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보험사 약관'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머니투데이 전혜영 기자, 권화순 기자, 주명호 기자 2018.12.0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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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폭탄 고무줄 금융약관](종합)

편집자주 자살보험금과 즉시연금 등 금융회사의 약관을 놓고 수천억원대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뭐가 문제길래 약관은 금융회사의 덫이 된 걸까. 약관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약관을 둘러싼 분쟁을 해소해 소비자를 보호하고 금융회사도 짐을 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봤다.

보험약관, 수천억 시한폭탄 만든 원죄는 금감원
[시한폭탄 고무줄 금융약관]<1>약관 심사해놓고 문제 생기면 앞장 서서 보험사만 제재

보험업계는 지난해 약관 문구의 실수로 자살 사망에도 수천억원대의 재해사망보험금, 이른바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했다. 올해는 약관에 연금을 산출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쉽게 표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즉시연금에서 뗐던 사업비를 모조리 고객에게 돌려줘야 하는 사태에 직면했다. 법원에서도 약관의 문제를 인정할 경우 보험업계가 지급해야 할 추가 연금은 8000억원대에 달한다.



약관 한 줄의 파장이 수천억원에 이르다 보니 약관 때문에 보험업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말까지 나온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보험업이 금융업이라기보다 법률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약관의 중요성이 커졌다”며 “그간 보험업계가 위험률 등을 계산해 보험료와 책임준비금 등을 산출하는 계리에 주로 신경 썼지 법률과 소비자 보호를 고려해 약관을 잘 작성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MT리포트] '보험사 약관'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암보험 약관 변경 막았다 뒤늦게 변경한 금감원=그렇다면 보험업계는 왜 그간 약관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었던 걸까. 가장 큰 이유는 금융감독원의 약관 규제에 있다.



2015년 말까지는 금감원이 만든 표준약관이란 것이 있었다. 보험사는 이 표준약관을 각 보험 상품에 준용해 써야 했다. 표준약관에 없는 내용은 각 보험 상품의 특징과 규정에 맞게 문구를 추가했다. 이렇게 만든 약관은 금감원의 승인도 받아야 했다. 보험사로선 금감원이 제시한 표준양식에 맞춰 약관을 만든 뒤 판매 허락까지 받아야 하니 금감원 ‘입맛’에 맞기만 하면 괜찮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게 됐다.

보험사가 약관을 보완하려 할 때 금감원이 제동을 거는 일도 잦았다. 보험업계는 2013년에 암의 직접 치료가 뭔지 암보험 약관에 명시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금감원의 반대로 중단했다. 금감원의 반대 논리는 암의 직접 치료 범위를 명시하면 향후 신의료기술이 개발됐을 때 소비자가 보험금을 못 받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암 수술 후 요양병원 입원을 중심으로 암의 직접 치료 여부가 논란이 되자 금감원은 최근 암보험 약관에 암의 직접 치료 범위를 명시하기로 했다. 암의 직접 치료 여부와 관련한 논란에 대해선 대부분 소비자 편을 들어 보험금 지급을 결정하고 있다. 보험사로선 금감원의 개입으로 약관을 변경하지 못했다 피해를 키운 셈이다.


◇금감원에 약관 심사 능력 없다면서 심사는 왜 하나=2016년부터는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정책’에 따라 보험 표준약관이 폐지되고 약관 심사도 사전신고에서 사후신고로 바뀌었다. 장기적으로 약관 심사 자체도 보험협회 중심의 자율 규제로 전환하기로 했다. 보험사가 알아서 약관을 작성하되 책임도 온전히 지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 크게 변한 것은 없다.

10개 보험 상품군의 표준약관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약관 심사도 사후로 바뀌긴 했지만 금감원에 사전에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사전 협의 차원에서 약관을 미리 보고받는 경우가 있다”며 “문제가 있는 내용을 발견하고도 모른 채 할 수는 없어 수정이나 보완을 권고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금감원이 보험 약관에 긴밀히 개입하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보험사에만 돌린다는 점이다. 금감원의 표준약관을 준용해 약관을 만든 자살보험금 사태 때도, 금감원이 약관을 심사해 통과시킨 즉시연금 사태 때도 금감원은 앞장서 보험사를 질타하고 제재하고 압박했을 뿐 공동으로 책임지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 7월25일 국회에 출석해 약관을 심사했던 금감원의 책임을 묻는 지적에 “금감원에 책임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일차적인 책임은 보험사에 있다”며 “수만가지 상품의 약관들을 금감원이 일일이 다 심사해서 적부를 판정할 인력이나 능력이 없다”고 답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감원에 수만가지 약관을 다 심사할 인력이나 능력이 없다면 약관 심사를 하지 말고 약관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해당 보험사를 엄벌하는 것이 맞다”며 “약관을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간섭은 다하면서 책임은 보험사만 지라는 것은 그야말로 무책임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전혜영 기자

