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면 화 내는 기러기 남편…이혼하고 싶어요"

머니투데이 조혜정 변호사 2018.12.11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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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조혜정 변호사의 가정상담소]

"만나면 화 내는 기러기 남편…이혼하고 싶어요"


Q) 저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데 남편과의 관계 때문에 고민스러워서 의논을 드립니다. 아이들 공부 때문에 저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캐나다에 와서 살기 시작한 것이 벌써 20년 전의 일이네요. 기러기 부부로 20년 떨어져 지내다 보니 남편과는 남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남편은 제가 대학 졸업하던 해에 소개를 받아서 만났습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학교를 나온 데다 전문직이었던 남편은 누가 봐도 좋은 신랑감이었죠. 그런 사람이 저를 좋다고 하고 부모님도 맘에 들어하시니 제가 거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혼하게 됐는데 정작 살아보니 남편은 결혼 전과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부잣집에서 태어난 외동아들이라 그런지 남편은 굉장히 독선적이고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시키는 대로 안 한다고 불같이 화를 내고 늘 저더러 하는 일 없이 놀면서 집안 일도 제대로 못한다, 힘들게 돈 버는 남편을 제대로 공경하지 못한다고 타박했지요. 시어머니 성격도 유별나시고 제 생활을 일일이 간섭하셔서 저는 늘 주눅 들어 살았습니다. 남들 보기엔 시집 잘 간 거였겠지만 사실 저는 정말 불행했습니다. 이혼 생각은 무수히 했지만 아이들 때문에 결심은 못했지요. 친정부모님한테 걱정 끼치기도 죽기보다 싫었고요.

아이들이 좀 커서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되니까 캐나다에서 학교를 보내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어리니까 제가 따라가기로 했고요. 낯선 나라에 가서 살 생각을 하니 걱정도 됐지만 남편과 시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좋긴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부터 기러기부부를 하지 않았다면 이혼 안 하고 살 수 있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그나마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아이 둘 데리고 와서 제 나름대로는 아이들 뒷바라지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아이 둘 제대로 키우기가 참 어렵고 힘도 많이 들더라고요. 처음에 유학 얘기가 나왔을 때는 남편이 몇 년 뒤에 따라오기로 했었는데 남편 사업이 잘 되면서 남편은 캐나다에 올 생각이 없어진 듯 했습니다. 다행히 아이 둘이 반듯하게 잘 크고 바라던 대로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을 다녀서 애쓴 보람은 있습니다.

남편은 아이들 고등학교 때까지는 1년에 두어 번씩 와서 같이 지냈고, 저도 방학 때가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아이들 대학 때는 1년 한 번 정도 왔고 전화도 뜸해졌지요. 아이들이 대학에 가니 부모들이 해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더라고요. 그러다 한 7,8년 전부터는 2,3년에 한 번 오고 저도 한국에 잘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같이 지내게 되면 남편은 꼭 저한테 자기 덕에 호강하며 사는데 자기한테 잘하지 못한다고 화를 내거든요. 저는 기러기 아빠인 남편에게 미안해서 같이 있을 때 잘해주려고 노력하는데, 남편은 아무래도 제가 성에 차지 않았나봅니다.

마지막으로 만난 게 3년 전인데 그 때도 결국 남편이 한국 가기 전에 저한테 화를 내면서 돌아갔습니다. 만나면 꼭 끝에 가서는 화를 내니 저도 남편을 피하게 되더라고요. 그 때부터는 서로 전화도 안 하고 꼭 할 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는데 그것도 1년에 몇 번 안 됩니다.


오랫동안 망설인 끝에 얼마 전 남편에게 제가 이혼하자고 했지요. 그랬더니 남편은 ‘아는 판사들한테 다 알아봤는데, 이혼당할 사유가 없어서 이혼이 안된다고 하더라. 그동안 돈 벌어서 뒷바라지만 했는데 왜 내가 이혼을 당하느냐’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한국 갈테니 집에서 얘기 좀 하자 했더니 남편은 ‘당신이 내 집에 왜 오느냐, 오지 말라’고 하네요. 저보고 집에 오지 말라고 하는 걸 보면 뭔가 이상하긴 합니다. 그러면서 왜 이혼은 안 한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가고요.

남편과 얘기가 잘 안 될 경우에 만약 제가 이혼재판을 건다면 제가 이길 수 있을까요? 아니면 남편 말대로 남편 잘못이 없으니 이혼이 안 되는 건가요? 그리고, 남편은 한국에서 사업을 잘 해서 재산을 상당히 모은 거 같은데 저도 재산분할을 받을 수 있을까요? 남편은 제가 돈만 받아쓰고 재산 불리는 데 기여한 게 없으니 재산분할 못 받는다 하는데 정말 그런가요? 남편이 2년 전부터 생활비를 안 보내서 저도 여기서 일자리를 구하긴 했는데 혼자 살기에 빠듯한 돈이라 다만 얼마라도 재산분할을 받아야 노후대책이 생기거든요.

기러기 아빠로 외롭게 살았을 남편에게 미안해서 재판까지 하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편과 다시 합쳐서 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정면대결하지 않고 정리를 할 수 있을까요?


