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잘 죽고 싶어요"… 죽음 '맞이하는' 사람들

머니투데이 박가영 기자, 이재은 기자, 유승목 기자, 김민우 기자, 황희정 기자, 김소영 인턴기자 2018.12.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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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 시대](종합)

편집자주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1955년 복부대동맥류 파열로 쓰러졌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지만 수술을 거부했다. 그는 '웰다잉'(Well-dying)을 선택했다. 자신이 원하는 때, 품위 있게 죽음을 맞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60여년이 지난 지금 '좋은 죽음'이 좋은 삶 못지않게 중요한 시대가 됐다. 우리의 가장 확실한 미래인 죽음,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는 '잘' 죽기로 했다
[웰다잉 시대 ①]죽음, 삶의 일부로 인식…다양한 방법으로 죽음을 준비



[MT리포트] "잘 죽고 싶어요"… 죽음 '맞이하는' 사람들


"제 장례식에 초대합니다. 평상복 입고 참석해주세요. 조의금은 받지 않습니다."

지난해 11월, 일본 한 신문에 의문의 광고가 실렸다. 자신의 '생전 장례식'을 치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광고를 게재한 사람은 안자키 사토루(당시 80세). 일본 건설기계 분야의 1위 기업 고마쓰의 전 사장이었다. 그는 온몸에 암이 전이돼 수술 불가능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연명 치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거부했다. 아픈 몸으로 버티며 사는 건 의미가 없었다.



그로부터 약 3주 뒤, 안자키 전 사장의 생전 장례식이 열렸다. 회사 관계자, 동창생, 지인 등 약 1000명이 참석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모든 테이블을 돌며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감사 편지도 남겼다. 생전 장례식을 치르고 6개월 뒤, 안자키 전 사장은 81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말처럼 '몸부림치지 않는 죽음'이었다.

잘 죽어야 잘 사는 시대가 왔다. 이른바 '웰다잉'(Well-dying) 시대다. 사람들은 이제 죽음을 삶의 일부로 인식한다. '죽음의 질'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웰다잉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능동적으로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죽음의 시기와 방법, 혹은 그 이후까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여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기다리며 준비한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죽음을 맞이하는 또 하나의 문화를 만들고 있다.


◇'웰빙' 이어 '웰다잉' 시대로…고령화로 관심 높아져

웰다잉은 2009년 '김 할머니 사건'으로 화두에 올랐다. 대법원이 식물인간이 된 김 할머니의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존엄사를 허용하며 환자의 결정에 따라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게 됐다. 이후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최근에는 빨라진 고령화가 웰다잉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유병장수' 시대가 열리면서 죽음의 패러다임이 변했기 때문. 병든 채 목숨을 유지하기보다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웰다잉을 더욱 선호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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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경향은 노인층에서 특히 뚜렷하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만 65세 이상 노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노인 10명 중 8명은 존엄사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죽음을 앞둔 환자가 연명의술 대신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돕는 '호스피스 서비스 활성화'에 동의하는 노인도 87.8%나 됐다.

고령 인구가 늘면서 '좋은 죽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자 지자체들은 웰다잉 프로그램을 앞다퉈 마련하고 있다. 2016년 대전광역시를 시작으로 30여곳의 지자체가 웰다잉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경기도 평택시는 웰다잉 사업의 일환으로 민간차원에서 운영하는 호스피스 업무에 시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다.

◇영정사진 찍고 관속에 눕고…"잘 죽을 준비 됐습니다"

웰다잉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임종체험은 대표적인 죽음 준비 과정으로 꼽힌다. 대개 유언장을 쓰고, 관에 들어가는 등 죽음을 간접 체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 상조회사는 별도의 '힐링센터'를 지어 무료로 임종체험과 강의를 제공하고 있다. 7년째 운영 중인 이 센터는 누적 체험자 수가 2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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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청년들 사이에선 영정사진을 찍는 문화도 생겼다. 계기는 가지각색이지만 이유는 비슷하다. 자신의 죽음을 잘 준비하기 위해서다. 지난 5월 영정사진을 촬영한 취업준비생 이모씨(26)는 "죽음도 긴 일생의 일부라 생각해 영정사진을 찍었다"며 "준비되지 않은 사진이 마지막 모습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죽은 뒤 장례는 의미가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생전 장례식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370명을 대상으로 생전 장례식에 대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9.7%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지난 8월엔 서울의 한 병원에서 호스피스 환자를 위해 지인들을 초대, 이별파티 분위기로 생전 장례식이 치러졌다.