터지면 수천억, 보험 약관은 왜 지뢰밭이 됐나
[시한폭탄 고무줄 금융약관]<2>약관은 무조건 작성자 불이익? 법원 판례 엇갈리는데 소송 제약

[MT리포트] '보험사 약관'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금융감독원은 금융상품 약관으로 민원이 제기되면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약관을 작성한 주체가 금융회사인 만큼 약관에 문제가 생기면 금융회사가 책임지라는 취지다. 이른바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이다. 하지만 이 원칙이 오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즉시연금에서 사업비를 떼지 말고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결정이다.

금융학계 한 관계자는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은 약관으로 소비자가 불이익을 입게 되면 작성자인 금융회사가 불이익을 받고 소비자에게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인데 소비자에게 불이익이 없는데도 소비자 편을 들어주는 쪽으로 이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이 원칙이 소비자가 부당한 이익을 얻는 방향으로 이용돼선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의 민원 조정 결정에 금융회사가 불만이 있어도 문제를 제기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점도 문제다. 금감원에 금융상품과 관련해 민원이 제기되면 금감원은 소비자와 금융회사간 조정을 시도하고 실패하면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에 올린다. 민원이 일단 분조위에 올라가면 금융회사가 입장을 설명할 기회가 없고 분조위 결정을 수용하든지, 거부하든지 선택밖에 없다.

분조위 결정을 거절하면 소송으로 가야 하지만 이 경우 금감원이 검사와 제재 등으로 해당 금융회사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 즉시연금 추가 지급과 관련해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등이 소송을 결정한 것도 윤석헌 금감원장이 국회에서 검사 등으로 압박하지 않겠다고 밝힌 뒤였다.

금융회사가 승소했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과거 자살보험금 미지급 사태만 봐도 법원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에 대해선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금감원은 법원 결정과 관계없이 보험사에 검사와 제재 권한을 동원해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까지 다 지급하도록 강제했다.

더 큰 문제는 금감원이 국회에 계류 중인 '금융소비자보호법'에 2000만원 이하의 소액 분쟁에 대해서는 금융회사가 분조위 결정을 무조건 수용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반영하려 한다는 점이다. 금감원은 약관 문제의 경우 분조위 결정을 비슷한 약관에 일괄 적용할 방침이기 때문에 건당 2000만원이 보험사로선 수천억원으로 커질 수도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약관은 미래 상황 변화와 관련한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해석 문제로 분쟁이 생겼을 때 법적 판단을 받고 판례를 쌓는 일이 필요하다"며 "문제는 소송을 하면 소위 금융당국에 찍히게 되니 약관에서 문제가 터지면 퇴로가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분조위 결정을 거부하면 금감원이 검사 등을 통해 중징계를 내릴 수 있어 분조위 결정은 사실 법 위에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약관에 없어도 보험금 줘라? 그때그때 다른 고무줄 잣대=가장 큰 문제는 금융당국이 소비자 보호라는 명목하에 약관에 없는 보험금도 지급을 권고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금감원은 내년부터 판매할 새 암보험 상품 약관에 연명의료결정법에 해당하는 말기암 환자에 대한 치료를 보험금 지급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약관은 지난 10월1일자로 모두 바꿨지만 약관 변경 전부터 금감원은 치료가 어려운 말기암 환자에게 보험금 지급을 권고했다. 암보험은 암의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을 보장하는데 보험사로선 치료가 불가능해 애초에 보험료에 반영하지도 않았고 약관에 지급 규정도 없는 보험금을 금융당국의 권고에 따라 내준 셈이다.

