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 등 위에 올라가 있는 반려견 똘이(몰티즈, 4살). 원래 배 위에 올라가 있는 걸 더 좋아했는데, 형의 배가 점점 나오고 경사가 심해지면서, 올라가 있는 걸 불편해 했다. 그래서 요즘은 등을 더 선호한다./사진=남형도 기자 아내
'똘이'를 처음 만난 건 4년 전이었다. 아내가 연애할 때부터 키우던 하얀 몰티즈였다. 반곱슬 보드라운 털이 북실북실했다. 초면에 녀석은 대뜸, 종아리 위에 올라왔다. 그리곤 고개를 편히 내려놓았다. "얘 봐라" 하며 질투하던 아내도 아랑곳 않고. 결혼한 뒤엔 처가서 키웠다. 그래도 엄마·아빠(장모님·장인어른)보다 형(기자)을 더 따랐다. 가족들 중 가장 반겼고, 현관에 앉아 형을 기다리기도 하고. 잘 놀아줘서 그런가 싶었다.
문득 정신이 든 건 '아롱이' 때문이었다. 국민학교(그땐 초등학교를 그렇게 부름) 4학년 때부터 키우던 스피츠 믹스견이었다. 쫑긋한 귀, 동그란 눈, 하얀색 털에 갈색이 드문드문 섞인. 성깔이 장난 아녔지만, 가장 소중한 막내였다. 고3 수험생 때, 모든 가족이 잠든 새벽에 와도 녀석은 꼬릴 흔들며 반겼다. 물론 오래 질척거리면 화냈지만. 17년 살고 무지개다릴 건넜다. 한 언론사 합숙 면접을 보느라 마지막도 못 챙겼다. 면접비로 꽃 한다발을 사고, 그 길로 달려왔다. 차디찬 녀석을 안고, 눈물이 안 나올 때까지 울었다.
그래서 똘이와 온전히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더 늦기 전에. 한창 뛰어다닐 수 있을 때. 이를 기록하고 싶었다. '체헐리즘' 발제를 했더니, 부장이 갸우뚱했다. '격렬하게, 아무 것도 안해봤다'를 쓰겠다 했을 때 봤던 표정이었다. 그래서 재빨리 말했다. "부장, 아무 것도 안해봤다 기사 때 댓글에 칭찬 일색이었습니다. 이런 기사를 허락해준 상사가 훌륭하다고요." 부장이 미소 지었다. 성공이었다. 체험은 14일 하루를 잡았다.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함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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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놀아보자, 똘이야"
"형, 왜 이제 왔어? 나 완전 신남"/사진=남형도 기자
집에 와 내려주니, 금세 난리가 났다. 방마다 미친듯이 뛰어 다녔다. 그럴 줄 알고 미리 이불을 다 깔아뒀었다(그래야 좋아한다). 그걸 보고 트레이닝복 바지를 걷어붙였다. "그래, 오늘 제대로 함 놀아보자. 원 없이 놀아보자"고 얘기했다. 기분이 좋은듯, 꼬릴 흔들었다.
놀이 종류는 총 6가지였다. △무서운듯 도망가기 놀이 △딸랑이 던져주기 △딸랑이 어느 손 △터그놀이(줄다리기) △노즈워킹(후각 자극) △숨바꼭질 등이었다. 모두 끝나면 '하얗게 불타겠구나' 싶었다.
반려견 똘이와 '무서운듯 도망가기 놀이'를 하고 있는 남기자. '와아아앙'하면서 두려운듯 빠르게 도망가는 게 놀이의 핵심이다. 놀다보니 너무 더워서 트레이닝복 바지를 걷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삼각대 셀프 카메라
똘이에게 '딸랑이(방울이 든 공)'는 분신이나 마찬가지다. 늘 입에 물고 산다. 던지기 놀이를 하고 있는 남기자. 저 상태에서 조금만 더 기다리게 하면 빨리 달라며 매달린다./사진=남형도 기자 왼손
'딸랑이 어느 손'도 연장선상에 있다. 똘이 지능을 향상시키는 놀이다(근거는 없음). 양손에 딸랑이를 감싸고 있다가, 딸랑이를 한쪽 손에만 쥔다. 그리고 "어느 손?" 하면서 양 주먹을 똘이에게 내보인다. 그러면 똘이가 딸랑이가 어딨는지 맞춘다. 정답 확률은 약 90% 정도 됐다(똑똑).
'숨바꼭질'은 딸랑이를 던진 뒤, 집안 한 구석에 몰래 숨는 놀이다. 보통 문 뒤나, 침대 위에 납작 엎드려 숨는다(강아지 시야에서 안 보이므로). 그러면 똘이가 찾으러 다닌다. 통상 반려견들은 사냥을 좋아하는 습성 때문에 숨바꼭질을 즐긴다고 한다. 똘이에게 발각되면 즉시 인정해야 한다. 계속 모른척하고 있으면, 돼지처럼 '킁킁' 소릴 낸다.
