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 여왕의 빛과 어둠

강명석 ize 기자 2018.11.1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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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랩소디’, 여왕의 빛과 어둠


영국의 록그룹 퀸이 1985년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의 ‘라이브 에이드’ 무대에 섰을 때는 아직 밤이 되기 전이었다. “웸블리에는 지붕이 없잖아”라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대사처럼, 지붕없는 스타디움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밤이라면 어둠에 먹혔을 스타디움의 광대함이, 7만명 이상의 관객들이 무대 위를 바라보는 모습이 약 19억명의 시청자들에게 전달됐다. ‘라이브 에이드’는 전세계적인 규모의 자선 공연이었고, 퀸이 보여준 역사에 길이 회자되는 퍼포먼스는 빛이 만들어낸 이 스펙터클과 함께 기억된다. 멀리서나마 관객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아직 빛이 남은 스타디움에서 단 한 명, 퀸의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가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인다. ‘Under Pressure’ 공연 전 마음대로 멜로디를 부르면 관객들이 모두 따라하고, ‘Love of my life’를 부를 때면 아무도 없는 것처럼 숙연해진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대사처럼 네 명이 만드는 소리가 “하늘도” 뚫어버렸다. 그리고 단 한 명의 리드 싱어가 7만명을 여왕의 군대처럼 지휘하는 모습이 기록으로 남았다.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라이브 에이드’를 제외한 영화 속 모든 공연은 밤, 또는 지붕 있는 공연장에서 어둡게 진행된다. 관객의 모습 역시 클로즈업 될 때가 아니면 어둠 속에 묻혀 있고, 프레디 머큐리를 중심으로 무대 위를 좁게 잡은 구도는 실제 공연 규모에 비해 갑갑해 보인다. 블루레이로 발매된 퀸의 1981년 캐나다 몬트리올, 198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공연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 영화 속 공연들은 실제 퀸의 공연을 매우 비슷하게 옮겨왔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이 어두운 공연들이 반복되는 사이 프레디 머큐리(라미 말렉)의 인생을 어둠 속으로 끌고 간다. 공연하는 도시가 늘어날수록 연인 메리 오스틴(루시 보인턴)과의 사이는 멀어졌고, 공연이 끝나면 멤버들은 각자의 가족을 찾아간다. 가족이 있는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귈림 리)는 “앨범 투어 앨범 투어”를 밴드의 삶으로 받아들이지만, 멤버들이 떠나면 대저택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자 고민하는 프레디 머큐리는 성공의 크기가 커질수록 삶이 힘들어진다. 이 모든 갈등과 고민은 어둠이 지배하는 공연의 이미지가 ‘라이브 에이드’의 빛으로 바뀌며 일단락 된다. 프레디 머큐리는 ‘라이브 에이드’ 를 기점으로 멤버들과 화해하고, 새로운 연인 짐 허튼(아론 맥쿠스커)을 만나며, 가족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힌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에게 공연, 그 중에서도 ‘라이브 에이드’, 그리고 ‘라이브 에이드’에서 지붕 없는 스타디움이 만들어낸 빛의 이미지가 당시 전세계 사람들에게 준 매혹을 이해한다.