약관에 없던 내용을 당국이 임의로 바꾸는 경우도 있다. 과거에는 장기보험의 질병·수술 담보 약관에 '관혈', 즉 피를 봐야 수술에 해당한다는 정의가 명시돼 있었다. 이후 의학이 발달하면서 레이저 등을 사용해 피를 보지 않는 치료 방법이 늘어나자 금감원은 '기존 수술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경우 피를 보지 않았더라도 소비자 보호를 위해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조항을 약관에 넣도록 했다. 이 결과 수술을 하면 한 번만 지급하면 되는 보험금을 레이저를 통해 여러 번 치료가 이뤄지면서 수차례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경우가 생겼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금감원이 약관 문구 하나까지 따져 보험금을 주라고 하듯 보험사도 엄격히 따지면 약관에 없어 주지 않아도 되는 보험금인데 금감원이 권고하면 기존 계약까지 소급해 줘야 한다"며 "약관에 있어도 주고, 없어도 주라는 건데 이런 식으로 보험료를 받지도 않은 보험금 지급이 늘어나면 보험료가 올라가 선량한 가입자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 생긴다"고 말했다.

전혜영 기자

"상품개발자는 점쟁이?" 40년 후 내다봐야 하는 보험약관
[시한폭탄 고무줄 금융약관]<3>암보험 판매 14년 만에 요양병원 첫 등장, 과거에 없던 리스크에 현재 잣대 적용 리스크 과도

[MT리포트] '보험사 약관'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암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소비자와 보험사간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그 중에서 입원일당 지급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올해 국정감사장에서도 도마에 올랐다. 암보험 입원일당 분쟁에는 요양병원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암보험 약관 상 직접치료 목적일 경우 입원일당을 지급하게 돼 있는데 최근 요양병원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수술 후 요양목적으로 입원한 후 보험금을 청구하는 가입자도 많아 분쟁이 급증한 것이다.

◇40년 후 내다봐야 하는 보험약관= 국내에서 암보험이 처음 판매되기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인 1980년 12월이다. 당시 국내에는 요양병원이 없었다. 요양병원은 1994년부터 공식 설립되기 시작해 2008년 690개, 2011년만 해도 988개였다. 이후 빠르게 늘어나면서 2016년 1428개로 5년간 1.45배 증가했다.

암보험 약관을 처음 만들던 당시는 요양병원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40년 후에 요양병원 입원일당 보험금 지급을 둘러싸고 지금과 같은 분쟁이 벌어질 거라고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보험은 다른 금융상품과 달리 종신 보장을 포함한 장기 상품이 많다. 보험업계에선 시대 상황은 빠르게 변하는 데 약관은 수 십 년 전 만들 당시가 아니라 현시점에 맞춰 적용하라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1~2년 후도 예측하기 어려운데 과거에 상상할 수 없던 상황을 현재 기준을 잣대로 몰랐던 것도 잘못이니 금융회사가 다 책임을 지라고 한다면 미래 예측 리스크가 과도하다"며 "앞으로 보험상품은 점쟁이들이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토로했다.

시대 상황을 반영해 약관에 대한 수정과 보완을 유연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도 금융위원장의 명령에 따라 약관을 바꿀 수 있지만 당국이 직접 나서 해석상 문제가 생길 만한 약관을 사전에 바꾼 경우는 극히 드물다.

백영화 보험연구원 금융법센터 부실장은 "지금은 문제가 된 약관에 대한 개정만 이뤄지기 때문에 새 상품만 적용을 받고 과거 상품은 문제된 약관이 그대로 남아있다"며 "계약내용은 계약할 때 정해지는 거라 임의로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은 문제지만 이 부분에 대한 제도개선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국이 잣대, 합리적 조율할 민간기구 부재= 해외에서는 약관의 해석을 둘러싸고 분쟁이 생겼을 때 민간자율조정 기구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다.

일본은 보험 관련 민원이 발생할 경우 감독당국인 금융청이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보험협회 내 생명보험상담소에 신청한다. 기본적으로 상담소에서 민원을 해결하고 분쟁이 해소되지 않으면 상담소 내 재정심사회가 나서 조율한다.

재정심사회는 생보사와 이해관계가 없는 변호사 등 전문가 3명으로 구성되며 금융청이 지정한다. 일본에서는 보험분쟁이 소송으로 가기 전에 대부분 재정심사회에서 논의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소비자의 수용도도 높다. 실제로 2012년 한 암보험 계약자가 항암제를 맞고 장염에 걸려 25일간 입원했다며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청구한 건에 대해 심사회는 암의 직접 치료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결정했고 계약자는 이를 받아들였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에서는 민간자율조정 기구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문화가 오랜 기간 자리 잡아 사회적으로 신뢰가 생겼다"며 "계약자가 조정 결과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극소수이기 때문에 보험분쟁 사례도 극히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주에서도 소비자 보호조직의 중재가 실패할 경우 주 정부가 인정한 외부 전문중재기관을 활용한다. 건강보험 분쟁은 해당부문 전문의로 구성된 민간 중재기관을 활용하며, 특히 미국중재협회(AAA)는 건강보험 뿐 아니라 손해보험 등 다양한 부분에서 소비자 분쟁을 중재하고 있다.

