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 파운드 펀딩 '차이나밸리' 입지 착착

머니투데이 케임브리지(영국)=류준영 기자 2018.12.03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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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첨단기술산업 집적지 케임브리지 사이언스파크…"대학도시 이점 살려"

편집자주 유럽연합(EU)이 회원국에 혁신 클러스터(첨단단지) 정책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과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면서 이를 극복할 대안으로 지역·실물경제·다양성을 강조한 혁신 클러스터 정책에 주목하고 있는 것. EU에 따르면 현재 유럽 전체 일자리의 약 38%는 2000여개 클러스터에서 나왔다. 한국은 저성장과 실업난의 악순환 속에 탈출구 모색이 절실한 상황이다. 본지는 유럽 주요국 중 과학기술 혁신을 기반으로 첨단산업을 육성 중인 곳을 찾아 혁신 클러스터 현황과 국내 시사점을 조망해봤다.

재닛 워커 사이언스파크 단장이 케임브리지사이언스파크 지도를 보며 설명하고 있다/사진=류준영 기자 재닛 워커 사이언스파크 단장이 케임브리지사이언스파크 지도를 보며 설명하고 있다/사진=류준영 기자


해리포터가 마법학교 호그와트에 입학하기 위해 벽을 뚫고 돌진했던 기차역 런던 킹크로스. 지난달 26일 소설·영화의 배경이 됐던 이 역에서 급행열차로 40분 남짓 달려 케임브리지 노스(Cambridge North)역에 도착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혁신 클러스터 케임브리지 사이언스파크를 연결하는 관문이다. 이곳에서 직선거리로 약 200m, 도보 3분 거리에 사이언스파크의 본부격인 창업지원센터가 있다. 대학·기업 간 공동연구 및 협력 프로그램, 기술창업, M&A(인수합병) 등을 지원·관리하는 중추기관이다.

독보적인 산·학 협력 운영시스템을 갖춘 사이언스파크는 영국 첨단기술 산업의 집적지로 미국 실리콘밸리에 비견된다. 과학자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스티븐 호킹, 경제학자 존 케인스 등을 배출한 케임브리지 대학을 중심으로 1976년 첫 기업을 받았다.



 찰스 코튼 교수/사진=류준영 기자 찰스 코튼 교수/사진=류준영 기자
현재 48km 반경내에 라이프사이언스&헬스케어, 컴퓨팅, 클린테크, 핀테크, 바이오 등 다양한 테마의 클러스터가 20개 구축돼 있고 아마존, 애플, 구글, 인텔 등 62개 글로벌 대기업을 포함한 105개 입주사, 총 57개 대형빌딩에 65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대기업 가운데 미국 회사가 27개(44%)로 가장 많지만 최근엔 중국기업 진출이 한창이다. 현재 입주를 완료한 중국기업은 총 5개지만 2억 파운드(약 3000억원) 펀딩을 앞세워 급격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창업지원센터에서 만난 대학·기업 네트워크 관리운영자 찰스 코튼 교수는 “중국기업들이 이곳에 들어온 지는 5년밖에 안됐지만, 케임브리지 전체가 빠른 속도로 차이나타운화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라고 평했다. 알리바바, 화웨이 등이 사이언스파크 창업보육지원센터에서 대학·기업 간 네트워크 파티인 ‘중국의 밤’을 열기도 한다.

주목할 점은 바이오 관련 중국 기업들의 입주 상담이 부쩍 늘었다는 것. 바이오 기업에 주로 투자하는 중국 투자사 ‘투스(Tus) 홀딩’이 지난해 합류했고, 올해는 DNA(유전자) 분석전문기업 노보진(Novogene)이 새 식구가 됐다. 재닛 워커 사이언스파크 단장은 “중국 투자가 매우 전략적”이라고 귀띔했다.

이 곳 지도를 꺼내 든 워커 단장이 손가락 끝으로 가리킨 영역은 중국 깃발이 꽂힌 일명 ‘차이나 밸리’. 케임브리지 바이오 클러스터에선 아덴브룩스 병원이 대규모 바이오메디컬센터를 짓고 있다. 워커 단장은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도 이곳으로 본사를 이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근 케임브리지 대학병원은 연구인력인 박사후연구원(Post doctor)이 4500여명 정도다. 또 영국 국영 의료기관 NHS와 연계된 임상 등의 의료 데이터베이스(DB) 수집·관리체계도 최근 고도화를 이뤘다.

재닛 워커 사이언스파크 단장/사진=류준영 기자 재닛 워커 사이언스파크 단장/사진=류준영 기자
이밖에 케임브리지에는 기능유전학 연구전문 바브라햄연구소를 비롯해 유럽생물정보학연구소(EBI), 분자생물학연구소, 생명공학연구소, 유전학단백질공학센터 등이 입주해 있다. 세계적 수준의 의학·유전학 연구를 효과적으로 추진할 산·학·연 협력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져 있다는 설명이다.

1953년 DNA(유전자) 구조를 처음 밝히고, 인간 유전자 정보를 자세히 규명해 불치병·만성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제공하는 ‘인간게놈지도’를 세계 최초로 제안한 나라는 영국이다. 하지만 R&D(연구·개발)에만 몰두한 나머지 R&D 상용화·실용화로 재빠르게 치고 나간 미국에 바이오 기술 원조(元祖)국이란 타이틀을 넘겨줬다.

영국은 설욕을 위해 케임브리지 사이언스파크를 중심으로 바이오 산업화를 집중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이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파트너로서 위치를 굳혀가고 있다.

워커 단장은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신약 개발처럼 오늘날 R&D와 비즈니스의 흥미로운 점은 다양한 분야들이 합쳐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대학도시’라는 이점을 살려 새로운 시대적 조류에 부합한 산업 혁신을 이뤄나가는 첨단 클러스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국 교육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단단하다”며 “인재를 활용한 산업에서 큰 성과를 이뤄낸 역사가 있는 만큼 이런 강점을 십분 활용한다면 실리콘밸리나 케임브리지와는 또다른 독창적 사이언스파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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