그리고 '터그놀이'는 밥푸리 인형 양팔을 한쪽씩 쥐고, 줄다리기 하듯 밀고 당기는 놀이다. 스트레스 완화와 신뢰 쌓기에 좋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노즈워킹'은 간식방석에 간식을 곳곳에 숨겨두고, 똘이가 찾게끔 하는 놀이다. 수십개로 조각난 천 뒤에 숨겨진 간식을, 후각을 써서 찾는 원리다. 타고난 후각을 활용하게 해주고, 스트레스 푸는데 좋다고 한다.
"형, 빨리 그 손 놔, 크르릉". 터그 놀이를 하고 있는 똘이와 남기자./사진=남형도 기자
처음 만들어 준 수제 간식, "형, 더 내놔"
처음으로 수제 간식(황태당근브로콜리계란국)을 만들어줬다. 건더기만 건져서 식힌 뒤 똘이에게 줬다. 꼬리를 흔들며 빨리 달라고 애잔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정확히 3분 만에 다 먹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수제간식 종류는 '황태당근브로콜리계란국', 보양식이었다. 황태는 칼슘과 단백질이 많아 면역력 강화와 체력 회복에 좋다고 한다. 계란은 비타민이 풍부하고, 당근은 코와 눈 건강에 좋다고 했다. 브로콜리는 비타민C와 식이섬유가 풍부하단다(단, 소화불량 일으킬 수 있으니 소량만).
황태는 채로된 걸 사서, 남아 있는 가시를 제거한 뒤 물에 넣어뒀다. 염분을 없애기 위해서다. 한 두 시간 넣은 뒤 빼니, 짭쪼름한 맛이 없었다. 당근은 잘게 썰고, 브로콜리 역시 잘게 썰었다. 그리고 계란을 풀어 저은 뒤, 당근·브로콜리와 합쳤다. 이를 황태 끓인 물에 넣어 푹 익혔다. 다 끓인 뒤 채로 건더기만 건졌다. 뜨거워서 10분간 식혔다.
준비하는 새 똘이가 전기장판을 뒤집어 놨다. "뭐하냐"고 하자 글쎄 모른척 했다. 수제간식을 그릇에 담으니, 이미 냄새를 맡은 눈치였다. 부엌을 왔다갔다 하며 빨리 달라고 보챘다. 그릇을 내려놓자마자 똘이는 코를 박았다. 내일은 없을 것처럼,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정확히 3분 만에 다 사라졌다. 당근 몇 조각 남겨놨다가, 망설였다가, 마지막에 깨끗히 먹었다. 아쉬운듯 그릇 주위를 5분 넘게 계속 맴돌았다. "형, 더 있는 것 알아. 빨리 더 줘"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안 주자, 팔뚝을 핥기도 했다.
"형, 수제간식 더 없어? 진심이야?"/사진=남형도 기자
음악 듣고, 산책하고, 주물러주기
"아이고 피곤하다" 쉬고 있는 똘이와 남기자. 사실 기자는 아직 잠들지 않은 상태, 잠자는 척하고 있다. 사진을 찍고 잤다./사진=남형도 기자 셀프카메라
눈을 뜨니 똘이가 옆에 누워 있었다. 털을 쓰다듬었다. 옥시토신(행복의 호르몬)이 분비되는듯 했다. 잠에서 덜 깬 이 때가 귀여움 만렙(레벨이 최대치로 성장한 것). 머리맡에 와서, 간지럽게 털을 마구 부볐다. 한참을 쓰다듬고 뒹굴며 잠을 깨웠다.
"산책하기 싫어, 빨리 들어가자"/사진=남형도 기자
돌아와선 '강아지가 좋아하는 음악'을 검색해 틀어줬다. 심신안정과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고 했다. 똘이는 가라 앉긴 커녕, 또 놀자고 했다. 그래서 앞에서 했던, 6가지 놀이를 다시 반복했다. 1시간 쯤 더 논 뒤에야 차분해졌다. 전기 난로 앞에 방석을 깔았더니, 거기에 앉았다. 그래서 마사지를 해줬다. 어깨 관절, 목덜미, 앞발, 뒷발, 몸통을 차례로 꾹꾹 눌렀다. 얌전히 있었다. 시원한 모양이었다. 이따금씩 뒤를 돌아보면, "기분 좋지?"하고 물었다. 피로가 풀리는듯 했다.
지칠 줄 몰랐다, "많이 심심했구나"
"집에 가기 싫어, 더 놀고 싶어"/사진=남형도 기자
헥헥 거렸고, 분명 평상시와 다른 하루에 지쳤을텐데. 그럼에도 그렇게 놀아달라고 했다. 지금껏 많이 심심했구나 싶었다. 애써 달래서, 처가에 데려다 놓았다. 거실에 내려 놓으니 또 반겼다. "왜 이래, 하루 종일 같이 있었잖아"라 했다. 돌아가려는데 현관까지 쫓아 나왔다. 뒤돌아보다 눈이 마주쳤다. 늘 그랬듯 태연하게 인사했다. "또 올게, 똘이야."
똘이가 남기고 간 여운은 길었다. 아내가 늦게오는 터라, 텅 빈 집안에 '잔상'만 떠 다녔다.