국내는 금융당국이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를 통해 분쟁을 조정한다. 문제는 분조위는 가급적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결정하는 구조다. 즉시연금 사태도 분조위에서 보험금 지급을 결정했지만 보험사가 불복해 소송으로 간 사례다.

금융권 다른 관계자는 "국내에는 일본의 재정심사회 같은 민간기구가 전무하다보니 역할을 기대할 수 없고 금융당국 중심으로 일방적인 결정이 계속돼 갈등이 커지는 양상"이라며 "약관 해석 등을 둘러싼 불필요한 갈등을 없애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금융회사와 소비자 모두 신뢰할 수 있는 민간자율조정 기구를 설립해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혜영 기자

금융당국, 약관 자율성 안주나 못주나
[시한폭탄 고무줄 금융약관]<4>보험업법 개정안 2년째 국회 표류..금융당국 "소비자 신뢰얻는 게 먼저"

[MT리포트] '보험사 약관'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금융위원회는 지난 2015년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10개의 표준약관을 폐지하고 실손의료보험과 자동차보험의 경우 표준약관 제·개정 권한을 민간 기구인 상품심의위원회에 넘기겠다고 발표했다. 이듬해 김종석 자유한국당의원이 약관 사후보고를 골자로 한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2년 넘게 별다른 진전이 없다.

표준약관 폐지는 금융위 발표 당시부터 논란이 있었다. '규제완화'가 정책 목표였던 박근혜 정부 시절 보험산업은 규제가 가장 강한 분야로 지목됐다. 특히 금융감독원의 약관 사전심사로 인해 "붕어빵 상품을 양산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금융위는 보험가격 자율화와 상품의 사후보고제 전환을 추진했다. 실제 '새로운 위험률'을 이용한 신상품이 아니면 상품을 자율적으로 출시한 뒤 분기마다 금융감독원에 보고하는 사후보고제가 도입됐다.

문제는 실손보험, 자동차보험 등 주요상품 10개의 표준약관이다. 표준약관은 금융위 권한을 위임받은 금감원이 시행세칙에 따라 만들고 각 보험상품에 적용하도록 한다. 표준약관은 △보험금 지급, △계약 전 알릴 의무, △보험계약의 성립과 유지, △계약의 해지와 해지환급금 등 소비자 권리와 관련한 주요 사항을 담고 있다. 이 때문에 금감원은 "표준약관은 상품 자율성과 상관 없는데다, 소비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며 폐지나 제·개정권 이관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지난 2년 동안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사이 '잘못된 약관'으로 인해 자살보험금 문제가 터졌고 이어 즉시연금 사태가 발생했다. 수년 전 만든 약관 문구 하나로 보험산업 전체가 휘청거리고, 보험산업에 대한 신뢰도도 크게 떨어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판박이 상품을 지양하고 경쟁을 촉진하려면 약관에 대한 자율권을 보험회사에 주는 것은 원칙적으로 맞다"면서도 "다만 보험회사의 자율성은 소비자보호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보험업계가 자율권을 달라고 할 만큼 역량을 갖고 있는지, 소비자 신뢰를 받고 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시연금 사태를 계기로 금감원은 보험약관 문제를 포함에 보험산업 근본의 문제점을 찾아 처방전을 내놓겠다며 외부위원으로 구성된 '보험산업 혁신 TF'를 가동 중이다. 또 과거 판매된 상품 가운데 약관 문제가 더 없는지 찾아보기 위해 이달부터 보험회사 자율감리제도를 시행한다. 보험회사 스스로 문제의 약관을 찾아 시정하라는 뜻이다. 이와 함께 보험상품 개발시 보험약관에 대한 법적 검토를 의무화하고 내부 상품개발위원회 운영 등에 대한 내부통제 강화 방안도 추진된다.