하지만 국내 웰다잉 관련 시장의 규모는 아직 부족한 형편이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를 맞았던 일본은 '종활'(終活·인생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활동) 문화가 정착돼 있다. 유품 정리와 디지털 유산 상속, 사후 정리를 위한 보험 서비스 등 다양한 종활 상품이 등장했다. 일본 언론 등에 따르면 종활 산업의 규모는 연간 5조엔(약 5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박가영 기자

기본권엔 한 가지가 빠져있다… '죽을 권리'
[웰다잉 시대②] 존엄사, 의사조력자살 등 인간에게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있다고 보는 시각

/그래픽=김현정 디자인 기자/그래픽=김현정 디자인 기자
"나는 늙고 있습니다. 시력을 포함해 내 모든 능력은 퇴화했습니다. 이제 나는 집에 24시간 갇혀있거나, 양로원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아요. 죽고 싶어요. 슬프냐고요? 아뇨, 내가 슬픈 건, 죽어야해서가 아니라 죽을 수 없어서입니다." (故 데이비드 구달 박사, 이 같은 인터뷰 후 지난 5월9일 104세로 스위스에서 의사조력죽음 통해 사망.)

내년 3월28일부터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조건이 완화된다. 이전에는 연명치료(심장마사지·인공호흡·점적수액요법 등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의료행위 전반) 중단 조건 중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을 때 19세 이상 배우자 및 직계 존·비속 전원의 서명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손자·손녀 동의는 없어도 되는 것으로 바뀐다. 앞으로 가족의 동의가 부족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이어나가는 일이 크게 줄면서 존엄사를 맞는 이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품위 있는 죽음'과 '죽음을 선택할 권리'

이 같은 '연명 치료 중단' 요건 완화는 존엄사가 필요하다고 보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가능했다.

이들은 회생(다시 살아남) 가능성이 없는 이들이 마지막까지 생명을 연장하는 것만을 위하여 온갖 기기를 매단 채 가족들과 함께 있지 못하는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보다,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게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하는 방법이라고 본다. 이처럼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명치료중단은 '존엄사' 혹은 '품위 있는 죽음'의 한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법적으로 연명치료중단을 통한 존엄사가 실행됐고, 이제서야 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지만, 외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존엄사를 허용해왔다. 법적으로 존엄사를 허용하는 국가는 네덜란드·벨기에·스위스·태국 등이다. 미국은 50개 주 가운데 40개 주가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다.

2010년 7월29일, 미셀 코스가 그의 74세 생일에 의사조력죽음을 맞이하는 장면. /사진=유튜브2010년 7월29일, 미셀 코스가 그의 74세 생일에 의사조력죽음을 맞이하는 장면. /사진=유튜브
나아가 이미 많은 나라에서는 존엄사보다 한 차원 나아간 수준의 논의도 활발히 하고 있다. '의사조력죽음'(의사조력자살·PAS, Physician-Assisted Suicide)에 대한 논의다.

의사조력죽음은 환자 스스로 생명을 끊는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의사가 치명적인 약물(펜토바르비탈 등)을 처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익숙지 않은 개념이지만, 이미 오리건·워싱턴·뉴멕시코·캘리포니아·버몬트·몬테나 등 미국의 일부 주, 캐나다·네덜란드·벨기에·스위스와 같은 몇몇 국가에서는 합법이거나 처벌되지 않는다.