집중해서 하루를 보내니, 소소한 것들을 더 많이 알게 됐다. 이불에 딸랑이를 파묻고, 앞발로 파헤쳐 꺼내는 걸 좋아한단 것, 냄새 맡을 때 코 양 옆에 난 잔털이 씰룩 거린다는 것, 오른쪽 뒷발을 들고 쉬 한 다음 냄새를 한 번 킁 맡는다는 것, 창 밖에 날아다니는 새와 싸운다는 것, 말을 절반 이상 알아 듣는다는 것, 소심하지만 호기심이 참 많다는 것, 나를 늘 바라본다는 것. 그리고 내겐 조금은 단조로운 놀이도, 똘이는 무척 행복해한다는 것. 그게 똘이에게 전부라는 것. 행복하게 해주려 시작한 하루인데, 내가 더 행복해졌다는 것도.
아롱이가 떠났을 때도 그런 게 참 힘들었었다. 분명 집에 없는데,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베란다서 쉬할 때, 신문지를 부스럭거리던 소리. 그 소리가 새벽에 괜히 들렸다. 그런 일상들이 다 행복이었다.
반려인들 맘도 다 그랬다, "놀아주고 싶죠"
/그래픽=유정수 디자인기자
반려인들도 대부분 같았다. 바빠서, 각자 일상을 보내느라, 반려견·반려묘와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다고 했다. 때론 마음도 아프다고 했다. 함께, 더 많이 있지 못해서 미안하고 속상하다고 했다.
직장인 이소영씨(29)는 웰시코기 몽이(1살)를 키우고 있다. 평일엔 남편과 맞벌이를 하느라, 오전 8시에 집을 나가서 8시는 돼야 돌아온다. 씻고, 집안일 하고, 쉬고하면 몽이를 볼 시간은 1~2시간 남짓. 30분 정도 산책하지만, 그마저도 피곤할 땐 못한다. 이씨는 "걱정되서 집에 카메라를 달아놨는데, 하루 종일 풀죽어 있는 걸 보면 너무 속상하다"고 했다.
같이 있을 때도, 밀도 있게 못 보낸다는 이들도 많았다. 마음이(불독, 3살)를 키우는 직장인 이미영씨(32)는 "함께 있을 땐 그냥 같이 있거나 쓰다듬어 준다"며 "평소 스마트폰을 많이 하느라 제대로 같이 못 보낸 것 같다"고 했다. 이씨는 "딴짓을 하고 있으면 마음이가 옆에 가만히 있거나, 잠을 자는 것 같다"고 했다.
바구니 안에 딸랑이를 넣었더니, 꺼내보겠다고 옆에 난 구멍에 입을 넣은 똘이. 사진을 찍은 뒤 설정샷을 만들어 봤다./사진=남형도 기자
동물행동심리전문가 한준우 서울연희실용전문학교 교수는 "반려견이 사람과 살아온 게 1만5000년 정도 됐는데, 사람에게 잘 보여야 생존이나 종족번식이 가능하다고 유전화가 돼 있다"며 "관심 받는 게 최고 행복이고 낙(樂)"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관심을 애타게 기다리는 반려견들 눈을 보면 슬퍼 보인다"고 했다.
바쁜 보호자들이 반려견들과 시간을 잘 보내려면, '규칙적인 일상'을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반려견은 정해진 시간에 반복하는 일상에 익숙해지게 하는 게 좋다"며 "예를 들면 아침 회사 가기 전이나 돌아오고 난 다음에 충분히 산책을 해주고, (일정 시간에) 적절한 사료와 물을 공급하는 것"이라고 했다. 낮에 혼자 있는 시간에는 반려견들도 잠을 자기 때문에 두고, 다른 시간에 충분히 관심을 주며 교감을 하고 운동량을 채워주란 것이다.
여의치 않을 경우엔 '반려견 품앗이'를 이용하라고 했다. 이 대표는 "친구나 친지, 동물을 기르는 이웃들과 작은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서로 바쁠 때 밥을 준다거나 산책을 시켜주는 등 도움을 받는 걸 추천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반려견을 기르기 전에 시간과 경제적 상황, 결혼 등을 충분히 고려한 다음에 입양하는 게 가장 좋다"고 조언했다.
하루 같이 보낸 똘이를 마사지해주고 있다. 지압점을 정확히 꾹꾹 눌러야 좋아한다. 성의 없이 하면 안된다./사진=남형도 기자 삼각대 셀프 카메라
그 때 그런 생각을 했다. 똘이 삶도 언젠간 이렇게 다할 거라는 걸. 함께 보낸 시간이 무척 그리워질 거란 걸. 똘이와 보낸 하루는, 사실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이라는 걸(강아지 1살은 사람 나이로 6~7살). 반대로 하루를 무심히 놔둔 채 보내면, 일주일을 기다린단 것도.
지금 이 순간 나는 알아 왠지는 몰라 그냥 알아
언젠가 너로 인해 많이 울게 될 거라는 걸 알아
궁금한 듯 나를 바라보는 널 보며
난 그런 생각을 했어
<가을방학 노래- 언젠가 너로 인해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