권화순 기자

신용카드 약관 변경, 사후보고제로 바뀐다
[시한폭탄 고무줄 금융약관]<5>사전신고제 원칙적 폐지 담은 여전법 개정안 통과…시행령·감독규정 실효성 있게 바뀌어야

[MT리포트] '보험사 약관'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신용카드사의 상품 약관 제정·변경이 사전심사제에서 사후보고제로 전환된다. 현재까지 카드사는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거나 기존 상품의 부가서비스를 변경하려면 금융당국에 먼저 승인을 받아야 했다. 그러다보니 카드사는 상품을 이미 개발해놓고도 제때 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금융당국 역시 모든 상품을 일일이 심사해야 돼 업무적 부담이 커지는 등 부작용이 발생했다.

6일 금융권 및 국회에 따르면 금융상품약관 제·개정시 사전신고를 사후보고로 전환하는 내용을 담은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이 지난 5일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번 개정안은 사전신고제를 원칙적으로 폐지하는 대신 소비자 권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만 사전신고를 하도록 규정했다. 또한 약관 작성시 기준을 마련해 이를 위반했을 때는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개정안은 관련 시행령 및 감독규정 개정 및 준비기간을 고려해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된다.

금융당국이 카드사 상품에 대한 사전심사제를 도입한 것은 2009년 8월부터다. 당시 카드사들이 회원 유치시 이용 의무 및 조건 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거나 일방적으로 부가서비스를 축소하는 행위가 적지 않게 발생하자 이같은 행위를 법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취지에서다. 대표적인 예가 2005년 LG카드(현 신한카드)의 트레블카드 마일리지 적립혜택 축소, 2007년 씨티은행의 아시아나클럽 마스타카드 마일리지 혜택 축소 등이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이전까지 공정거래위원회가 수행했던 카드사 약관심사 업무를 금융위원회로 이관하고 카드사들은 약관 제·개정시 사전 신고하도록 여전법 및 시행령을 개정했다. 사전 신고에 대한 심사는 금융감독원이 금융위 업무 위탁형태로 수행한다.

이로 인해 이전까지 발생했던 부가서비스 일방적 축소 등 피해는 근절됐지만 대신 카드사는 신상품 출시부터 변경까지 모든 업무를 금감원의 승인을 받게 됐다. 카드사가 상품 출시를 위해 약관 제정 심사를 받을 때는 상품 신청서 및 고객에게 제공하는 안내장, 해당 상품의 향후 5년간 손익 추정 계산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금감원은 이같은 개별 상품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약관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모든 카드사들의 신규 상품을 일일이 살펴야 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카드사로서는 계획했던 시기에 상품 출시를 못해 기존 경영계획에 차질이 발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기존 상품의 부가서비스 변경도 마찬가지다. 현행법상 출시 후 의무유지기간 3년이 지나면 카드사는 금감원에 변경 신청을 할 수 있지만 소비자 보호 논리에 밀려 변경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다보니 카드사들은 의무유지기간이 3년으로 바뀐 2016년 이후 약관 변경 승인 신청 자체도 못하는 실정이다.

금감원도 이같은 사전심사제에 어느 정도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 한정된 인력으로 카드사들이 제출한 상품 약관 신청을 모두 심사해야 한다는 점이 시간적으로 부담이 클 뿐더러 변경 허용 역시 명확한 기준이 없다보니 쉽사리 승인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금감원도 이전부터 약관 심사를 사후보고제로 전환하고 대신 감독 및 제재 수준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금융위에 건의해왔다.

이번 여전법 개정으로 사후보고제가 원칙적으로 도입되면서 카드사들의 신규 상품 출시는 이전보다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관건은 예외 적용 기준이다. 소비자 권익에 영향이 크다고 판단되면 사전신고를 유지하기로 정한 만큼 시행령 및 감독규정에서 어떤 기준을 마련할지가 중요하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소비자 권익 관련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사후보고의 범위가 결정될 것"이라며 "기존 상품 서비스의 변경은 여전히 사전신고 체제로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확대된 사후보고의 주체가 어디로 갈 것이냐도 개정법의 실효성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 여전법 시행령은 금융이용자의 권리 및 의무에 불리한 영향이 없거나 표준약관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금감원이 금융위에 약관 업무를 보고하도록 규정한다. 카드업계 다른 관계자는 "금감원의 금융위 보고 체계가 유지되면 자율적으로 상품 약관을 만들어도 금감원을 거쳐야해 사실상 사후보고가 의미 없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명호 기자