그러나 낮의 질주는 밤의 오페라를 통해 완성된다. 1986년, 역시 웸블리 스타티움에서 열린 퀸의 ‘Magic tour’에서 ‘We are the champion’은 공연 마지막, 어둠이 깔린 스타디움에서 오직 멤버들만이 빛날 때 울려 퍼진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관객들이 프레디 머큐리에게 노래를 불러준다. 점차 죽음에 다가서던 그가 외롭지 않았을 것이라는 증거. 1986년 웸블리 공연 당시 프레디 머큐리의 목 상태는 20여분만 노래하면 됐던 단체 공연 ‘라이브 에이드’ 당시에 비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공연에서 노란 재킷을 입은 그의 모습, 또는 7만여명의 관객들을 앞에 둔 채 노래하는 그의 사진이 퀸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다. 아직 빛이 스타디움을 비출 때 ‘One vision’으로 시작한 공연은 ‘Tie your mother down’으로 관객들을 휘어잡고, ‘Another bites the dust’로 흥을 돋구다 ‘Now I’m here’에서 관객들을 폭발시킨다. 그리고 그 다음, 스타디움에 밤이 스며들 즈음 ‘Love of my life’가 공연장을 멤돈다. 다음 곡 ‘Is this the world we created?’까지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가 더욱 쓸쓸해지는 사이 밤은 더 깊어진다. ‘We will rock you’가 공연에서 중요한 이유는 곡 자체의 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곡이 공연 후반부에 관객의 집중력을 최고로 끌어올린 뒤, 우리는 패배자가 아니라고 노래하는 ‘We are the champions’의 클라이막스로 이어져서다. 퀸이 오페라에 어울리는 팀이었던 것은 ‘Bohemian Rhapsody’를 만들어서만은 아니다. 그들은 공연 안에 인간의 기쁨과 슬픔, 외로움의 비애를 일관된 흐름 안에 담을 줄 알았다. 빛으로 시작해 어둠으로 끝나는 1986년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은 그 아름다움을 시각적으로 가장 선명하게 담았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프레디 머큐리의 인생에서 이 부분을 생략했다. 실제 ‘라이브 에이드’는 대외적으로는 퀸의 새로운 전성기를 여는 순간이었지만, 프레디 머큐리에게는 비극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는 ‘라이브 에이드’ 이후 1987년에 에이즈가 걸린 사실을 알았고, 가족들에게도 성 정체성을 직접 밝히지도 못했다. ‘라이브 에이드’ 이후에도 인생의 고통은 이어졌고, 병세가 심해지면서 공연을 할 수 있는 건강마저 빼앗겼다. 퀸의 마지막 명곡 ‘Show mus t go on’은 이런 상황 속에서 만들어졌다.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프레디 머큐리는 어떻게든 노래를 불렀다. 쇼가 계속되는 만큼, 삶의 고통도 계속되고 있었다. ‘보헤미안 랩소디’에는 이 모든 문제들이 사라졌다. 퀸의 공연이 가진 힘과 아름다움은 담아냈지만, 그 공연에 담긴 인간의 비애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것을 남긴 인간의 의지는 바라보지 않는다. 유튜브에서 쉽게 확인 가능하듯, ‘보헤미안 랩소디’는 ‘라이브 에이드’를 카메라 워크까지 거의 그대로 가져오다시피 한다. 특히 빛이 비추는 ‘라이브 에이드’의 풍경 속에서 프레디 머큐리와 관객이 교감하는 에너지를 표현하면서 단순한 재연을 넘어 그 공연장의 열기를 옮겨오는 수준에 이른다. 1986년 웸블리 공연과 마찬가지로 화질에 문제가 있는 ‘라이브 에이드’ 공연이 4K 시대에 어울리는 버젼을 하나 가졌다고 느껴질 정도다. 다만 한가지, 원래의 ‘라이브 에이드’에서 카메라는 관객을 큰 집단으로, 가까이 다가선다 해도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로 잡는다. 반면 ‘보헤미안 랩소디’는 군데군데 특정 관객을 클로즈업으로 잡는다.그 관객들은 다양한 인종과 (아마도) 성정체성을 가졌고, 퀸의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릴 것처럼 감동한다. 실제의 프레디 머큐리는 ‘라이브 에이드’ 이후에도 삶의 고통을 짊어지고 갔다. 관객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헤미안 랩소디’는 더 이상 인생에 밤이 없는 것처럼, 마치 그 곳의 관객들이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모두 이해하는 것처럼 보여준다. 그 점에서 ‘라이브 에이드’가 ‘보헤미안 랩소디’의 중심인 것은 이 영화가 걸을 운명을 스스로 예언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퀸의 공연을 압축시킨 ‘라이브 에이드’처럼 퀸과 프레디 머큐리에 대해 알기는 쉽다. 공연 장면은 짧지만 영화를 보고 나온 뒤 퀸의 공연을 찾아보고, 앨범을 사고 싶게 만드는 강렬함이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 퀸의 단독 공연이 주는 것 같은 화려하며 깊이 있는 드라마는 없다.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무엇이 퀸의 공연을 넘어설 수 있을까. 유튜브에 ‘Queen Wembley’까지만 치게 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글. 강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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