이 나라들이 의사조력죽음을 허용하는 이유는 우리에겐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며, 이것이 일종의 '기본권'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호주 퀸즐랜드주에 거주하고 있는 홀리 워랜드(27)는 빅토리아주에서만 합법화된 의사조력죽음을 호주 전역에서 합법화할 수있게 해달라고 주장하는 활동가다. 그는 몇년 전까지만해도 남들과 똑같이 생활하며 퀸즐랜드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지만, 지대형 근육영양장애(LGMD)라는 유전질환이 심해지며 몸이 점차 굳었다. 이제 그의 몸은 딱딱히 굳어 샤워를 하거나 화장실에 가는 데도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는 질환 때문에 본인이 사실상 죽어있어 의사조력죽음이 필요하다며, 이것이 합법화돼야한다고 주장한다. 홀리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내가 갖게된 신체적 장애가 자랑스럽지 않다. 내가 앓는 유전질환에는 치료제도 없다.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면서 "내가 충분히 살았다고 생각하는 어느 날, 내 인생을 스스로 끝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2월 홀리 워랜드가 "4년 전, 처음으로 병원에 실려갔을 때의 모습"이라며 게시한 사진. /사진=인스타그램지난 2월 홀리 워랜드가 "4년 전, 처음으로 병원에 실려갔을 때의 모습"이라며 게시한 사진. /사진=인스타그램
그는 이어 "하지만 내가 죽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온몸이 굳어버린 나는, 스스로 죽기를 시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즉, 그에게는 행복하지 않은 삶을 이어가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스스로 죽음을 도모할 능력이 부족하므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그의 일상생활이 얼마나 힘겨운지 SNS(사회연결망서비스)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하고, 의사조력죽음에 대한 의식 개선을 추구한다.

한국에서도 지난 7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 아버지를 제발 죽여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면서 '안락사'와 '의사조력죽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게시자는 "내 아버지는 지난해 7월 췌장암 3기 판정 이후 5월까지 항암치료를 받으셨다. 이미 췌장암은 말기로 진행됐고 이제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있다"면서 "현재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시고 말도 못하신다. 통증이 너무 심해 수면제와 진통제에 의지해서 하루 종일 주무신다. 1분 남짓 깨계실 때면, 아버지는 고통에 빠져계시다가 간신히 손을 움직여 '안락사'를 검색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제발 아버지가 죽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MT리포트] "잘 죽고 싶어요"… 죽음 '맞이하는' 사람들
◇"나도 한 번 죽어볼까"… '미끄러운 경사면' 이론

하지만 이 같은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해 우려하는 시선도 만만치 않다. '미끄러운 경사면'(slippery slope·어떤 원칙이 무너지면 연관된 다른 원칙들이 순차적으로 무너지는 현상)처럼, 처음에는 자발적으로 이뤄지더라도 결국에는 타의에 의해 생명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환자가 불안, 공포 또는 죄책감에 휩싸여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없을 수 있고, 우울증을 동반한 불치병 환자가 감정적·충동적으로 이 같은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환자가 자신의 가족이 겪는 재정적·감정적·정신적 부담 때문에 자의 또는 타의로 떠밀리듯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호주 빅토리아주에서 의사조력죽음 합법화 반대 투쟁을 해온 응급의학전문가 스티븐 파르니스는 "필연적으로 부당하게 죽어나가는 이들이 생길 것"이라면서 "미묘하게 '죽으라'는 강요를 당하는 사람들도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타인(의사) 조력 자살이 허용된 스위스로 '죽으러 왔던' 104세의 호주인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이 지난 5월9일 한 진료소에서 뜻대로 생을 마감했다고 친 안락사 국제 단체인 '엑시트(출구) 인터내셔널'이 밝혔다. /사진=뉴시스타인(의사) 조력 자살이 허용된 스위스로 '죽으러 왔던' 104세의 호주인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이 지난 5월9일 한 진료소에서 뜻대로 생을 마감했다고 친 안락사 국제 단체인 '엑시트(출구) 인터내셔널'이 밝혔다. /사진=뉴시스
반대론자들은 구달 박사의 죽음 역시 '미끄러운 경사면'의 한 사례로 본다. 의사조력죽음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죽지 않아도 될 이들까지 죽음을 고민하게 되는데 구달 박사의 사례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구달 박사는 지난 5월9일 스위스 바젤에서 바르비투르산염 넴부탈을 투여받아 사망했다. 구달은 나이는 들었지만 위독한 병이 없고 건강한 상태였다는 점에서 건강한 사람이 의사조력죽음을 택한 최초의 사례였다. 그는 "사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이 내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고 말하며 죽음을 기뻐했지만, 호주 의사협회는 "더욱 더 많은 이들이 죽음을 바랄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존엄사와 안락사 등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며, 국가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우리는 아직 국민의 품위 있는 죽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미흡할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에서 환자의 의사가 잘 반영되지 않아 덜 수용적"이라면서 "유럽이나 북미처럼 우리나라도 안락사 논쟁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은 기자