A) 기러기 부부로 사신 두 분 다 참 안쓰럽고 딱합니다.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낯선 나라에서 혼자서 아빠 몫까지 해가면서 아이들 키우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을 거고, 선생님 남편은 남편대로 가족 없이 지내시느라 외롭고 힘드셨겠지요. 기러기 부부는 서로 힘든 점을 잘 이해하고 부부사이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니 문제지요. 서로 나는 힘든데 상대방이 몰라준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세월이 흐르면서 남처럼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가기 전에는 사이가 좋았던 부부도 한 집에 살면서 같이 부대끼는 시간이 없으니 부부 간의 감정적인 연결이 서서히 엷어지게 되지요. 그러다가 아이들이 대학 가고 어른이 되면 아이들을 잘 키우자는 공동의 목표도 없어지니 부부사이가 완전히 끊겨버리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두 분의 상황이 마음 아프고 안타깝긴 하지만, 다시 합쳐서 살 수는 없을 거 같다는 선생님 생각에 저도 동의합니다. 20년간 떨어져 살았고 3년 전부터 만난 적이 없는 데다 전화도 안 한다면 이미 부부라고 하긴 어려울 거고 이대로 시간이 흘러도 다시 부부관계가 회복될 것 같지는 않네요. 몇 십 년 전까지야 바람 나서 집나간 남편이 나이 들면 본처한테 돌아온다고는 했지만, 그건 옛날 얘기예요. 이혼하면 사회적으로 매장되던 시대의 얘기지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해서 부부 간의 감정적인 연결이 한 번 끊기면 복원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더라고요. 아주 많은 부부들이 헤어지게 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니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법적으로도 부부관계가 다시 회복되지 않을 정도로 파탄상태에 이르게 되면 이혼사유가 존재하는지와 상관없이 이혼을 할 수 있도록 정해놓고 있습니다. 재판상 이혼 사유는 민법 제840조에 규정이 있는데, 1호에서 5호까지는 배우자의 부정행위, 배우자가 상대방을 돌보지 않고 버린 것, 폭행, 폭언 등 부당한 대우, 3년 이상의 생사불명 등 누가 봐도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는 사유들입니다. 하지만, 이혼하게 되는 사유가 어디 그 다섯 가지 뿐이겠어요? 그래서 6호에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라는 포괄적인 규정을 두고 있는데 바로 여기에 ‘부부관계가 회복불가능한 파탄 상태에 이른 때’가 포함된다고 해석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가 서로 같이 살지 않고 만나거나 연락도 안 하는 상태가 오래 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다시 돌아갈 것 같지 않은 경우에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 누구 잘못으로 그렇게 되었는지를 따지지 않고 이혼판결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선생님 경우처럼 아이들 다 키우고 나서 하는 황혼이혼의 경우에는 이런 경향이 좀 더 강하게 나타나고요. 회복불가능한 파탄상태에 있다고 판단되면 부부 중 한 쪽이 이혼을 거부해도 가정법원은 가능한 한 부부관계를 정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같이 키운다는 부부 공동의 의무도 다한 마당에 이름만의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거지요. 그러니 ‘이혼당할 사유가 없으니 이혼이 안된다’는 남편의 얘기는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기여한 것이 없으니 재산분할을 못 받는다는 남편 얘기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혼시 재산분할에서의 기여는 꼭 경제적인 기여나 직접적인 기여만 해당되는 건 아니거든요. 부부로서 같이 살아주는 것, 같이 낳은 아이들을 키우는 것 등 부부라면 같이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 자체가 기여거든요. 선생님이 보통의 부부들보다 남편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적었고 많이 돌봐주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남편을 대신해서 아이들을 잘 돌보고 키운 거니까 이런 점도 기여라고 인정이 됩니다. 기여한 정도에서 같이 살았던 부부들보다는 좀 낮게 볼 수는 있겠지만요.

이런 점들을 감안해서 남편과 이혼과 이혼 조건에 대해서 다시 잘 얘기를 나눠보시지요. 선생님 말씀대로 기러기 아빠로 외롭게 지냈을 남편의 입장을 고려해서 바로 소송을 하는 것보다는 가능한 한 두 분이 잘 얘기를 해서 마무리를 하시는 게 좋겠지요. 만약 대화가 잘 안된다면 이혼소송을 걸기보다는 조정이혼을 신청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조정이혼은 법원이 부부 양쪽의 의견을 조정해서 이혼에 관한 합의를 하게 해주는 것인데, 이혼소송보다 시간이 짧게 걸리고 부부가 합의를 해서 이혼을 마무리하기 때문에 소송보다는 감정적인 앙금이 적게 남는다는 장점이 있어요. 가정법원의 조정위원이나 판사님이 중재를 하는 가운데 부부가 대화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쪽 의견에 일방적으로 휘둘리는 상황도 막을 수 있고요. 선생님이 조정이혼을 신청하시면 아마 가정법원의 조정위원이나 판사님이 선생님 남편에게 파탄상태 자체가 이혼사유가 된다고 얘기해줄 것이고, 그 얘기는 선생님이 직접 얘기하는 것보다 수십 배 설득력이 있습니다. 조만간 남편도 상황을 이해하고 이혼에 동의하게 될 것이니 선생님이 원하시는 대로 정면대결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만나면 화 내는 기러기 남편…이혼하고 싶어요"
[2005년부터 10여년 간 가사소송을 수행하면서 우리 사회의 가족이 급격하게 해체되어가고 있음을 현장에서 실감했습니다. 가족해체가 너무 급작스러운 탓에 삶의 위안과 기쁨이 되어야 할 가족이 반대로 고통을 주는 존재가 되어버린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10여년간의 가사소송 수행에서 깨달은 법률적인 지식과 삶의 지혜를 ‘가정상담소’를 통해서 나누려합니다. 가족 때문에 고통받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해결책을 찾는 단초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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