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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으로서 동등한 삶의 존엄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명제는 내게는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일찌감치 중증발달장애를 가진 것으로 판명된 동생에겐 해당사항이 없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권리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동등하지 않았으며 우리의 능력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 시험 점수 같았다. 우리의 인간 성적(?)은 시간이 갈수록 벌어졌고 동생은 13살이 되던 무렵 나와 같은 세상에서 살아갈 권리를 박탈당해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장애인 수용시설에 보내졌다. 부모님은 그것이 동생의 행복일 수 있다고 했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끼리’ 있으면 그 안에서는 혜정이 상대적으로 행복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솔깃한 말이었다. 매일매일 나 자신보다 동생을 먼저 챙겨야 하는 삶에 지쳐있던 나는 우리가 서로 분리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서로를 자유롭게 하는 길이라는 그 말을 믿었다. 정확히는 믿기로 했다. 무려 18년을 우리는 그렇게 떨어져 살았다.
나는 오랫동안 이 속삭임에 종속된 삶을 살았다. 유능해지기 위해, ‘루저’가 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언젠가 동생이 지내는 시설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 정도로 ‘이긴’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경쟁에서 이기는 편에 서면 안도감이 들었지만 마음 한편은 늘 불안했다. 내 존재의 토대라는 것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단 한번이라도 실수하는 순간 저 아래로 추락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이 많았다. 비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추락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에는 훨씬 많았다.
긴 불안의 시간 속에 ‘자유롭게 경쟁하세요’라는 주문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서서히 알게 되었다. 실패할 자유가 없는 세상에서 자유로운 경쟁은 환상이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게는 실패할 자유가 없었다. 우리집은 가난했고, 나는 혼자였다. 문득 오랫동안 추상의 연못에 가라앉아 있던 단어가 반짝 수면 위로 떠올랐다. ‘평등’이라는 단어였다. 평등은 맨 꼭대기에 있는 사람의 멱살을 끌고 와 모든 사람들과 나란히 줄 세워 놓는 것이 아니었다. 평등은 이 사회에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그가 이 사회에서 가장 처절한 삶의 조건에 처해있다 하더라도 그가 기본적으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이 보장된다는 뜻이었다. 내가 오랜 시간 바랐던 자유는 바로 그러한 평등 위에서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것이었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나는 오랫동안 살아왔던 삶을 버리고 새로운 선택을 했다. 18년 간 시설에서 살았던 동생을 다시 사회로 데려와 일단 함께 살아가기로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그 시간들을 영상으로 기록해 사람들에게 나누기 시작했다. 이것이 단순히 우리 가족의 사적인 불행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유와 평등에 관한 이야기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오는 12월 13일에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의 시작이다.
장애인을 차별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그들이 불쌍해서, 힘들어서, 아파서가 아니라 그들의 삶이 우리 모두의 삶의 조건을 규정하는 최전선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단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평생을 남이 정해주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권리로서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자유는 그저 운일 뿐이다. 우리는 운으로서의 자유가 아니라 권리로서의 자유를 가질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