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그가 새벽 3시에 깨는 이유…'직장'예술가 마감하는 판소리명인

머니투데이 배영윤 기자 2018.11.30 06:00

[피플] 지기학 국립민속국악원 예술감독

지기학 국립민속국악원 예술감독/사진제공=국립국악원지기학 국립민속국악원 예술감독/사진제공=국립국악원
지기학 국립민속국악원 예술감독(사진·54)은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소리' 연습을 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소리로 하루를 시작하는 건 '본질'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지난 26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에서 그를 만났다. 지 감독은 내년 1월이면 21년간 몸담았던 국립민속국악원을 떠난다. '직장 예술가'에서 '자유 예술가'가 되는 전환기를 맞는 것. 국립민속국악원이란 안정적인 담장을 넘어 더 넓은 곳으로 나가 자신이 생각하는 본질, 즉 '판소리'에 집중하겠다는 각오가 단단했다.

지 감독은 20년 넘게 창극 극작과 연출을 해온 창극 전문가지만 진짜 전공분야는 '판소리'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적벽가 이수자다. 창극이 소리꾼 여러명이 함께하는 연극이라면, 판소리는 소리꾼 한 명이 온전히 하나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모노드라마다. 그는 "더 좋은 창극이 나오려면 창극의 원형인 판소리가 잘 만들어져야 한다"며 "A라는 작품이 있다면 '판소리 A'를 바탕으로 한 '창극 A'가 공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기학 국립민속국악원 예술감독/사진제공=국립국악원지기학 국립민속국악원 예술감독/사진제공=국립국악원
"창극이 서구적인 극장에서 이뤄지다보니 처음엔 저도 '연극적 관점'에서만 바라봤죠. 무대 세트도 많이 놓고요. 하지만 판소리는 세트가 필요없죠. 소리꾼 혼자하는 '이야기'로 모든 것을 이끌어가죠. 판소리적인 것을 어떻게 하면 잘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보니 무대 세트도 점점 단순해지더라고요. 대신 소리꾼의 이야기에 관객들이 더 집중하게돼죠. 요즘 표현으로 '미니멀리즘의 극치'라고 할까요."

'지기학표 창극'은 늘 세련됐다는 평을 받았다. 그가 연출한 춘향전만도 4가지 버전이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창극 형태의 춘향전부터 내용과 형식을 완전히 재해석한 '빅터 춘향', '춘향 실록' 등이다. 특히 춘향이 옥중에서 죽고 몽룡과 재회하지 못한다는 파격적인 설정의 '춘향 실록'을 가장 애착가는 작품으로 꼽았다.

민속국악원 예술감독으로서 마지막 작품인 창극 '마당을 나온 암탉' 역시 새롭다. 동명의 베스트셀러 동화를 원작으로, 10년 전에 가족음악극으로 초연했던 작품을 전통 판소리를 담을 창극으로 재탄생시켰다. 양계장 속 암탉 '잎새'가 우연히 문틈 사이로 마당의 닭들을 보게 되면서 알을 품어 아이들(병아리)의 탄생을 보고 싶다는 꿈을 안고 양계장을 떠나 꿈을 이루는 이야기다.

지기학 국립민속국악원 예술감독/사진제공=국립국악원지기학 국립민속국악원 예술감독/사진제공=국립국악원
그는 "양계장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라면, 일상에서 번뜩이는 깨달음 같은 내 삶을 들여다보는 순간이 있는데 그걸 잎새가 문틈 사이로 바라보는 순간과 연결지었다"며 "그 문장에 집중해 모성애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어머니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이야기로 풀어냈다"고 말했다. 이어 "시간이 허락했다면 '마당을 나온 암탉' 역시 판소리로 먼저 짰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앞으로 그는 '새로운 판소리'를 짜는 데 더욱 집중할 생각이다. 새로운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작품을 만들겠다는 포부도 내비쳤다. 그는 "판소리를 박물관에 들어가 있을 법한 전통으로만 여기는데, 전통 예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중화보다 고급화에 초점을 맞춰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판소리는 우리말, 우리 언어가 가진 미감을 최대화시킨 예술 장르예요. 그런 면에서 현대의 어떤 언어도 판소리로 만들 수 있죠. 부정적인 의미의 전통이란 틀 안에 가둬버리면 아무것도 못해요. 어렵더라도 더 많은 소리꾼들이 새로운 판소리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판소리와 창극이 서로 보완하면서 발전할 수 있도록 제 역할을 계속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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