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마 소녀·오싹한 만화…성장기 접어든 'K애니'의 변신

머니투데이 배영윤 기자 2018.12.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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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캐릭터 다변화된 21세기형 K애니, 뮤지컬·영화·게임 등 캐릭터IP 활용해 매체 확산…글로벌 경쟁력 확보 위해 창작 환경 개선 필요

애니메이션 '신비아파트' 단체 캐릭터 이미지./사진제공=CJ ENM애니메이션 '신비아파트' 단체 캐릭터 이미지./사진제공=CJ ENM


#가냘파 보이지만 당차고 힘센 '소녀' 영웅이 악당들을 물리친다. 학교, 집 등 일상적인 공간에 사연 많은 귀신이 나타나 오싹한 상황이 펼쳐진다. 귀신들은 인간들과 대결구도를 벌이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어린 아이들을 타깃으로 한 요즘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불과 10여년 전만해도 어린이 만화에서 보기 드문 스토리다. 모험심 가득한 소년, 귀여운 동물, 변신하는 로봇 등의 캐릭터가 주를 이뤘고 장르도 코믹, 명랑 등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국내 애니메이션 판도는 그야말로 확 달라졌다. 당찬 여아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애니메이션이 부쩍 늘었다. 호러, 공포, 액션, 무협 등 장르도 다양해졌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수준급 자체 제작 애니메이션이 많아지면서 'K애니'가 'K팝'을 이어 한류를 이끄는 콘텐츠로도 주목받고 있다.



애니메이션 속 여성 캐릭터들. (왼쪽부터)'신비아파트' 시리즈의 '금비', '레인보우 루비'의 '루비', '변신기차, 로봇 트레인 시즌2'의 '지니'./사진제공=CJ ENM애니메이션 속 여성 캐릭터들. (왼쪽부터)'신비아파트' 시리즈의 '금비', '레인보우 루비'의 '루비', '변신기차, 로봇 트레인 시즌2'의 '지니'./사진제공=CJ ENM
◇장르는 '공포·호러', 주인공은 '당찬 소녀'…장르·캐릭터 다변화된 21세기 'K애니'=코믹·명랑물이 주를 이뤘던 과거의 애니메이션의 판도를 뒤흔든 대표적인 작품은 CJ ENM 애니메이션사업본부 스튜디오바주카가 자체 기획한 '신비아파트' 시리즈다. 2016년 '신비아파트 : 고스트볼의 비밀'부터 지난해 '신비아파트 : 고스트볼X의 탄생'에 이어 지난달 '신비아파트 고스트볼X의 탄생 : 두 번째 이야기'까지 세 편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2016~2018년 전체 어린이 채널 프로그램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신비아파트' 시리즈는 학교, 집 등을 배경으로 귀신과 인간의 대결구도 방식으로 전개된다. 호러물을 표방하지만 모두가 힘을 합쳐 귀신의 원한을 풀어준다는 점에 초첨을 맞추고 사랑, 우정 등 휴머니즘 요소를 가미한 탄탄한 스토리로 어린이는 물론 30대 엄마들까지 열혈 시청자로 만들었다.

흥행 비결은 장르 차별성과 한국 정서에 맞는 서사와 캐릭터, 어른과 아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감동적인 스토리로 꼽힌다. 석종서 CJ ENM 애니메이션 제작국장은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이 유아물이나 로봇물, 배틀물 등에 집중돼 있었다"며 "우리가 어렸을 때 '전설의 고향'을 좋아한 것처럼 요즘 아이들이라고 다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앞세우는 것도 요즘 애니메이션의 특징이다. '변신기차, 로봇 트레인 시즌2'에는 이전 시즌에 없던 '지니'와 '맥시'라는 새 여성 캐릭터가 추가됐다. 창의적이고 거침없는 지니는 변신기차들의 브레인으로 리더 역할도 수행한다. 맥시는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긍정 캐릭터로 극 전체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신비아파트 고스트볼X의 탄생:두번째 이야기'에도 여성 캐릭터 '금비'가 새롭게 등장했다. 어리고 약해 보이지만 주인공 '신비'보다 강력한 요술을 부리는 반전 캐릭터로 사랑받고 있다.

