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50년 윤흥길, 20년 걸린 소설 '문신' "작가재능 못 타고났다고 느껴"

머니투데이 황희정 기자 2018.12.11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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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20년 만에 장편소설 선보여, 올해 1~3권 출간 후 2019년 상반기 4~5권 발간 예정

1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장편소설 '문신'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윤흥길 작가가 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문학동네1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장편소설 '문신'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윤흥길 작가가 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문학동네


집필을 시작하고 20년이 흐른 뒤에야 책이 세상에 나왔다. 오랜 기간 한 자 한 자 공들여 쓴 노작가는 멋쩍은 듯 이렇게 말했다.

"20년 (집필) 이야기가 나오는데 중간중간 다른 작품들도 쓰고 책도 내고, 정작 집필에 매달린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왜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렸냐면…작가의 역량 문제입니다. 이 소설을 쓰면서 작가로서 천부적인 재능을 못 타고났다고 느꼈습니다."



교과서에도 실려 대중에게 익숙한 '장마'부터 '완장' '황혼의 집'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으로 현대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윤흥길 작가는 이번에 장편소설 '문신'을 펴낸 소감을 겸손하게 밝혔다.

1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문신' 출간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윤 작가가 20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문신'은 황국신민화 정책과 강제징용이 한창이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한 가족의 엇갈린 신념과 욕망, 갈등을 통해 우리 민족, 한국인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민족 정체성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시기가 일제 말기라고 생각해 시대 배경을 정했다.



1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장편소설 '문신'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윤흥길 작가가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문학동네1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장편소설 '문신'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윤흥길 작가가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문학동네
그는 "글로벌 시대에 이 작품은 시대를 역주행하는 소설 같다"며 "낡은 주제, 지난 시절을 다룬 이유는 우리가 거쳐온 과거를 한 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집필 계기를 설명했다. 총 5권에 달하는 '문신'은 이번에 1권부터 3권까지 출간됐으며 2019년 상반기 4~5권이 출간될 예정이다.

가볍고 얇고 짧고 작은 '경박단소'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현재 문학계의 경향을 볼 때 대작가의 장편소설은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소설을 쓰기까지 소설가 고 박경리 선생의 조언이 윤 작가에게 큰 힘이 됐다.

"선생님께서 3가지 당부를 하셨어요. 첫째, 땅을 밟고 살아야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 둘째, 큰 작품을 써라. 대하소설을 쓰는 선생님께서 큰 작품을 쓰라고 했을 때 부담스러웠는데, 큰 작품이 분량을 얘기하신 게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인간과 사회에서 중요한 소재를 붙잡으면서 그것을 철저히, 치열하게 다루는 작품을 의미하신 거죠. 마지막으로, 90년대부터 대학교수를 했는데 빨리 그만두고 작품에 전념하라고 하셨어요. 돌아가신 뒤에야 모두 이뤘습니다."


윤 작가의 리듬감 넘치는 문장력은 사전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국어사전과 시간을 보내는 취미가 있었다"며 "이 작품에 그동안 쌓아온 문학적 역량을 다 쏟아붓겠다는 심정으로 문장에 많이 힘을 들였다"고 말했다. 이어 "재미있고 없음에 상관없이 문장의 가독성, 현대 독자들의 기호에 맞는지 안 맞는지 상관없이 제 고집대로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등단 50년 윤흥길, 20년 걸린 소설 '문신' "작가재능 못 타고났다고 느껴"
제목 '문신'은 글의 주제와 관련이 깊다. 윤 작가는 "전쟁에 나갈 때 문신을 몸에 새기는 '부병자자'(赴兵刺字) 풍습과 강제노역에 동원된 조선인들이 일하면서 부른 개사된 '아리랑'인 '밟아도 아리랑'을 모티프로 했다"며 "이들은 우리 민족이 가진 독특하면서도 치열한 귀소본능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문화 현상이 서양 문물 쪽으로 기울어진 데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윤 작가는 "TV 화면의 자막을 보면 말을 너무 많이 만들어내고 어원을 알 수 없는 단어가 많다"며 "문학을 하는 나라도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특징을 강조하고 지켜나가려고 노력하고 싶다고 생각해 의도적으로 현대의 취향에 맞지 않는 문장을 많이 시도했다"고 말했다. 우리 것을 완전히 되찾을 순 없지만 잊어버리지는 말자는 것이 윤 작가가 이번 소설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과거에 내가 천재라고 우러러본 문단 선배 중에 일찍 절필하고 활동하지 않는 분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재능을 타고나지 못한 점에 오히려 감사합니다. 타고난 천재성보다 소설에서 더 중요한 것은 노력입니다. 노력으로 모자란 부분을 벌충하고 상쇄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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