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금감원이 마련한 킥스 초안을 적용하면 대다수 생명보험사의 RBC비율(보험금 지급여력비율)이 100% 미만으로 떨어져 업계가 수용할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기에 ‘보험논리’에 치중할 게 아니라 주식·채권시장과 국내 경제에 미칠 파장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게 금융위의 시각이다.
금융위는 ‘보험자본 건전성 강화 선진화 추진단’을 만들고 금감원뿐만 아니라 한국개발연구원(KDI), 금융연구원, 자본시장연구원, 예금보험공사 등이 공동 참여하는 별도 자문기구를 두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단장은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이 맡는다. 추진단은 빠르면 다음달쯤 만들어진다. 킥스뿐 아니라 비은행권 거시건전성 강화, 총체적 감독체계 등도 다룰 것으로 보인다.
1차 평가에서는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대형 생보사조차 RBC가 40~100% 수준으로 절반 이상으로 급락하면서 업계의 불안감이 고조됐다. 금감원이 보험사들의 수용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기준을 너무 높게 잡은게 아니냐는 읍소도 나왔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충격을 주지 않기 위해 유럽과 마찬가지로 단계 도입을 줄곧 밝혀 왔다“고 강조했다.
◇국내 금융시장 영향도 고려…부담 완화될까=금융위는 자문단의 자문을 받아 킥스를 도입할 때 국내 주식·채권시장의 상황과 경제에 미칠 영향도 충분히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킥스 초안에 따르면 보험사가 주식을 보유하면 위험가중치가 종전 12%에서 15~20%로 올라가 요구자본량이 늘어난다. 이 때문에 주식시장의 ‘큰손’ 투자자인 보험사들이 최근 몇 년간 주식 보유를 꺼려 국내 증시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형 생보사들은 과거 수십조원어치의 주식을 보유했으나 최근엔 수천억원대로 투자 규모를 확 줄였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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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업계에선 유럽의 감독회계 방식을 따르는 킥스는 자산과 부채의 잔존만기(듀레이션)가 불일치하면 금리 리스크가 올라가 요구자본량이 크게 늘어나는데 이 부분이 국내 실정과 맞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유럽은 자산·부채 듀레이션이 7년 내외로 비슷해 금리 리스크가 크지 않지만 수십년 만기의 장기보험을 많이 팔아온 국내 보험사는 평균 부채 듀레이션이 15년이 넘는 반면 자산 듀레이션이 10년 이내로 짧아 요구자본량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보험사들로선 자산 듀레이션을 늘려야 하는데 국내 시장엔 장기채권이 부족하다 보니 수년 전부터 해외 채권시장으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킥스 자문기구에 KDI와 자본시장연구원 참여가 검토되는 것은 이 같은 ‘한국 사정’을 고려한 도입 방안 마련을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자본력을 지금보다 키워야 하는 것은 맞지만 킥스 도입으로 요구자본량이 갑자기 늘어나면 ROE(자기자본이익률)가 급락할 수 있다”며 “이 경우 자본확충을 위해 주주나 투자자에게 손을 벌리는게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3개 대형 생보사의 ROE는 현재 약 4~6% 이지만 킥스 초안을 적용하면 1~2%대로 떨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보험업계 일각에서는 금융위 주도의 추진단에서 킥스 도입 방안이 마련되면 보험사 수용성이 높아지고 타 업권과의 균형도 잡힐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다만 재해·장수·해지 리스크 등을 킥스에 반영하려면 금융위 권한인 감독규정 개정이 필수인데 금융위가 그간 손을 놓고 있다 너무 늦게 도입 방안 검토를 시작한다는 비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