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정우현, 서정진, 조양호

머니투데이 김지산 기자 2018.12.06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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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2주 전 일이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의 이른바 '기내 갑질' 사건이 한 종편에서 보도됐다. 대한항공 승무원 보고서가 화면에 고스란히 나왔다. 셀트리온은 갑질은 없었다고 반박 글을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이 일이 다시 떠오른 건 미스터피자가 코스닥 시장에서 상장폐지 수순에 들어갔다는 뉴스를 접하고서다. 증시에서 미스터피자 패망 스토리는 '오너 갑질→불매운동→실적악화→자본잠식→감사인 의견거절→상장폐지'로 요약된다. 연상작용은 미스터피자와 정우현 회장에서 시작해 대한항공 직원들과 조양호 회장 일가로 이어졌다.

기내 갑질 주인공은 서 회장인데 왜 난데없이 대한항공 얘기냐고?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서 회장이 벌였다는 갑질에 비해 서 회장을 상대로 한 대한항공 직원들의 복수극(보고서 유출)이 윤리적 결함 측면에서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아서다.



또 하나는 미스터피자는 상장폐지로 기업이 망하기 직전까지 갔는데 대한항공은 면허취소(진에어)도 없고 경영도 멀쩡한 게 너무 대비돼서다. 어느 쪽 갑질 정도가 더 심했느냐는 굳이 따져 물을 필요도 없다.

서 회장을 비호 하거나 두둔할 생각은 없다. 셀트리온 반박을 전적으로 믿는 것도 아니다. 진실이 무엇이든 서 회장은 국민적으로 망신살이 뻗친 반면 보고서 유출 관련자들 소식은 오리무중이다. 복수극으로 어제의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는 오늘 역전됐다.

이 사건은 상황에 따라 승객 정보와 일거수일투족을 만천하에 까발릴 수 있다는 대한항공 직원들의 경고일 수 있다. 선량한 승무원에 대한 갑질은 예약거부나 경찰신고로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정상적 방법 대신 복수를 택했다. 통쾌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보편적 직업윤리를 포기한 '3류'라고 스스로에게 낙인을 찍었다.


대한항공 직원들의 일탈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잇따른 조양호 회장 일가 갑질 고발과 느슨해진 내부 통제력 결과일 것이다. 대한항공 전체에 퍼진 윤리의식의 하향 평준화일 수도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조 회장 일가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직원들 변화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다.

노선이 배분되는 지금의 항공산업 구조상 대한항공이 망할 일은 없을 것이다. 절실함 없는 변화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제2, 제3의 서정진이 또 나올지 모르겠다. 갑질의 경중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승무원의 모욕감 정도가 잣대가 되는 순간 누구든 단단히 망신당할 수 있다. 조심해야겠다.
[우보세]정우현, 서정진, 조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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