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장편소설 '문신'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윤흥길 작가가 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문학동네
"20년 (집필) 이야기가 나오는데 중간중간 다른 작품들도 쓰고 책도 내고, 정작 집필에 매달린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왜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렸냐면…작가의 역량 문제입니다. 이 소설을 쓰면서 작가로서 천부적인 재능을 못 타고났다고 느꼈습니다."
1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문신' 출간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윤 작가가 20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문신'은 황국신민화 정책과 강제징용이 한창이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한 가족의 엇갈린 신념과 욕망, 갈등을 통해 우리 민족, 한국인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민족 정체성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시기가 일제 말기라고 생각해 시대 배경을 정했다.
1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장편소설 '문신'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윤흥길 작가가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문학동네
가볍고 얇고 짧고 작은 '경박단소'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현재 문학계의 경향을 볼 때 대작가의 장편소설은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소설을 쓰기까지 소설가 고 박경리 선생의 조언이 윤 작가에게 큰 힘이 됐다.
"선생님께서 3가지 당부를 하셨어요. 첫째, 땅을 밟고 살아야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 둘째, 큰 작품을 써라. 대하소설을 쓰는 선생님께서 큰 작품을 쓰라고 했을 때 부담스러웠는데, 큰 작품이 분량을 얘기하신 게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인간과 사회에서 중요한 소재를 붙잡으면서 그것을 철저히, 치열하게 다루는 작품을 의미하신 거죠. 마지막으로, 90년대부터 대학교수를 했는데 빨리 그만두고 작품에 전념하라고 하셨어요. 돌아가신 뒤에야 모두 이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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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작가의 리듬감 넘치는 문장력은 사전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국어사전과 시간을 보내는 취미가 있었다"며 "이 작품에 그동안 쌓아온 문학적 역량을 다 쏟아붓겠다는 심정으로 문장에 많이 힘을 들였다"고 말했다. 이어 "재미있고 없음에 상관없이 문장의 가독성, 현대 독자들의 기호에 맞는지 안 맞는지 상관없이 제 고집대로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 문화 현상이 서양 문물 쪽으로 기울어진 데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윤 작가는 "TV 화면의 자막을 보면 말을 너무 많이 만들어내고 어원을 알 수 없는 단어가 많다"며 "문학을 하는 나라도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특징을 강조하고 지켜나가려고 노력하고 싶다고 생각해 의도적으로 현대의 취향에 맞지 않는 문장을 많이 시도했다"고 말했다. 우리 것을 완전히 되찾을 순 없지만 잊어버리지는 말자는 것이 윤 작가가 이번 소설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과거에 내가 천재라고 우러러본 문단 선배 중에 일찍 절필하고 활동하지 않는 분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점에 오히려 감사합니다. 타고난 천재성보다 소설에서 더 중요한 것은 노력입니다. 노력으로 모자란 부분을 벌충하고 상쇄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줬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