나의 죽음, 누군가의 시작입니다
[웰다잉 시대③] 가치 있는 죽음 '장기기증' 관심…낮은 인식에 서약률은 제자리

[MT리포트] "잘 죽고 싶어요"… 죽음 '맞이하는' 사람들
나의 목적과 의욕이 정지했다고 선언할 때가 올 것입니다.(중략) 나의 심장은 끊임없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주십시오. 뇌세포를 도려내 말 못하는 소년이 함성을 지르게 하고, 듣지 못하는 소녀가 창문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를 듣게 해 주십시오.(중략) 내가 부탁한 이 모든 것들을 지켜 준다면 나는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미국 시인 故 로버트 테스트 '나는 영원히 살 것입니다' 中)

회생 불가능한 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조건이 완화되면서 존엄한 죽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죽음을 마냥 두려워하고 피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더 의미 있게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늘고 있다. 죽음을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장기기증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찾는다.

◇끝은 새로운 시작

지난 10월 수레를 끄는 노인을 돕던 중 교통사고를 당한 김선웅씨가 세상을 떠났다. 이웃을 돕다 사고를 당한 김씨는 떠나면서도 어려움에 처한 7명을 살렸다. 자신의 건강한 장기를 기증해 새로운 삶을 선물한 것. 선행을 좋아했던 김씨에게 걸맞은 존엄한 죽음이었다.

김씨는 생전 먼저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유지에 따라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 사망한 뒤 정상적으로 활동 가능한 장기를 가족이나 장기부전으로 고통 받는 다른 환자의 소생을 위해 기증하겠다는 약속이다. 심장, 간, 폐를 비롯해 골수와 인체조직까지 1명의 장기기증은 최대 9명을 살릴 수 있다.

나의 죽음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에 장기기증은 '웰 다잉'(Well-dying)의 한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따라 19세 이상 성인이면 누구나 쉽게 서약이 가능한데, 한국장기기증원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140여만명이 사후 장기기증을 서약했다. 지난 9월에는 서울시 의원 83명이 단체로 장기기증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월 제5회 서울시 장기기증의 날 기념식에서 장기기증인 가족 대표인 도너스 패밀리 강호 씨(오른쪽)가 심장이식인 이종진 씨의 심장소리 들은 뒤 포옹을 나누는 모습. /사진제공= 뉴스1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월 제5회 서울시 장기기증의 날 기념식에서 장기기증인 가족 대표인 도너스 패밀리 강호 씨(오른쪽)가 심장이식인 이종진 씨의 심장소리 들은 뒤 포옹을 나누는 모습. /사진제공= 뉴스1
장기기증을 고려하는 사람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질병관리본부가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7%가 '장기기증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직장인 이모씨(28)는 최근 장기기증서약을 고려 중이다. 김선웅씨 소식을 접한 뒤 장기기증을 결심했다. 이씨는 "가치 있게 삶을 살고 싶은 것처럼 내 죽음도 가치있길 바란다"며 "언제 어떻게 세상을 떠날 지는 모르지만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의미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장기기증에 대한 관심은 해외에서 더 높다. 일부 국가에선 기부행위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5월 글로벌 여론조사기업 '입소스모리'가 28개국 성인 2만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1%가 '장기기증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스페인(72%)과 브라질(70%), 미국(65%), 영국(65%) 등은 특히 더 긍정적이었다. 최근 브라질에선 사망자의 자궁을 이식받아 출산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갈 길은 여전히 멀어

