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올해의 인물들│이영자의 첫 번째 전성기

윤이나(칼럼니스트) ize 기자 2018.12.0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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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ze’는 이번 한 주 동안 2018년에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리고 앞으로도 기억해야할 ‘2018 올해의 인물들’을 선정했다. 하루에 두 명씩, 총 10명이다. 다섯번째 인물은 개그우먼 이영자다.

2018 올해의 인물들│이영자의 첫 번째 전성기


최근 20대들이 이영자의 첫 번째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영자의 전성시대’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실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닌 게 ‘영자의 전성시대’는 SBS가 서울방송으로 출범해 이영자, 신동엽 등의 코미디언을 중심으로 만들었던 ‘기쁜 우리 토요일’의 코너였고, 때는 1995년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태어난 20대가 그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올해 이영자의 활약은 누군가에게는 제2의 전성기가 아니라, 그냥 첫 번째 전성기로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한때 ‘여성 코미디언 중에’라는 수식어를 붙일 이유가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었던 방송인이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기까지의 세월은, 말 그대로 세대가 바뀔 만큼 길었다.



하지만 이영자도, MBC ‘전지적 참견 시점’을 시작하며 목표를 “이영자 대상”으로 내걸었던 송은이도 이영자가 다른 무엇도 아닌 휴게소 먹방으로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리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살아 살아 내 살들아!”가 최고의 유행어였음에도 그 살과 관련된 사건으로 방송을 오랫동안 쉬어야 했음을 생각해보면, 그가 음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음식을 대하는 자세로 다시 사랑받게 된 것은 역설적이기까지 하다. 올해 예능 방송을 통틀어 가장 화제가 되었던 장면 중 하나로 반드시 꼽힐 ‘밥블레스유’의 수영 장면까지 생각하면 언감생심이다. 그의 몸과 음식을 좋아하는 일을 연결지어 폄하하고 평가하며 찍어 눌렀던, 온 미디어가 여성의 육체에 대한 관음과 평가에 거리낌이 없던 야만의 시절을 지나, 이영자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도 많은 이들이 사랑해주고, 박수치는 시대에 도착했다.

그러니까 이영자에게 “당신의 영광의 순간은 언제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미래의 많은 부분이 미정으로 남아있던 나이에 일찍 찾아왔던 전성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라고 답할 게 틀림없다. 그때는 상상조차 못했을 삶의 부침을 겪고 소중했던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럼에도 삶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며 여전히 일하고 있는 지금 말이다. 20대에 ‘금촌댁네 사람들’을 통해 마을 전체를 아우르는 엄마와 같은 역할을 맡았지만, 50살이 넘은 지금 그는 그저 이영자다. 그와 ‘밥블레스유’의 동료들이 지금 한국 방송에 엄마도, 딸도, 며느리도 아닌 자기 이름을 가진 예능인으로서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것이 바뀌었다. 심지어 이영자는 외부에 의한 경력 단절의 시기도 견뎌내고 다시 자기 일로 되돌아와, 50이 넘은 나이에 현역으로 다시 일어난 인물이다. ‘밥블레스유’는 ‘먹방’이나 음식을 통한 상담 그 자체보다는 한국에서 비혼 여성이 살아가고 살아남는 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결혼하지 않고 출산하지 않고 성실히 일하며 자신의 삶을 일궈온 여성들이 거기에 있다.



지금까지 미디어는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특히 어떻게 ‘잘’ 살고 있는지 보여주려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영자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 대충 한 끼를 때우는 대신 자신을 잘 챙기며 잘 먹는 일이 얼마나 행복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 아이처럼 해맑게 묘사하는 모습으로 사랑받는다. 그렇게 나아가는 이영자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그는 첫 패션지 표지모델로 서면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방송 활동을 하며 “지금은 나를 찍고 있지만 내가 영원한 주인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을 남겼다. 이전과 같은 방식의 주인공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 대신 지금 이영자의 곁에는 그와 같은 비혼으로서,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오래 일하고 싶은 여성으로서 그의 옆에서 든든히 그를 서포트하는 동료들이 있다. 그의 길을 따라가려는 후배들이 있다.

방송에서 자주 쓰는 ‘싱글’이라는 단어에 잇대어 홀로 나이 들어가는 외로움을 비추려할 때, 이영자는 비혼으로서 같이 있어서 행복한 오늘을 말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일하고 있는 지금, “이게 바로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 행복이냐고. 못 먹어본 음식이 많아서, 함께 먹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서, 직업인으로 더 잘해내고 싶어서 이영자는 오늘 행복할 것이다. 다시, 행복한 영자의 전성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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