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꿈꾼 빛' 대한제국의 미술…고종 초상사진 첫 공개

머니투데이 배영윤 기자 2018.11.15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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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서 '대한제국의 미술 – 빛의 길을 꿈꾸다'…근대 미술 토대로서 의미 커

전傳 채용신, 고종 어진,  20세기 초,  비단에 채색 , 180x10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전傳 채용신, 고종 어진, 20세기 초, 비단에 채색 , 180x10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다른 역사에 비해 관심이 덜했던 대한제국시대를 대중적으로 상기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면, 그 관심을 이해와 사유로 확장해볼 차례다. 암울한 시기에도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빛나고자 노력한 모습들이 당대 미술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이를 따라가다 보면 짧지만 강렬했던 대한제국을 마주하게 된다.

15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는 '대한제국의 미술 – 빛의 길을 꿈꾸다'는 대한제국시대 궁중미술을 조명한 국내 첫 기획전이다. 1897년부터 1910년까지의 대한제국시대는 짧은 흥망성쇠,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 탓에 이 시기 미술은 조선시대 우수한 미술 전통이 급격히 쇠퇴했다고 인식돼왔다.



전시 기획을 담당한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대한제국 미술은 과거 미술 전통을 지키고자 노력하면서 외부 요소를 수용하면서 변화를 꾀했으며, 고종의 '구본신참' 정신이 전반에 걸쳐 투영됐다"며 "근대 미술로 변화하는 바탕이 된 미술사적으로도 중요한 시대"라고 강조했다.

전시는 △1부 '제국의 미술' △2부 '기록과 재현의 새로운 방법, 사진' △3부 '공예, 산업과 예술의 길로' △4부 '예술로서의 회화, 예술가로서의 화가'등 4개 주제로 구성했다.



문성,  만총,  정연 외 10인,  신중도神衆圖  1907,  면에 채색,   181.7x171.2㎝,  신원사 소장./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문성, 만총, 정연 외 10인, 신중도神衆圖 1907, 면에 채색, 181.7x171.2㎝, 신원사 소장./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대한제국 미술은 전통에 외부의 새로운 요소가 접목된 '하이브리드형 미술'이었다. 규범성이 강한 궁중미술과 불교미술에 근대적인 변화가 시작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전통 미술을 지키면서도 서양 및 일본, 중국 미술의 화풍을 수용해 변화를 꾀했다. 왕에서 황제가 된 고종의 지위에 맞춰 황제·황후에게만 허용된 황색의 용포와 의장물이 어진과 기록화에 등장했다.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을 그린 '신중도'엔 대한제국의 군복을 입은 신이 등장한다. 군모, 어깨 견장, 태극무늬까지 구체적으로 묘사돼있다. 배 학예연구사는 "엄격한 종교미술에 신식 군복을 입은 군인이 등장한 것은 이례적"이라며 "새롭게 출현한 신식 군인의 강력한 힘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마음이 얼마나 강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짙고 화려한 전통적 화원화의 기법과 서양화법이 절충된 '곽분양행락도'는 19세기 말~20세기 초 궁중회화의 새로운 경향을 반영한 작품이다. 조선 최초 외국계 회사 '세창양행' 설립자 하인리히 마이어가 독일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국내에 처음 공개된다. 2007년 국내에 소개됐던 '해학반도도'도 10년만에 찾아왔다.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 최초 공개되는 고종의 초상사진. 김규진, 대한황제 초상, 1905년 추정, 채색 사진, 22.9x33cm, 미국 뉴어크미술관 소장./제공=국립현대미술관<br>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 최초 공개되는 고종의 초상사진. 김규진, 대한황제 초상, 1905년 추정, 채색 사진, 22.9x33cm, 미국 뉴어크미술관 소장./제공=국립현대미술관
두번째 전시 공간에선 '사진'이 '회화'의 대체재 혹은 보완재 역할을 하게 된 양상을 읽을 수 있다. 1880년대 초 서울 종로에 최초의 사진관이 설립되면서 궁중회화의 상당 부분을 사진이 대체한다. '세상에 오직 단 하나만 존재한다'는 어진의 규칙도 깨진다. 매체 변화로 군주의 이미지가 대중에 복제, 배포된다. 전시에서는 궁내부 대신 비서관이었던 김규진이 1905년 찍은 것으로 알려진 '대한황제 초상사진'을 만날 수 있다. 뉴어크박물관 소장으로 국내엔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이 시기엔 초상의 대상이 남성 중심에서 부부, 여성으로 확대됐다. 황실 가족 사진에서는 근대적 이미지를 재현하려는 흔적도 엿보인다. 순종의 스승이었던 김상적의 초상도 국내엔 처음 공개된다. 현전하는 김상적의 유일한 사진으로 위아래에는 김상덕이 사진 찍는 일에 대한 소감을 적었다. 배 학예연구사는 "사진 찍는 일을 '탑영'(搭影)이라 하고 사진찍는 사람을 '탑영자'라 표현하고 있다"며 "기존 회화의 자리를 사진이 대체하는 당시의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공예품이 산업과 예술로 변화하는 과정도 조명한다. 고종은 근대화의 일환으로 공예부문의 개량을 추진했고 전통 공예의 진흥을 위해 한성미술품제작소도 설립했다. 이후 운영의 난항으로 명칭과 운영 주체가 바뀌는 등 성격이 달라지도 했지만 처음으로 공예를 미술품·미술공예품으로 불렀고, 실용 기물이 아닌 감상용 공예품을 만들었다. 선진 기술을 통해 제작된 물품을 자본주의 관점에서 제작, 판매, 소비, 향유하는 근대적 흐름을 파생시킨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

과거 기능적 장인에 가까웠던 화원 화가가 예술가적인 성격의 화가로 변모하는 양상도 대한제국 시기에 나타난다. 도화서가 해체되면서 다양한 외부 화가들이 궁중회화 제작에 참여하고 이들이 전문가적으로 혹은 예술가적으로 대우를 받게 된다. 근대 화단에 풍속화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한 채용신 '벌목도', '최익현 유배도'를 비롯해 근대기 사군자화의 대표작가 김규진의 '묵죽도' 등도 전시했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며 보여주는 궁중회화의 표현방식 변화, 사진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등장과 이로 인한 시각문화의 변동, 산업공예와 예술공예의 분화, 그리고 예술가적 화가의 대두 등은 대한제국시기의 미술이 그저 쇠퇴기의 산물이 아닌 근대화시기 변화를 모색했던 치열한 시대의 결과물"이라며 "이번 전시가 대한제국시기 한국 근대미술의 토대가 어떻게 마련되었는지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진, 변관식, 안중식, 채용신 등 대한제국 시기 대표작가 36명의 회화, 사진, 자수, 도자, 금속 공예 등 총 200여점을 만나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내년 2월6일까지 개최된다. 관람료는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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