'의미 있는 죽음'의 방법으로 장기기증에 대한 관심은 분명 높아졌지만, 그 속도는 아직 더디다. 여전히 장기기증을 약속한 사람들은 적다. 지난 4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 발표에 따르면 뇌사자 장기기증은 매년 500명대에 불과하다. 올해도 428명에 그쳤다. 3만명에 달하는 이식 대기자에 비하면 턱 없이 저조하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남녀의 '장기기증' 인지도는 98.1%에 달한다. 전국민 대다수가 장기기증에 대해 알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장기기증을 서약한 사람은 2.8%(140만명)에 불과하다. 해외에 비하면 턱 없이 부족하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센터 지난해 한국의 인구 100만명 당 뇌사자 장기기증률은 9.95명에 그쳤다. 반면 스페인은 46.9명, 미국은 31.96명에 달했다.

/사진= 이미지투데이/사진= 이미지투데이
이에 대해 장기기증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반감, 기증자에 대한 부적절한 예우 등이 장기기증 서약을 망설이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보통 장기기증은 사후기증과 뇌사자 기증을 말한다. 이중 뇌사자 기증은 많은 장기이식이 가능해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뇌사 판정을 받은 환자가 호흡을 한다는 이유로 언젠가 깨어날 수 있다고 생각, 섣불리 장기기증을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뇌사는 식물인간과 달리 뇌간을 포함해 뇌 전체 기능이 중지돼 인공호흡기로 호흡만 연명할 뿐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신체훼손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유교적 분위기도 장기기증의 확산을 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 질병관리본부 조사에 따르면 장기기증 의사가 없다고 대답한 사람의 대부분이 '인체훼손에 대한 거부감'을 원인으로 말했다. 이 때문에 장기기증을 서약해도 가족이 동의하지 못해 기증하지 못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기증서약을 하더라도 가족 1명이 동의해야 장기기증이 이뤄지는데, 올해 가족의 기증거부율은 60%에 달했다.

이에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윤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주요 선진국들이 실시하는 옵트아웃제를 비롯, 운전면허 취득 인원에게 장기기증제도를 안내하는 다양한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페인과 프랑스는 명백한 장기기증 거부 의사가 없을 경우 장기기증 희망자로 등록하는 '옵트아웃제'를 실시하고 있고, 미국과 영국은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장기기증 신청 여부를 묻는 등 인식 제고에 힘쓰고 있다.

유승목 기자

연명치료 중단 결단 떠안는 가족들…국회는 '고심중'
[웰다잉 시대④] 20년 논란 '존엄사'…법 개정은 현재진행중

[MT리포트] "잘 죽고 싶어요"… 죽음 '맞이하는' 사람들
연명의료결정제도를 통해 연명의료를 중단한 사례 중 환자 본인의 의사를 명확히 남겨 연명의료를 중단한 사례는 34.9%에 불과하다. 10명 중 7명은 가족의 합의나 가족의 진술을 통해 연명의료 중단을 선택했다는 얘기다. 환자 스스로 본인의 의사를 명확히 남길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자는 것이 국회의 최근 고민이다.

◇20년 사회적 논의 끝에 통과된 '존엄사법'…그 후 한차례 개정 ='존엄사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안)이 시행된 것은 지난 2월.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으로 우리사회에 존엄사가 화두로 오른 지 약 20년, 2009년 '김 할머니 사건' 이후 국회에서 본격 논의되기 시작한 지 7년만이다.

2008년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 할머니의 가족들은 본인의 평소 뜻에 따라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했다. 소송 끝에 이듬해 5월 대법원은 최초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인정했다. 김 할머니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자발호흡을 통해 200일 이상 생존하다 2010년 1월 별세했다.

이 과정에서 연명치료 중단의 법제화 필요성을 놓고 사회 각 층에서 논란이 일었다. 2013년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권고안을 마련하고 입법화를 권고했다. 이후 국회 상임위(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하는데에만 2년 5개월이 더걸렸고, 2016년 1월8일 마침내 존엄사법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게 됐다.

그러나 법 시행 후에도 문제는 있었다. 연명중단은 △환자가 미리 작성한 사전연명의료 의향서가 있을 때 △임종을 앞둔 환자가 직접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했을 때 △가족 중 두 명 이상이 환자가 평소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동일하게 진술했을 때 등으로 한정한다.

