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빅토리아 시크릿…"이제 '섹시'는 안 먹힌다"

머니투데이 정한결 기자 2018.11.18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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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하락하며 모기업 주가도 전년대비 40% 급락…
"여성의 가치관 바뀌어, 섹시함보다 편한 것 추구"

빅토리아 시크릿이 지난 8일 개최한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서 모델들이 포즈를 위하고 있다./AFPBBNews=뉴스1빅토리아 시크릿이 지난 8일 개최한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서 모델들이 포즈를 위하고 있다./AFPBBNews=뉴스1


여성 속옷 트렌드를 주도해온 빅토리아 시크릿의 부진이 길어지고 있다. 지난 14일(현지시간)에는 실적 부진에 최고경영자(CEO)가 사임했으며, 최근 회사 정체성과 관련한 홍보책임자의 발언이 여론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빅토리아 시크릿이 소비자의 변화를 읽지 못해 위기를 맞았다고 보고 있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모기업 L브랜드의 주가는 현재 35.28달러로 1년 전보다 40%가량 추락했다. 이는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실적 부진이 이유다.

시장조사기관 이마케터에 따르면 빅토리아 시크릿은 2015년 매출이 전년비 6.4% 성장했으나 2016년 성장률이 1.4%에 그쳤으며, 지난해에는 -5.1%(매출액 73억8700만달러)로 역성장했다. 특히 지난해 2분기와 3분기 매출은 전년대비 14% 급락했다. 올해 2, 3분기에도 매출 성장률이 각각 1%와 -1%로 기저효과도 얻지 못하고 부진을 이어갔다.



이로 인해 14일에는 얀 싱어 빅토리아 시크릿 총괄 CEO가 사임했고, 에슬레저(스포츠용 속옷) 브랜드 핑크(PINK)의 데니스 랜드맨 CEO도 올해 말에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업계 1위인 빅토리아 시크릿은 그동안 섹시 콘셉트의 속옷들을 내세워왔다. 회사가 매년 여는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는 날씬한 슈퍼모델들이 란제리 속옷을 입고 런웨이에 오르며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빅토리아 시크릿은 이를 두고 "판타지(환상)를 제공하는 특별한 엔터테인먼트"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를 두고 빅토리아 시크릿의 정체성이 시대에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 "여성 소비자들이 다른 형태의 속옷과 다른 가치관을 추구하고 있다"고 이 업체의 부진 이유를 설명했다. "남성에게 (성적) 환상을 주는 60달러짜리 불편한 속옷보다 저렴하고 입기 편한 것을 찾는다"는 것이다. 폴 레위즈 시티뱅크 분석가도 "(빅토리아 시크릿이) 감을 잃었다"면서 "이제 여성들은 남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란제리를 구매하는 틀에 박힌 슈퍼모델 이미지를 거부한다"고 분석했다.


최근 에드 라젝 L브랜드 홍보책임자(CMO)는 "트렌스젠더 모델은 (회사가 추구하는) '판타지'를 주지 못한다"고 발언했다가 맹비난을 받고 사과를 해야 했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빠진 자리는 새로운 브랜드들이 대체했다. 아메리칸이글의 에어리는 '진짜 몸매(Aerie real)'를 슬로건으로 내걸며 모델 사진을 편집하지 않겠다는 광고 캠페인을 벌였다. 최근 급성장한 신생 브랜드 서드러브는 모든 연령대, 인종, 사이즈에 맞는 속옷 제품을 판매한다. 빅토리아 시크릿이 날씬한 여성을 중심으로 36여개 사이즈를 제공하는 반면 서드러브는 70여개를 제공한다.

이 같은 소비 성향 변화에 빅토리아 시크릿도 최근 스포츠브라 제품을 두 배 가까이 늘리고 브라렛(언더와이어와 패드가 없는 브라)까지 출시했지만 아직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기업 이미지를 이끌어온 '섹시함'이 이제 기업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다. 미국 금융기업 웰스파고가 실시한 소비자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68%가 빅토리아 시크릿을 예전처럼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특히 응답자의 60%는 빅토리아 시크릿의 브랜드 이미지가 "가짜" 또는 "억지"라고 느낀다고 전했다. 사진사 니키 맥킨은 NYT에 "빅토리아 시크릿의 모델들은 아름답지만 현실성이 없다"며 "우리 사회가 여성과 여성의 신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반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유방 절제술을 받아 브라를 착용하지 않는다.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의 인기도 급감했다. 2013년에는 970만 명의 시청자가 이 패션쇼를 시청했지만, 지난해에는 500만 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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