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라이트, My turn

황효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18.11.14 09:06
글자크기
로빈 라이트, My turn


“My turn.” 넷플릭스가 만든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5는 클레어 언더우드(로빈 라이트)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에서 끝난다. 대통령 자리에 올랐지만 진짜 권력은 그 바깥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프랭크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는 아내 클레어에게 대통령직을 넘기고, 그 힘으로 온갖 범죄를 저지른 자신을 사면해달라고 말한다. 예정대로였다면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6에서는 대통령이 된 클레어와 그런 클레어를 백악관 밖에서 자기 뜻대로 조종하려 하는 프랭크의 갈등이 다뤄졌을 것이다. 그러나 의도치 않게, 시즌 6은 정말로 클레어 언더우드의 독무대가 됐다. #미투 선언이 한창 이어지던 시기에 케빈 스페이시의 성추행 전력이 밝혀졌고, ‘하우스 오브 카드’ 제작진은 시즌 6에서 그를 완전히 하차시키는 동시에 작품 역시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 프랭크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클레어가 여성이기에, 또 프랭크의 아내이기에 받아야 하는 공격과 견제를 견디며 어떻게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자리를 지켜낼 것인가가 마지막 시즌의 이야기다.

절대 진심으로 웃지 않으며,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정도로 악랄하고 비윤리적인 여성. 남편 프랭크를 뒷바라지하기보다는 스스로 큰일을 하고 싶어 하는 야망을 품은 여성. 흐트러짐 없이 세팅된 외모와 기품을 잃지 않고, 누구와 있어도 성적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여성. 클레어는 매력적이지만 무조건 사랑하거나 응원할 수는 없는 여성이고, 로빈 라이트는 미디어에서 드물게 등장하는 복잡한 인간으로서의 이 여성을 완벽하게 묘사한다. 원하는 게 있으면 우회하기보다 한복판에 뛰어들어 쟁취하고야 마는 클레어의 성격은 로빈 라이트의 절제된 동작과 우아한 말투, 흔들리지 않는 차가운 표정으로 완성된다. 젊은 시절 ‘프린세스 브라이드’의 버터컵과 ‘프레스트 검프’의 제니로 이름을 알렸지만, 언젠가부터 로빈 라이트는 거침없이 싸우는 여성의 이미지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영화 ‘원더우먼’에서 그가 맡은 안티오페 장군은 독일군과 온몸으로 부딪히며 전투를 벌인다. 방패를 밟고 뛰어올라 활을 쏘며 한 번에 여러 명을 제압하는 장면으로, 로빈 라이트의 안티오페는 강인함과 위엄을 단번에 보여준다.



2015년, 클레어 캐릭터가 프랭크만큼 인기를 얻었음에도 자신이 케빈 스페이시보다 출연료가 훨씬 더 낮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로빈 라이트는 제작진에게 출연료 인상을 적극적으로 요구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 인터뷰에서는 ‘하우스 오브 카드’의 종영에 대한 질문에 “모든 것을 끝내지 않으면 우리가 이 더러운 것(하비 와인스타인을 비롯한 남성 권력자들)을 미화하고 기리는 것처럼 보일 것”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여성으로서, 또 긴 경력을 쌓은 배우로서 그는 지금 어떤 이야기가 필요한지 명확하게 알고 있다. 로빈 라이트의 다음 스텝은 ‘원더우먼’의 시퀄인 ‘원더우먼 1984’. ‘하우스 오브 카드’의 클레어가 아니더라도 한동안 그의 차례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

TOP