3~6세 영유아 타깃의 '레인보우 루비'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부모세대에서도 지지를 받고 있다. 루비는 장난감 마을 레인보우 빌리지 안에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다양한 직업으로 변신해 이를 해결한다. 그동안 남성적인 직업으로 여겨진 비행기 조종사, 보안관, 소방대원, 탐정 등으로 자유자재로 변신한다. '레인보우 루비' 관계자는 "부모 세대에서 '루비'의 인기 배경엔 딸 세대에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길 바라는 마음도 자리잡고 있다"며 "애니메이션 속에는 유리천장도 없고 '꿈꾸는 대로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루비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로는 처음으로 지난 2016년 유네스코 선정 소녀 교육 캠페인 홍보대사에 선정됐고, 북미·유럽·아시아 등 해외 30여개 채널과 배급 계약을 체결했다.

카리스마 소녀·오싹한 만화…성장기 접어든 'K애니'의 변신
◇애니의 성공, 뮤지컬·영화·게임 등으로 가지치기…K애니 수출액도 '껑충'=애니메이션에서의 성공을 다른 장르로 가지치기 하며 먹거리를 확대하는 경향도 두드러진다. CJ ENM은 애니메이션에 이어 영화, 드라마, 뮤지컬, 게임에서도 '신비 신드롬'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7월 개봉한 극장판 '신비아파트: 금빛 도깨비와 비밀의 동굴'은 68만명 관객을 모으며 '국산 애니메이션은 20만명을 넘기기 어렵다'는 시장의 공식을 깼다.

뮤지컬 '신비아파트'는 지난 5월 티켓 오픈 당일 예매사이트에서 아동·가족 공연 부문 1위에 올랐을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연말까지 전국 투어 공연을 진행중이며 내년 1월부터 앵콜공연도 돌입한다. 신비아파트 드라마 버전인 '기억, 하리'는 웹드라마 주시청층인 중고생 타깃으로 새롭게 각색해 유튜브 누적 956만뷰(본편 및 라이브∙메이킹 콘텐츠)를 기록했다. 지난 10월31일엔 모바일게임 '신비아파트 고스트헌터'를 론칭, 한달만에 다운로드 50만건을 돌파해 앱스토어 게임 분야 톱5에 올랐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강자 뽀로로·타요·카봇 등도 TV 애니메이션에서 인기를 얻어 스크린, 무대로 지속적으로 확장중이다. 초이락컨텐츠팩토리가 만든 '극장판 헬로카봇: 백악기 시대'는 지난 8월 개봉해 88만명을 동원해 역대 국산 애니메이션 4위에 올랐다.

이처럼 K애니는 창의적 스토리와 탄탄한 사업성으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국내 애니메이션 기업이 올 한해 미국, 유럽, 중국 등 주요 해외 콘텐츠마켓에서 약 1억4000만 달러의 수출 성과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약 30% 이상 증가한 규모다. 방영권, 전송권 등 수출이 전체의 약 70%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해외 기업과 공동제작이 약 15%인 것으로 나타났다.

애니메이션 업계 관계자는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캐릭터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한 산업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져 향후 키덜트를 위한 애니메이션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동시에 차세대 '뽀로로'를 꿈꾸는 영유아 대상 애니메이션 트렌드가 지속되며 테마파크, 키즈카페 등 캐릭터를 활용한 사례가 꾸준히 늘어나는 만큼 다양한 영역으로 산업이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K애니'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창작자들이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 애니메이션 창작 업체들은 투자금 회수를 위해 성공 확률이 높은 애니메이션만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높은 것이 사실"이라며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추려면 다른 시각에서 애니메이션을 기획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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