모든 경우 환자 본인이 의사를 밝혀야 한다. 그러나 환자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는 환자의 직계 존·비속 성인 가족 모두에게 동의를 받아야 한다. 환자의 배우자는 물론 자녀·손주·증손주 등 모든 직계혈족과 연락해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와 국회는 이같은 조건이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지난달 법을 개정, 동의를 받아야하는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 및 직계 존·비속 전원'에서 '배우자와 1촌 이내 직계 존·비속(배우자·부모·자녀)'으로 축소했다.

◇환자 스스로 연명의료중단계획서 작성한 비율은 10명 중 3명뿐 = 국회의 최근 고민은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때 환자 스스로 본인의사를 명확히 남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복지위에 따르면 지난 2월 존엄사법이 본격 시행된 후 약 1만1528명이(7월 기준) 연명의료결정제도를 통해 연명의료를 중단했다.

이 중 병이 위중해진 뒤 환자가 의사와 상담 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경우는 34.9%로 10명 중 3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7명은 환자가족이 환자의 뜻을 대신 진술(28.5%)하거나 환자가족의 전원합의(36.7%)를 이루는 등 사실상 가족이 연명치료를 중단했다.

이에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 등 국회의원 10명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 작성비율을 높이는 방안을 주요 골자로 하는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을 지난 9월 발의 했다. 현재 국회에 연명의료중단과 관련해 유일하게 발의된 개정안이다.

이 법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공공의료기관을 의무적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18년 9월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관한 사업을 수행하는 등록기관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포함해 총 86개 기관이다. 지역보건의료기관 19개, 의료기관 46개, 비영리단체 20개, 공공기관 1개가 등록기관으로 지정돼 있다.

법이 개정될 경우 지역보건의료기관(보건소)과 국립대학병원은 물론 국립중앙의료원, 서울대학교병원, 국립암센터, 지방의료원 등의 공공의료기관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 지정되게 된다.

다만 모든 공공의료기관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으로서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무실, 상담실, 온라인 업무처리시스템 등 시설과 인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또 동일지역내에 다수 기관이 지정돼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민우 기자

잘 사는 법보다 중요한 '잘 죽는 법', 책으로 읽다
[웰다잉 시대⑤] 출판계에서도 웰다잉 서적 봇물 이뤄…'죽음에 대하여'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죽는 게 두렵지 않다면…'

[MT리포트] "잘 죽고 싶어요"… 죽음 '맞이하는' 사람들
영원한 긴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할까. 삶의 마침표를 제대로 찍기 위해선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 2월 '합법적인 존엄사'가 가능한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잘 죽는 방법'에 대한 관심이 더욱 뜨거워졌다. 출판계도 예외는 아니다. 죽음을 이해하는 관점과 태도를 종교‧철학‧의학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한 '웰다잉'(well-dying) 관련 서적이 봇물을 이루면서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죽음에 대한 사유의 정수 '죽음에 대하여'

영생의 삶은 축복이 아니라 불행이라는 말이 있다. 즉, 삶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열심히 살아가는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프랑스 철학계의 독창적 아웃사이더로 불린 블라디미르 장켈레비츠의 사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16년 출간된 '죽음에 대하여'는 프랑스의 편집자 프랑수아즈 슈왑이 장켈레비츠가 죽음을 주제로 한 대담 4개를 묶어 저자 사후 10년 즈음에 출간한 책이다. 장켈레비치의 주저 중 하나로 평가되는 '죽음'(La mort·1966년)을 평이한 언어로 전달하고자 한 대중적 판본으로 죽음에 대한 사유의 정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장켈레비치는 삶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잠재적 상태의 죽음이 위대한 인물들을 만들어내고 그들에게 열정과 열의,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고 설명했다. '존재했음'의 진실에 대해 그는 "언젠가 삶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해도 나는 적어도 삶을 알았던 사람이 된다"며 "삶을 잃게 된다는 그 이유에서 어쨌든 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MT리포트] "잘 죽고 싶어요"… 죽음 '맞이하는' 사람들
◇당하지 않고 '맞이하는' 죽음…'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사람을 살리고 죽음을 한시라도 늦추는 일을 하는 의사들이 펴낸 죽음에 관한 서적도 발간됐다. 지난 8월 출판된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는 '죽음학 전도사' 정현채 서울대 의대 교수가 2007년부터 10여 년 간 저자가 대중을 상대로 해온 '죽음학' 강의 내용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의사로서 사람을 살리는 일만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은 많은 사람이 죽음의 의미를 제대로 직면하고 사유해 살아 있는 순간순간을 충실하게 살다가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라는 판단했다. 이 책은 저자가 2차례의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며 죽음에 대해 더욱 깊이 사색한 결과가 담겼다. 과학자 입장에서 사후세계를 연구하고 대중에게 알리는 데 힘썼다.