일본과 미국 사이, 어정쩡한 약관 규제

[시한폭탄 고무줄 금융약관]<6>표준약관 없는 미국·일본, 약관분쟁 거의 없어…일본식 규제 유지하며 미국식 규제 지향 '모순'

[MT리포트] '보험사 약관'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미국과 일본 등 해외에서는 보험상품과 관련한 표준약관이 없지만 표준약관이 있는 국내보다 약관이 더 통일돼 있고 분쟁도 거의 없다. 일본은 확실한 인가제를 고수하고 미국은 약관 작성부터 전 과정을 자율에 맡기고 있어서다. 반면 국내에서는 금융당국이 사실상 일본식 인가제를 유지하면서 대외적으로는 미국식 자율 규제를 지향하고 있어 모순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철저한 인가제 일본·자율 규제 미국, 어정쩡한 한국=일본은 모든 보험 상품 약관이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는다. 국내에서도 2015년까지 금감원 인가를 엄격히 지켰다. 일본은 당국이 인가를 내면서 약관 문구 등을 통일 시키기 때문에 표준약관이 없어도 한 보험사가 새로운 보장을 만들어 약관 지급기준 등을 작성하면 다른 회사도 같은 문구를 사용한다. 대신 인가를 받는데 평균 3개월 이상이 소요될 정도로 당국이 약관을 철저히 살펴보고 인가한다. 국내는 인가 기간이 45일에서 30일로 줄었고, 2015년에는 15일만에도 인가를 내줬다.

상품 판매 전 모든 상품에 대해 감독당국의 인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약관과 관련한 문제가 생겨도 당국이 같이 책임지는 구조다.

반면 미국은 주별로 규제가 달라 회사가 한 보험사가 상품을 여러 주에 판매할 경우 각 주의 규제에 맞는 약관을 작성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계리컨설팅회사 등 자문단체에서 작성한 모델약관을 구입해 사용하는 사례가 많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약관 모델을 쓰다 보니 감독규정에 정한 표준약관 없이도 문구별 차이가 크지 않다.

판매 전 감독당국의 상품 인가가 필요한 지 여부는 주별로 다른데 뉴욕주 등은 인가가 필요하고 캘리포니아주는 인가가 필요 없다. 인가가 불필요한 주의 경우 약관을 만들 때부터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까지 보험사가 전적으로 책임진다. 다만 미국 생명보험은 정액보험이나 실손보험 등 보험금 지급과 관련해 논란이 많은 상품을 거의 팔지 않고 사망 보장 담보가 주력이다 보니 구조적으로 약관 분쟁이 거의 생기지 않는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국내 보험 상품 약관은 오랜 기간 일본식 직접 규제를 하다가 갑자기 자율성을 주겠다며 미국처럼 풀어주려는 가운데 미스매치(불일치)가 생긴 셈"이라며 "미국과 보험 상품 구성 등이 완전히 다른 데다 자율 규제에 대한 제도적인 준비도 미흡하다 보니 지향하는 바와 달리 현실적으로는 모순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식 약관설명서, 국내서 못주는 이유는= 일본에서는 보험 약관 외에 별도로 약관 설명서를 제공한다. 계약자 입장에서 약관이 어려운 내용이 많다 보니 약관보다 쉽게 이를 풀이한 설명서를 따로 준비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미 10여년 전부터 약관설명서를 제공하는 방식을 검토했으나 업계의 분위기는 부정적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상품설명서에 제대로 나왔는데 약관에 명확하지 않으니 보험금을 주라거나 반대로 약관에는 있지만 상품설명서에는 없으니 주라는 식으로 당국이 기준 없이 고무줄처럼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많이 담을수록 리스크가 커진다"며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불문명한 내용이 한줄이라도 들어가면 나중에 수천억원 폭탄이 될 수 있는데 자발적으로 뭔가를 추가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약관에 명확히 담아야 할 내용에 대한 합의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보험증권, 가입설명서(상품설명서), 약관 등 기초서류 간 관계에 대해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한 장 짜리 보험증권에 많은 설명을 담을 수 없으니 약관을 보라는 것이고, 약관에도 담을 수 없는 자세한 내용은 상품설명서에 넣은 것인데 3가지 서류 간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며 "지금은 약관의 내용이 중요하다지만 나중에 그럼 증권에는 왜 없냐고 책임지라고 했을 때 증권에는 어디까지 담아야 할지 현재 어떤 기준도 없다"고 말했다.

전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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