 지점 혹은 즐겨찾는 지점 등을 지정해 대기고객 수를 확인하고 온라인 번호표를 발급 받을 수 있다. 직장 등의 업무로 시간을 낼 겨를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환대받는 서비스지만, 노인들은 대면 서비스에서도 후순위로 밀려난 셈이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한 어르신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한 어르신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노인들이 금융 서비스에서 소외되는 현상이 심화되자, 정부는 뒤늦게 손을 걷어붙였다. 지난 8월22일 개정된 내용이 시행된 행정안전부 국가정보화 기본법 32조1항에는 웹접근성 의무화가 명시됐다. '국가기관 등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나 서비스를 제공할 때 장애인·고령자 등이 쉽게 웹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조항으로, 개정법은 웹사이트 이외에도 이동통신단말장치에 설치되는 응용 소프트웨어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된 게 특징이다.

시중 은행들도 대안 마련에 나섰다. 16개 국내은행이 약 5000여개 지점에서 '어르신 전용상담(거래)창구'를 운영 중이다. 이중 농협, 한국씨티, 대구, 광주, 전북은행 등 5개 은행은 총 226개 전담(특성화)지점을 지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고령자 전용 서비스 우수은행으로 선정된 KEB하나은행은 전국 800여개 점포에서 '행복동행금융창구'를 운영 중이다. 소비자보호본부 내 전담 부서를 설치해 고령고객에 대한 정책을 마련하고, 영업점에는 전담 인력을 배치해 어르신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은행들이 노인 친화적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야한다며, 은행 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은행권은 노년층을 위해 이동점포를 활성화 하고, 선별적으로 점포를 축소하며, 인터넷·모바일 뱅킹을 교육하고, 노인 전문 창구 운영을 확대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사회적 배려 측면에서 필요하기도 하지만, 성장이 정체된 금융권의 돌파구이기도 하다"면서 "최근 금융사간 경쟁이 치열하고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데 은퇴 후 자금을 가지고 있는 60대, 70대들을 공략하는 것이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해외에선 이미 은행들이 노년층을 대상으로 인터넷·모바일 뱅킹 교육에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 POSB은행은 POSB 액티브 네이버스(Active Neighbors) 프로그램을 운영해 '중장년층 고용'과 '노인들의 은행 앱 사용 교육'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했다. POSB은행은 각 은행 지점에 중장년층을 '디지털 대사'로 임명, 노인들에게 모바일 뱅킹 사용법을 교육하고, 이 '디지털 대사'들이 다른 노인들에게 사용법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POSB 관계자는 "이러한 전략을 통해 노년층과 중년층 70명을 고용했다"면서 "노인들이 눈높이에 맞게 모바일 뱅킹 서비스를 배움으로써 거부감이 줄고, 자신감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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