안락사 제도와 자살문제 등 죽음 관련 사회적 문제도 다뤘다. 이 책에 따르면 죽음은 준비할 때 존엄할 수 있으며 죽음은 벽이 아니라 문, 소멸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저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데 대해서는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자살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없다"며 "오히려 절망과 고통 속에서 삶의 의미를 깨우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MT리포트] "잘 죽고 싶어요"… 죽음 '맞이하는' 사람들
◇바람직한 죽음이란? '죽는 게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의학기술 발달로 수명은 길어졌지만 훨씬 많은 질병에 노출되면서 '유병장수'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이제 쉽게 죽지 못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미국 듀크대 심장학 전임의인 하이더 와라이치는 다년간의 연구와 현장경험, 환자 및 가족과의 인터뷰, 참고자료와 사례 등을 바탕삼아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인 '죽음'에 대해 파헤쳤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은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죽음에 맞서기 위해 현대의술의 도움의 받지만 이는 단지 죽음을 지연시키고 죽는 과정을 연장할 뿐"이라며 "죽음에 대해 깊게 인지하고 더 많이 토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바람직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저자가 중점을 둔 부분은 '죽음의 질'이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고통을 덜 겪고 외로움을 덜 느끼는 환경이 마련되기 위해선 환자와 가족이 소통할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며 환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치료와 임종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강조했다.

황희정 기자

내 나이 28세, 영정사진을 찍었다
[웰다잉 시대⑥] 2030세대 유행처럼 자리잡은 '영정사진 촬영' 직접 체험해보니

결연한 의지로 영정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는 기자의 모습(왼쪽). 카메라 공포증을 극복한 끝에 얻은 기자의 영정사진. 어딘가 어색해 보인다./사진 제공=사진작가 홍산결연한 의지로 영정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는 기자의 모습(왼쪽). 카메라 공포증을 극복한 끝에 얻은 기자의 영정사진. 어딘가 어색해 보인다./사진 제공=사진작가 홍산
"실물보다 잘 나오게 찍어주세요."

긴장을 누르려 애써 꺼낸 한 마디가 고작 이거라니. 스스로도 어이없단 생각을 하며 카메라를 바라봤다. 잠시 뒤 검은 휘장이 둘러진 사진 한 장을 받아들었다. 매일 아침 거울에서 보던 얼굴이지만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기자 나이 28세, 그렇게 영정사진을 찍었다.

◇젊은 날에 유서 쓰고 영정사진 찍는 청년들

장례식에 갈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것, 바로 영정사진이다. 청년들에게는 낯선 존재다. '죽음을 앞둔 나이 많은 사람이 찍는 것'이라는 통념 때문. 영정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를 불길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대학생 김모씨(24)는 "젊은 나이에 영정사진을 찍으면 때 이른 죽음을 불러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20~30대 청년들 사이에서 영정사진을 찍는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9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상에서 청년을 대상으로 의미 있는 장소에서 원하는 모습을 영정사진으로 남겨주는 '젊은 나의 영정사진'이라는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최근에는 '청년 영정사진' 전문 사진관도 생겼다.

청년들이 '영정사진'을 찍는 이유는 뭘까. 대개 팍팍한 현실의 활력소를 찾기 위해서다. 새로운 추억을 남기고자 찍는 이도 있다.

◇난생처음 써본 유서, 살아온 인생 되돌아보게 돼

젊은 날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영정사진은 가족이나 지인들이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난 삼촌의 영정사진이 그랬다.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영정사진 속 삼촌은 열댓 살은 어려 보였다. 20대 시절 촬영한 증명사진이 영정사진이 되고 만 것. 문득 머릿속에 의문 하나가 스쳤다. '삼촌은 영정사진으로 저 사진을 원했을까?'

기자는 내일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데 마지막 모습이 될 영정사진은 직접 고르고 싶었다. 몇 달 전 마지못해 찍은 취업용 증명사진이 장례식장에 놓이는 건 바라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청년 영정사진'을 찍는다는 스튜디오를 찾았다. '힙한 거리'로 떠오르는 문래창작촌과 한 블록 차이였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인적이 드문 공장지대를 가로질러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사진작가 홍산씨(24)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홍씨는 "촬영 전 자유롭게 유서를 작성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며 "유서를 쓰면서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영정사진 촬영에 더욱 진지하게 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막상 유서를 작성하려니 첫 문장부터 막막함이 밀려왔다. 한 글자조차 쉽게 쓸 수 없었다. 누구에게 유서를 남길까 고민하다 하나뿐인 동생에게 쓰기로 했다.

'네가 평생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나무가 돼주고 싶었는데 먼저 가서 미안해. 대신 엄마 아빠를 부탁해. 언니 없어도 너무 슬퍼하지 마. 나쁜 마음 먹지 말고…' 한 줄 한 줄 써 내려갈 때마다 서글픔과 회한이 몰려왔다. 평소 막연히 생각했던 죽음이 비로소 바짝 다가온 느낌이었다. 그렇게 눈물의 유서 작성을 마쳤다.

◇내 인생 마지막을 장식할 사진을 남기다

긴장된 얼굴로 카메라 앞에 앉았다. '영정사진' 촬영이 주는 무게감에 자꾸만 표정이 굳었다. 답답한 마음에 평소 고객들이 어떤 표정을 짓는지 묻자 홍씨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 고객도 많고 평소 아끼던 물건과 함께 포즈를 취하는 고객도 있다"며 "너무 떨지 마시라"고 용기를 북돋아 줬다. 덕분에 긴장을 덜어낼 수 있었다.

몇 번이나 표정을 바꾼 끝에 무사히 촬영을 마치고 '인생 마지막 사진'을 확인했다. 어색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입가엔 미소가 살짝 어려 있었다. 영정사진으로 쓰기에 무난해 보여 마음에 들었다.

기분 좋게 돌아오는 길, 친구에게 사진을 보내며 "혹시 내가 내일 당장 죽으면 이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써 달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건넸다. 친구에게서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는 면박이 돌아왔다. 그럼에도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일 당장 죽는다고 생각하니… '살아있음'에 감사

이날 스튜디오에서 만난 '영정사진 촬영 동지' 김호연씨(26)는 영정사진 촬영을 두고 "힘들었던 일상을 재충전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홍씨의 스튜디오를 찾는 수많은 고객에게 영정사진 촬영은 그저 죽음을 준비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또다시 찾아올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함이었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기자에게도 영정사진 촬영은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경험이었다. 문득 취업 준비생 시절이 떠올랐다. 탈락의 고배를 마시며 스스로의 쓸모없음에 좌절했던 날들, 죽음에 대해 생각했지만 실행으로 옮길 정도의 용기는 없었던 날들이었다. 유서를 쓰고 영정사진을 찍으며 내일 당장 죽는다고 생각하니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동시에 마지막 모습을 영정사진에 담고 나서야 주변 이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늘 따뜻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후회 없이 표현하고 살아야겠단 다짐이 생겼다.

집에 도착하니 동생이 문을 열어줬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다는 말에 어느새 눈가가 촉촉,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다짐대로 "보고 싶었다"고 말하자 동생의 눈이 똥그래졌다. '이 언니가 뭘 잘못 먹었나'라고 생각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곤 서둘러 방에 들어가 서랍 깊숙이 비밀을 숨겼다. 젊은 나의 유서, 그리고 영정사진을.

김소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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